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원 선거 유세에 나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도쿄 인근 후나바시 거리에서 연설하고 있다.
참의원 선거 유세에 나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도쿄 인근 후나바시 거리에서 연설하고 있다.

아베 정권의 폭주가 멈추지 않고 있다. 2012년 제2차 아베 정권이 발족한 이후 특정비밀보호법 채택, 집단적 자위권에 관한 내각회의 결정, ‘안보법제’의 강행 처리라는 안하무인격 정권 운영은 멈출 줄 모른다. 전국 각지 길거리에서는 “조선인을 죽이자” “한국인은 나가라”라고 외치는 시위와 집회, 이른바 ‘헤이트 스피치(증오 발언)’와 ‘헤이트 데모(증오 시위)’가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더욱이 ‘헤이트(증오) 책’ 출판 붐도 지속 중이다. 어느 서점이든 혐한이나 배외주의를 부추기는 책이 쌓여 있다.

현재 일본의 상황은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위로부터’의 정치력이 훌륭하게 연계된, 우파가 염원하는 정책 실현 환경이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다. 전방위적 조직을 활용한 압박으로 이들이 지향하는 국가·사회상을 실현하기 위한 집요한 노력은 실제로도 상당한 성과를 이끌어냈다. 특히 아베 정권의 탄생으로 주어진 천재일우의 기회를 어떻게 해서든 붙잡아 오랜 비원인 개헌 실현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염원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진보 세력의 시민운동이 비웃음의 대상으로까지 격하된 1980년대 이후 일본에서 꾸준하게, 조직적으로, 더욱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풀뿌리 보수운동을 설계하고 이끌어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보수 우익의 전위 조직 ‘일본회의’다.

일본회의는 1997년 5월 30일, 대표적인 우파단체인 ‘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가 통합하면서 결성된 조직이다. 현재 가장 강력한 로비 단체로, 그들의 목표를 정의하자면 국수주의적이고 역사수정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권에서 현대 천황제 연구의 일인자로 알려진 케네스 루오프의 분석에 따르면, 이들의 목표는 ‘메이지의 정치제제와 이념의 부활’로 귀결된다. 즉 전쟁 전 체제로의 회귀가 핵심이다. 이들이 전개하는 다양한 복고정책, 그에 대한 지지의 호소는 아베 정권을 자극하고 아베의 정치 목표를 지지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이들은 한때 위로는 각료 중 80퍼센트를 배출하며 아베 정권을 장악하고, 아래로는 지방의회와 보수 잡지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1970년대 안보투쟁 시대부터 40년 이상 우파 시민단체로 활동하며, 아베 정권과 함께 ‘개헌’을 통한 ‘일본제국헌법의 부활’이라는 숙원, 즉 보수혁명을 이루려고 하고 있다. 현재 일본 민주주의는 압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배후에는 아베 정권의 어젠다와 활동을 조직하고 설계하는 보수 압력단체 일본회의가 있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는 정상 궤도를 이탈한, 도를 넘어선 '폭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폭주를 설계하고 실현하고 조종하는 주체가 바로 일본회의라는 극우단체다. 각종 보도와 자료에 따르면 일본회의는 일본판 네오콘, 아베의 돌격대로 알려졌다. 일본 풀뿌리 극우파의 사령탑(2016년 기준 회원수 3만 8000 명, 47개 광역자치단체별 본부, 241개 지부), 일본 극우 대본영 등으로 불리는 조직이다.

그들의 행동은 “이상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과격하다기보다는 추악한” “기본 소양이 결여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울러 그들의 주장은 하나같이 낡고 구태의연하다는 평가다. 그런데 너무나 기묘하게도, 그런 그들의 운동이 그 어떤 단체나 집단의 것보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이고 조직적이었다. 심지어 민주적이기까지 했다.

일본회의(1997년 설립)는 1974년 설립된 ‘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1978년에 싹터 1981년 설립된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를 전신으로 한다. 또 1970년 결성된 ‘일본청년협의회’가 사무국 역할을 하며 실무를 총괄한다. 여기에서 보듯 일본회의는 1970년 안보투쟁 시절 우익 학생운동과 뿌리가 맞닿아 있다.

1966년 7월 3일 나가사키대학 정문 앞에서 밤새 등사해 만든 ‘데모 반대·전학련 반대’ 전단지를 나눠주려던 민족파 우익 학생 2명이 좌익에게 얻어맞는다. 치욕을 당한 그들은 ‘좌익 타도’를 굳게 결심하고, 이어진 학생 자치회 선거에서 어려운 싸움 끝에 좌익 진영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쾌거를 거둔다. 당시 한 사람이 일본회의 사무총장이자 일본청년협의회 회장인 가바시마 유조다.

일본회의와 일본청년협의회를 이끄는 사람들은 나가사키대학 정상화 운동에서 승리한 투사였으며, 민족파 학생운동의 영웅이었다. 아울러 그들은 오랜 학생운동 현장에서 좌익 학생운동과 대치하면서 좌익의 운동 방법과 조직 운영 방법도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태동한 일본회의 계열 운동 집단은 이후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자위대의 국군화, 메이지 시대와 같은 천황제 국가 부활(국기는 히노마루 즉 일장기, 국가는 기미가요, 애국심과 전통 가족관계 강조, 일본제국헌법 부활), 교육기본법 개정, 야스쿠니신사 공식 참배 정착, 남녀 평등 참여와 부부 별성(別性) 법안 반대, 역사 왜곡 새로운 역사 교과서 채택. 종군위안부 문제 부정과 철거 소송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가속화했다.

이들의 운동 풍경은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2015년 11월 10일 일본회의가 주도하는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의 모임’은 ‘지금이야말로 헌법 개정을! 부도칸 1만인 대회’라는 집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주로 각종 종교단체와 우익단체 인원이다. 그들은 관광버스로 대량 동원되고, 대부분 노인들이다. 또 기미가요 제창과 진보파에 대한 야유가 대회장에 모인 다양한 소속의 사람들에게 '일체감'을 부여한다. 더불어 여당 의원과 각료가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일본회의 주관으로 치러지는 여러 국민운동, 국민대회에서 공히 발견되는 ‘동원력’과 ‘사무 처리 능력’이다. 이 정도 숫자의 집회를 이처럼 매끄럽게 조직하고 진행할 수 있는 곳은 현재 일본에서 없다. 이는 그대로 정치인들에게 더할 수 없는 매력으로 작용한다. 그들에게서 고정된 ‘표’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본회의는 강력한 압력단체로 존재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정권을 좌우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그들의 '풀뿌리 네트워크'도 눈여겨 볼만 하다. 일본회의는 지방 지부 또는 별동단체의 지방 지부와 지방 협력단체를 통해 광역?기초지자체 지방의회를 상대로 청원서와 의견서 채택 운동을 적극 벌여왔다. 겉보기에는 민주적 절차를 통한 평범한 시민운동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우익 운동의 최전선인 셈이다.

이 운동은 해당 지역이나 마을 관련 문제가 아니라, 일본회의가 상정하여 하달한 정책 어젠다를 청원서로 제출한다. 또 심지어 지방의회 선거 시에는 입후보 예정자들에게 사상을 검증하는 설문조사까지 실시한다. 이러한 동원력과 조직력, 민주적 운동 방법이야말로 무시할 수 없는 일본회의의 역량이자 일본 우경화의 근간을 이룬다.

일본청년협의회 회장 겸 일본회의 사무총장 가바시마 유조, 아베 신조의 최고 브레인이라 불리는 일본정책연구센터 대표 이토 데쓰오, 신흥 종교 ‘생장의 집’ 원리주의자 무리를 이끄는 나카지마 쇼지, 총리보좌관이자 일본청년협의회 부대표 에토 세이이치, 집단적 자위권 합헌을 뒷받침하는 안보법제의 이론가 모모치 아키라, 역사 왜곡의 이론가 다카하시 시로 등이 대표 인물들이다. 그리고 뿌리를 파고들수록 이들을 앞세운 채 뒤에 머물면서 ‘생장의 집 원리주의’ 네트워크 또는 일본 우익 네트워크를 ‘신’처럼 주재하는 한 인물의 그림자가 더욱더 짙어진다.

일본회의와 아베 정권의 관계는 ‘전후 체제 타파’라는 공동의 목표를 지닌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지금 한국은 일본 정부의 망언과 도발과 왜곡에 강력히 맞서야 하고, 전 세계로 거세게 불어 닥치고 있는 우경화 바람에 현명히 대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때일수록 감정적 대응이나 섣부른 예단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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