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언이설(甘言利說)은 남의 비위를 맞춘 달콤한 말과 이로운 조건을 내세워 그럴 듯하게 꾀는 말이고 교언영색(巧言令色)은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교묘히 꾸며서 하는 말과 아첨하는 얼굴빛을 뜻한다.

“5살까지 아이는 국가가 무상보육을 책임지겠습니다”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확대하고, 사교유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정책도 펼쳐가겠습니다”

“대학등록금 부담을 반값으로 낮추고, 셋째 자녀로부터 대학등록금을 100% 지원하겠습니다”

“4대 중증질환에 대해서 건강보험이 100% 책임을 지도록 하겠습니다”

“청년들이 학별, 스펙과 무관하게 도전할 수 있는 질 좋은 일자리를 대폭 늘리겠습니다”

“근로자 정년을 60세로 올리고, 해고요건을 강화하는 제도적 보호 장치를 갖춰나가겠습니다”

“일방적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를 하지 않도록 여러분의 일자리를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가장 긴 장시간 근로관행을 개혁하고,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고,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회사는 징벌적 금전보상제도를 적용하겠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경제민주화를 통해, 더 이상 억울한 일 당하는 중소기업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지역균형발전과 대탕평 인사로, 모두가 하나 되는 행복공동체를 만들겠습니다”

이 모두 얼마나 솔깃하고 듣기만 해도 즐거운 말들인가. 그럼 과연 이 말을 누가 했을까. 바로 지난대선 전 당시 한나라당에서 당명을 세탁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대 국민 선거공약으로 유세도중 한 말들이다. 선거결과 그녀는 국민의 선택을 받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렇다면 이 핑크빛 공약은 지켜지고 있는가. 물론 아니다 박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지난 지금까지 그 약속들은 아직 한 가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폐기되었다. 사정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는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전형적인 감언이설로 국민을 속인 거나 마찬가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도 잘하는 게 전혀 없는 게 아니다. 하나는 어려서부터 몸에 밴 뛰어난 의전이고 다른 하나는 부친인 박정희 씨에 대한 지극한 효심을 바탕으로 한 부친의 업적을 널리 알리는 일이다. 그 중 그녀의 지극한 효심이 도를 넘어 발생한 사건이 바로 최근 극심한 국론분열의 불을 댕긴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이다. 헌데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새누리당 산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가 지난 2013년 말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과 해법>이라는 정책보고서에서도 "국정화는 하나의 관점만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 국정화 전환은 세계적 추세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냈을 정도로 국민의 대다수가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명분을 위한 정당성 확보가 필수였다. 그래서 교과서 이름도 ‘올바른 역사교과서’로 바꿨다. 이른바 분칠을 한 것이다. 그 다음 작전으로 지금의 검정교과서들를 좌편향 ‘종북교과서’란 딱지로 붙여 매도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여당의 김무성 대표가 “우리 아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우면 되겠나”며 화답을 했다. 김 대표는 최근 공천문제로 대통령과 갈등을 겪어 위기에 직면해 있었지만 자신도 부친의 친일경력으로 동병상련을 겪고 있던 터였고 국면전환도 필요한 때여서 둘이 다시 의기투합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김 대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새누리당은 당사는 물론 전국곳곳에 “우리 아이들이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현수막 내용으로만 보면 마치 지금의 교과서가 주체사상을 실제로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교활하게도 그 주체사상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를 생략한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역사교과서에서는 주체사상에 대해 기술하면서 “주체사상은 김일성 주의의 다른 말로 반대파를 숙청하는 구실 및 북한 주민을 통제하고 동원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라는 등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 사실을 새누리당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문구를 넣어 전국에 플래카드를 건 것은 전형적인 교언영색으로 혹세무민하는 아주 사악한 짓이었다.

ⓒ곽현

게다가 새누리당이 내건 현수막 내용대로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도록 지시한 것은 바로 교육부임이 드러났다. 교육부가  최근 고시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은 ‘고등학교 사회과 한국사의 성취기준을 통해 북한의 주체사상을 가르치라’고 지시했음이 밝혀진 것이다. 따라서 이 때문에 기존 검인정 교과서들에 대해 '친북 공세'를 펴온 새누리당을 머쓱하게 만들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달 23일 내려 보낸 ‘2015 개정 교육과정’ 고시는 이런 내용이 명백히 나온다. 즉 ‘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 세계의 변화’ 단락의 ‘북한의 변화와 남북 간의 평화 통일 노력’ 소(小) 주제 학습 요소로 “주체사상과 세습체제, 천리마운동, 7·4 남북 공동 성명, 이산가족 상봉,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남북 기본 합의서, 6·15 남북 공동 선언, 탈북자”를 적시하고 있다. 교육부의 '교육과정 지침'은 학교에서 진행되는 교과목, 교육 내용, 수업 시수 등을 결정하는 것으로, 교과서 제작을 하거나 교사가 수업 내용을 짤 때 무조건 따라야 하는 절대지침이다.

검인정을 통해 현행 역사교과서로서의 적합성을 판정해 합격을 준 것도 교육부이고 주체사상 등을 학습하도록 지시한 것도 교육부였던 것이다. 정부가 주체사상을 가르치도록 지시해놓고 이제와 그 책임을 교과서와 교사들에게 전가하고 있으니 참으로 황당무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새누리당이 현행 교과서의 문제점을 부각하기 위해 이렇게 과장된 주장을 한 것이라면 이 또한 심각한 일이며 정부와 새누리당은 현행 교과서가 주체사상을 담은 이적 표현물인지 분명하게 답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새누리당 주장대로 현행 역사교과서에 주체사상이 그대로 담겼다면 검정당시 적합성 판정을 한 교육부가 그 모든 책임을 지어야 마땅하고 박 대통령도 여기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는 일이다. 때문에 이런 주장을 감행한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가보안법 위반은 물론 역사교과서 집필자들에게 허위사실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처벌해야 맞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위한 출국에 앞서 "정치권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두고) 불필요한 논란으로 국론 분열을 일으키기보다는 올바른 역사교육 정상화를 이뤄서 국민통합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달라"고 말을 남겼다. 이미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대통령의 뜻이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국정화 시도의 몸통이 작금의 국론분열은 마치 자신이랑은 상관없는 양 하며 국민에게 훈시하듯 말하는 태도 역시 교언영색의 극치이다. 더 이상 속지 말고 상습적인 감언이설과 교언영색으로 혹세무민하는 대통령과 여당에게 국민이 직접 나서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

 

김상환(전 양천신문/인천타임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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