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46〉자본은 인간을 차별한다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46〉자본은 인간을 차별한다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9.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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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경제학

자본은 인간을 차별한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자본의 차별을 받아들여야 한다. 돈을 빌리려고 은행 문턱을 넘는 순간, 수능성적과 상관없이 당신에게 등급이 매겨진다. 이른바 신용등급이다. 1등급에서 10등급까지 있고, 이 신용등급이 당신이 내야 할 금리를 결정한다. 만약에 당신의 신용등급이 낮다면 높은 이자를 물어야만 돈을 빌릴 수 있다. 자본은 인간을 차별한다. 금리는 그 차별의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값이다.

국내의 한 대부업체는 “(신용등급) 9등급, 10등급도 대출 신청이 가능하다”고 선전하고 있다.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신청’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지 ‘대출’이 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대출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24퍼센트의 고금리를 감당해야 한다. 제때 이자를 못 내거나 원금을 갚지 못하면 연체이자 24퍼센트를 추가로 내야 한다. 왜 24퍼센트일까? 정부가 법으로 정한 최고금리가 24퍼센트이기 때문이다. 법정최고금리는 2007년 49퍼센트에서 2011년 39.9퍼센트, 2014년 34.9퍼센트, 2016년 3월 27.9퍼센트, 2018년 2월 24퍼센트로 점차 낮아졌다.

자본의 탐욕은 끝이 없는 것이어서 이런 상한선이 없었다면 훨씬 높은 금리로 고객의 등골을 뺐을 것이다. 운이 나빠서 악질 사채업자에게 걸리면, 이자를 먼저 떼고 나머지 돈만 받을 각오도 해야 한다. 그들 뒤에는 소위 ‘해결사’가 있다. 요즘은 법에 밝은 변호사들이 채권·채무 해결 비즈니스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법과 주먹은 늘 붙어 다닌다. 둘 다 폭력이다. 합법과 불법의 차이가 있을 뿐.

신용등급에 따라 금리가 달라지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해 보인다. ‘이익 추구, 위험 회피’의 원칙이 가장 철저하게 적용되는 곳이 금융시장이다. 신용등급이 낮다는 것은 돈을 떼먹고 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고, 그런 사람에게는 누구나 대출을 꺼릴 것이다. 돈을 빌려주는 것도 투자다. 다시 말해 이익을 기대하고 자기가 가진 자본을 투입하는 행위다.

사기꾼이 흔히 쓰는 수법이 있다. “나에게 투자해라, 몇 배로 키워서 돌려주겠다.” 세상의 모든 금리(수익률)에는 돈을 빌려주었을 때 떼 먹힐 가능성, 즉 투자 위험도가 반영되어 있다. 러시아의 금리가 높다는 것은, 러시아에 투자했다가 투자금을 떼먹힐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대출 금리가 당신보다 공부를 못했던 고등학교 동창생보다 높다는 것은, 그 동창생이 안정된 직장에서 당신보다 많은 연봉을 받고 있고 연체할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자본은 인간과 법인을 포함하여 세상의 거의 모든 것에 등급을 매기고 등급에 따라 차별한다. 심지어는 국가도 차별한다. 국가신용등급이 높으면 낮은 금리로 국채를 발행하여 외국의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다. 반대로 신용등급이 낮으면 외자 학보가 어려워지고 국채 금리는 높아진다. 

1997년 10월 말까지만 해도, 미국의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tandard & Poor’s, S&P가 매긴 대한민국의 국가신용등급은 호주, 스웨덴과 같은 A+였다. 그러나 채 두 달도 못 되어 무려 아홉 단계나 떨
어진 B+가 되었다. 1998년 4월에 한국 정부가 발행한 3년짜리 국고채 금리는 17.23퍼센트까지 치솟았다. 20년이 흐른 지금, 똑같은 3년만기 국고채의 금리는 연 2.22퍼센트다. 외환위기 당시에 대한민국의 국고채를 사들인 외국 은행들은 짧은 기간에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결과를 놓고 보면 그들은 도박에 성공했다. 세계 금융시장의 흐름을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세계화를 외쳤던 대한민국은 등골까지 쏙 빨렸다. 그리고 아주 짧은 기간에, 세상이 바뀌고 많은 사람의 인생이 달라졌다.

그런데 왜 정부가 금리를 시장에 맡기지 않고 기준금리를 정하여 발표하는 걸까?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가 기준금리라는 강력한 무기로 금융시장에 개입한다. 그것은 금리가 한 국가의 통화량, 물가, 주가, 환율 등 경제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의 절반 이상이 금리정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금리는 살살 다루어야 한다. 올려도 조금씩, 내려도 조금씩, 시장의 눈치를 봐가며 조심스럽게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주저하다 타이밍을 놓치면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격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정교한 계산과 판단이 필요하다. 반대로 너무 성급했다가는 시장을 충격에 빠뜨릴 수 있다. 금리 변동의 파급효과가 워낙 크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금리에 고삐를 채워서 통제하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자본가의 입장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100퍼센트 시장에 맡기지 않고 강력한 대리인을 내세워 금리를 통제하는 방법을 택했다. 대리인은 물론 ‘정부government’다.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 정부를 대리인으로 내세운 월가의 은행가들이 세계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는 미국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이며 육군 상사였던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 Hemingway, 1899~1961가 쓴 장편소설이다. 같은 제목으로 만들어진 영화도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스페인내전이다. 우파와 좌파, 혹은 파시스트 진영과 반파시스트 진영 간의 대결인 동시에 소련, 독일, 이탈리아가 개입한 국제전이었다. 우파의 승리로 3년에 걸친 전쟁이 끝나고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의 38년 독재가 시작되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그 말이 내게는 21세기 신자본주의 시대를 읽는 키워드로 들린다. 미국 정부가, 혹은 한국 정부가 어떤 정책을 결정하고 발표할 때마다 나는 헤밍웨이가 남긴 문장을 되뇌어 본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누구를 위하여 금리는 오르나, 누구를 위하여 사드는 배치되나, 누구를 위하여 개성공단은 폐쇄되었나, 누구를 위하여 국가는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