[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41〉빚으로 유지되는 세상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41〉빚으로 유지되는 세상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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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보이지 않는 경제학

빚으로 유지되는 세상

미국의 기준금리는 금융위기 이전 수준인 5퍼센트 고지를 다시 밟을 수 있을까? 미국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5퍼센트는 아무것도 아니다. 미 연준의 12대 의장으로 8년 동안 재임한 폴 볼커Paul Volcker는 1979년 취임 당시 11.2퍼센트였던 기준금리를 3개월 만에 14퍼센트로 끌어올린 적이 있다. 1981년의 기준금리는 무려 21.5퍼센트.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다. 요즘 이렇게 금리를 올렸다가는 해임될 가능성보다 테러를 당할 가능성이 더 크다.

미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연준은 금리 인상을 결정하는 데에 고용과 물가, 두 지표를 중요한 근거로 삼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 ‘주간 비농업부문 고용지표’ 등의 항목이 눈에 띈다. 결국 일자리에 관한 이야기다. 일자리가 늘면 가계소득이 늘고, 살림이 펴지면 씀씀이가 커진다. 소비가 늘면 물가도 따라서 오르기 마련이고, 기업은 늘어난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설비투자를 늘인다. 기업의 설비투자가 증가하면 또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이런 변화는 정부, 기업, 가계 모두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이런 오름세가 지나치게 가파르면 사회 전체가 물가 상승에 따른 고통, 즉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경기가 과열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기능이 필요하다. 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금리다. 경기가 뜨거워지면 금리를 올려서 식혀 주고, 침체될 조짐이 보이면 금리를 내려서 돈이 잘 돌게 만든다. 그 일을 하라고 만든 기관이 중앙은행이다. 그러니까 중앙은행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고안한 ‘경기의 온도조절장치’인 셈이다.

“황금시장을 통해 화폐를 투시하고, 주식시장을 통해 경제를 분석하며, 채권시장을 통해 자본을 이해하고, 환매시장을 통해 금융을 탐색한다. 금리시장을 통해 위기를 탐지하고, 주택시장을 통해 거품을 통찰하며, 취업시장을 통해 회복을 구분한다.” 국제금융 전문가인 쑹훙빙의 말이다.

‘금리시장을 통해 위기를 탐지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 금리시장은 금리 변동에 따라 돈의 향방이 뒤바뀌고 통화의 유통속도가 달라지는 시장을 가리킨다. 콜금리 혹은 금리스와프 같은 금융상품의 흐름을 보면 위기의 조짐을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가 동시에 이렇게 많은 빚을 진 경우는 유사 이래 없었다. 2008년 이전으로 돌아가면, 부채위기는 국지적인 사건이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국가가 빚을 못 얻어서 안달이었다. 금리는 높았고,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에서 돈을 빌리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965년 박정희 정권이 일본군 성노예(종군위안부)와 징용 노동자의 인권을 팔아먹으면서 일본과 굴욕적인 외교협정을 맺은 것도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려는 몸부림이었다.

1980년대에는 주로 라틴아메리카의 외채가 문제였고, 1990년대 후반에는 아시아 신흥국들이 달러 빚 때문에 무릎을 꿇었다. 2000년대에는 ‘유럽의 돼지들PIGS’이라고 불리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이 감당키 어려운 부채로 유로존의 짐이 되었다. 2008년 이후, 과도한 부채는 정책의 기본 방향이자 시대의 유행이 되었다. 빚을 많이 진 국가가 빚을 더 많이 진 국가를 가리키며 “우리는 아직 괜찮아”라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세상이 된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빚으로 유지되고 있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20조 달러를 돌파했다. 기업과 가계 부문의 빚까지 합하면 69조 달러를 웃돈다. 2017년 일본의 공공부채 규모는 국내총생산의 240퍼센트에 달한다. 중국과 유럽도 천문학적인 빚을 지고 있다.

한국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2016 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채무는 사상 처음으로 600조 원을 넘어섰다.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 752조 6,000억 원을 합하면 공공부채는 1,400조 원을 훌쩍 넘는다. 거의 국내총생산에 근접한 규모다. 여기에 가계부채 1,400조 원을 얹으면 무릎이 푹 꺾일 지경이다.

금리가 1퍼센트만 올라도 한국 정부는 6조 원 이상의 금융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일본은 국가 예산의 25퍼센트를 빚 갚는 데 쓰고 있다. 빚을 많이 진 국가일수록 금리 상승에 따른 재정적자의 폭은 더욱 커지고, 국가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부채 규모가 커지면 금리의 향방이 경제를 좌우하게 된다. 빚으로 유지되는 사회에서 금리는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이다. 빚이라는 이름의 올가미가 기업, 가계, 정부의 목을 죄고 있다. 그 말은 70억 인류가 돈놀이의 볼모로 사로잡혔다는 뜻이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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