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대외의존형 산업구조 탈피를 위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대외의존형 산업구조 탈피를 위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백색국가(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 배제가 현실화하자 중소·벤처기업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 부품에 국한됐던 수출 규제가 1112개 품목으로 늘어나면서 한국 중소기업들이 직접 영향권에 들게 돼서다.

특히 자금 여력이나 대처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광범위한 수출규제의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만큼 주무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 등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백색국가 제외로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분야는 공작기계·탄소섬유 분야다.

현재 자동차와 선박 등에 필요한 기계 부품을 만드는 공작기계는 완성품에서 일본산 비중이 30%에 가깝다. 특히 일본 의존도가 40%에 달하는 금속 공작기계는 중소기업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향후 수출 규제로 생산 차질이 빚어진다면 국내업체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인 납기경쟁력이 상실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자동차나 항공기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탄소섬유는 시장의 70% 이상을 일본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관계로 수급선 대체가 쉽지 않는 현실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직면하면서 중소기업계의 우려는 적잖은 모습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이달 초 일본과 거래하는 중소제조업 269개사를 대상으로 한 '일본 수출제한에 대한 중소기업 의견조사'에 따르면 응답 업체의 59%가 일본의 수출 규제가 지속하면 6개월도 버티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이와 달리 수출규제에 대한 자체적인 대응책을 묻는 말에는 '없다'는 응답이 46.8%로 가장 많았다.

중기부는 백색국가 배제에 대비해 대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지난달부터 '일본 수출 규제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전국 12개 지방청에 '일본 수출규제 애로신고센터'를 설치·운영한 것을 들 수 있다.

중기부는 또 수출 규제로 피해를 보는 중소기업에게 긴급경영안정자금(긴급자금)도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긴급자금 신청요건에 '일본 수출규제 피해' 항목을 신설하고, 피해기업에겐 '매출 10% 이상 감소' 등의 기존 조건 적용을 배제할 방침이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과도 피해기업에 대한 자금지원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계가 소재·부품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자금지원, 수입국 다변화를 위한 절차 개선 등을 요구하는만큼 이를 위한 방안을 범부처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

그러나 부품 소재 국산화를 위해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이 가장 시급하다는 게 중소기업계의 입장이다. 일본 수입 비중이 큰 부품을 중심으로 국산화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 대기업이 부품 소재 개발부터 구매까지 함께하는 구매조건부 개발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정부는 5일 발표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통해 한국 산업을 먹이를 삼키지 못하는 '가마우지'에서 먹이를 저장해 새끼를 키우는 '펠리컨'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수출규제 강화조치에 대비하고 안보측면을 강화하기 위해 특화된 경쟁력과 기술력을 갖춘 글로벌 전문기업과 강한중소기업, 스타트업 300곳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소재·부품·장비 대책의 경쟁력을 키우는데 핵심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관계 구축이라고 보고 전방위 지원을 강화하는 동시에 소재·부품·장비경쟁력위원회 산하 대·중소기업 상생협의회를 설치하고 상생품목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날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대·중소기업의 분업적 협력모델을 만드는 데 방점을 뒀다"며 "홍남기 부총리가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산하에 대·중소기업 상생협의회를 설치해 상생품목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중소·벤처기업들은 일본이 수출을 규제한 소재분야의 국산화가 3~4년 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국산화에 성공하더라도 품질이나 기술력에 대한 신뢰가 낮아 실제 '납품'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소기업들은 해당품목의 수출규제가 지속될 경우 기업이 감내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을 평균 6~8개월로 보고 있다. 대응책으론 '수입선 다변화'와 '신제품 개발', '연구개발 및 설비투자 확대' 등을 꼽았으나, 이를 위한 정부의 자금지원과 세제혜택, 규제개선 등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에 대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산화'가 가능할 것이란 판단이다. 

아울러 국산화 한 제품이 사장되지 않도록 정부나 대기업이 국산제품 사용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술력이 있어도 품질관리와 양산 시스템의 문제를 빌미로 납품이 불가했다"며 "세제혜택도 필요하지만 최우선적으로 국내 기술과 제품에 대한 인식 전환과 우수성에 대한 브랜딩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은 "이번 수출규제가 단기적으로 관련 기업에게 위기임이 분명하다"며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통해 기술력 및 혁신역량을 보유한 벤처기업을 육성해 핵심소재 국산화를 이뤄내고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