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제안과 미국의 권고도 통하지 않은 일본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한국 미래산업 규제용 ‘비관세장벽’
2차 경제보복, 3권분립과 자유무역정신, 글로벌 밸류체인 훼손
지난 12월 이후 8개월째 곤두박질친 경제성장률
미중무역분쟁과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 등 악재 겹쳐
한은 경제성장률 전망치 2.2% 달성 현실적으로 어려워
S&P, 피치, 무디스, 한국 기업들 감당 가능한 것으로 평가

지난 2일, 아베 신조 총리 주재로 열린 각의에서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하고, 한국도 맞불을 놓으면서 한일교역이 1965년 수교 이후 54년 만에 전면적인 경제전쟁에 돌입했다. 일본이 선제공격에 이어 2차 보복을 가해 온 가운데,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우리 정부의 대응과 외신들의 반응, 반도체와 자동차, 공작기계, 석유화학, 철강, 금융 등 우리 산업에 미칠 영향 및 경제성장률과 국가신용등급 등에 대한 전망을 살펴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목차>
① 경제성장률과 산업에 드리운 먹구름
② 한일교역 규모와 반도체 산업의 위기
③ 자동차, 배터리, 화학, 공작기계와 금융
④ 일본의 3차 보복과 비관세 장벽
⑤ 지소미아(GSOMIA)를 둘러싼 안보갈등
⑥ ‘NO JAPAN’에서 ‘NO ABE’로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일본이 결국 수출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면서 한일 간 경제전쟁이 시작됐다. 지난달 1일 반도체 제조 등에 필요한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 이후 두 번째 경제보복이다.

한국의 제안과 미국의 권고 걷어찬 일본

일본 정부는 직접적인 대응 자제와 국제기구 공동조사를 제의하며 외교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자는 한국 정부의 제안을 일축했다.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관련, 일본 기업에 우리 기업까지 더해서 배상하자는 ‘1+1안’도 걷어찼다.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시한을 정한 다음 협상하라”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분쟁중지 합의 권고와 설득도 통하지 않았다.

회담에 앞서 인사하는 미국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일본 고노 다로 외무상(2019.07.22)(자료:AP/Associated Press)
회담에 앞서 인사하는 미국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일본 고노 다로 외무상(2019.07.22)(자료:AP/Associated Press)

2차 경제보복으로 포괄허가제에서 개별허가제로 전환되는 품목이 857개로 늘어났다. 한국은 총 27개국이 지정돼 있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는 첫 번째 국가가 됐다. 일본 정부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은 이달 28일부터 발효된다.

일본 정부는 국제평화와 안전을 내세웠던 만큼, 민간 수출에 대해서는 신속한 허가를 보장한다고 했지만, 규정이 애매한 탓에 정부가 개입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거나 허가 시간을 지연시키는 등 규제에 나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의 미래산업을 규제할 ‘비관세장벽’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2차 경제보복, 한목소리 낸 정치권

일본의 이번 조치는 과거사 문제를 빌미로 한 경제보복전이다. 3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대원칙과 강제노동금지라는 가치가 묵살됐고, 자유무역정신은 훼손됐으며, 글로벌 분업체계와 밸류체인(Value Chain)은 손상이 불가피해졌다. 한미일 안보공조체제도 비틀댄다. 적반하장도 적반하장이지만, 우리의 미래 먹거리 성장을 가로막으려는 의도에 비추어 더욱 악의적이다.

이번 사태를 대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각오는 비상하다. 2차 경제보복의 성격을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명백한 무역보복’으로 규정하고 단호한 맞대응을 선언했다. 이번 도전을 기회로 여긴다면 일본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도 했다. 쉽게 물러나지 않겠다는 절박한 심정의 표출이자, 국민을 독려하기 위해 내비친 단호한 의지라는 평가다.

일본의 2차 경제보복을 보는 정치권도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일본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고 했고, 문희상 국회의장은 “아베 내각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국당은 “참으로 옹졸한 처사”, “치졸한 행위”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한국 문재인 대통령(자료:plo.vn)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한국 문재인 대통령(자료:plo.vn)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경과야 어떻든 일본이 연이어 선제공격을 가해 온 상황, 시급한 것은 국내 산업이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일본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고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모든 역량을 동원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성장률과 산업에 드리운 먹구름

한국 경제성장세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수출이 지난해 12월 -1.7%를 기록한 이후 지난 7월 -11.0%로 8개월 내리 곤두박질치고 있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3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일본이 2차 경제보복을 가해왔고,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등 악재가 겹쳤다.

주가도 급전직하했다. 이달 2일, 전 거래일보다 19.21p(0.95%) 하락한 1,998.13으로 2,000선을 내준 코스피 지수는 6일 장중 한때 1,900선까지 붕괴됐지만, 7일 가까스로 1,909.71로 턱걸이한 상황이다.

국내 증시가 그동안 악재를 선반영해 조정을 거친 탓에 추가 낙폭이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가치평가(Valuation) 지표는 후행 기준 주가순자산비율(PBR)의 0.85배로 1970선을 가리키고 있어 복원에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은행이 지난달 18일 수정 제시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 2.2% 달성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데 있다. 국가미래연구원은 미중무역분쟁 탓에 올해 경제성장률이 0.2%~0.8% 추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반도체 생산이 10% 감소할 경우를 상정, 국내총생산(GDP)이 최소 0.27%에서 최대 0.44%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증권가 및 금융계의 예측은 더 비관적이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우리 경제성장률에 미칠 영향에 대해, 하나금융투자는 최대 0.8%p, 유진투자증권은 0.6%p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BoA메릴린치의 예상치는 1.9%, 모건스탠리와 노무라증권은 1.8%, ING는 1.4%다. 스탠다드차타드는 1.0%까지 내렸다. 나름 선방해야만 올해 성장률 2.0% 예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한은이 미국에 앞서 금리인하를 단행한 배경이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18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4~2.5%에서 2.2%로 수정 제시했지만, 미중무역분쟁과 일본의 2차 경제보복,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등 악재가 겹치면서 2.2% 경제성장률 달성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한국은행은 지난달 18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4~2.5%에서 2.2%로 수정 제시했지만, 미중무역분쟁과 일본의 2차 경제보복,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등 악재가 겹치면서 2.2% 경제성장률 달성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한은도 올해 경제성장률 1%대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수정 전망치 2.2%에는 한일경제전쟁의 파급효과가 포함돼 있지 않아서다. 1%대 성장률이 현실화한다면, 2009년 세계적인 금융위기 당시 기록했던 0.8% 이후 최저치가 될 전망이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 피치(Fitch), 무디스(Moody's)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들도 한일경제전쟁이 양국은 물론 세계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고 나섰다. 무디스의 경우, 한국 기업들이 핵심 소재를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언급하며 한국 기업의 신용도를 ‘부정적’으로 봤다.

그러나 무디스는 자체 조사 결과 “자사가 신용등급을 매긴 한국 기업들이 대부분 핵심 소재 재고를 충분한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어 일본의 수출규제가 실제 수출금지로 이어지지 않는 한 감당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일본 소재 조달이 장기적으로 막힐 경우, 한국 업체들의 국산화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현재 이들이 한국에 부여한 신용등급은 S&P AA, 피치 AA-, 무디스 Aa2로 일본보다 모두 2단계 높다. 일본 경제보다 한국 경제를 더 탄탄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국가신용등급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bizlink@straightnews.co.kr

후속기사 ▶ ② 한일교역 규모와 반도체 산업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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