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2015년 아베 신조 총리 명의로 ‘전후 70년 담화’를 발표했고, 올해 새 천황이 즉위하며 연호 역시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뀌었다. 아베 신조 정권은 내년 도쿄 올림픽 개최를 통해 장기 집권이 가져온 듯한 표면적인 번영을 전 세계에 과시하고, 그 여세를 몰아 자위대를 명실상부한 일본의 군대로 명기해 이미 퇴색될 대로 퇴색한 평화 헌법의 취지를 완전히 뒤엎는 헌법 개정까지 실현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의 일본은 낡고 무책임하기만 한다. 아직도 참화의 상처가 생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해 지역들을 외면하고, 본토와 미국의 식민지와도 같은 오키나와, 식민지 시기 위안부나 징용공 강제 동원과 같은 폭력을 행사했던 한반도를 무시한 채 도달하게 될 ‘새로운 일본’은 전후 민주주의 70년의 역사를 거스른 군국주의의 옛 일본 제국에 가까워져가고 있다. 일본은 패전 이후의 노력에서 도주해 패전 이전의 망상으로 회귀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책임에 대하여>(돌베개)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우려하며, 과거 일본이 자행한 식민주의와 군국주의의 폭력을 직시하도록 지치지 않고 호소해 온 두 지식인 서경식과 다카하시 데쓰야의 간절한 대담을 담은 책이다. 현대 일본이 외면하는 대표적인 주제들인 위안부 문제, 오키나와 미군 기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천황제의 모순을 아우르며 급격히 후퇴하고 있는 현대 일본의 퇴행과 위기를 진단한다.

이들은 전쟁 시기 일본 제국이 저지른 범죄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와 우익의 외면과 왜곡은, 패전 후 안보 체제 확립이라는 명분 아래 미국의 군사 기지로 사실상 양도된 오키나와에 대한 일본의 무시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근현대사를 관통해 식민지 조선과 오키나와와 같은 타자를 이용해 일본 본토의 안정을 지탱한 식민주의라는 본질을 외면한 결과 원전 사고를 당한 후쿠시마마저 백안시하는 현재의 일본에 이르렀다. 무뢰한 12·28 위안부 합의에 대한 전가, 강제징용공 보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무역 보복 조치, 나아가 그것이 무역 보복이 아니라는 궤변이야말로 일본의 반복되는 무책임의 표상과 같다.

아울러 과거 역사의 책임을 외면한 숱한 말바꿈과 적반하장은 미래의 한일 협력과 공존까지 파국으로 몰고 가고 있는 실정이다. 한일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식민주의와 전체주의, 보편주의로 위장한 평화주의 등 일본의 본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저자는 1945년 패전 이후 전후 민주주의라는 도금이 과거의 식민주의, 군국주의, 제국주의라는 일본의 본성을 덮고 있었다 말한다. 1990년대 후반 이후의 지난 20여 년 동안 일본이 보인 우경화와 과거사 인식의 퇴행은, 바로 전후 민주주의의 껍질이 벗겨지면서 드러난 본성이라는 것이다. 지난 70년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일본 사회에 안착하지 못한 채 한낱 ‘뺑끼’, 도금에 불과했다는 비판의 의미도 찾을 수 있다.

제국주의 시대의 과거사 책임을 부정하며 일본 보수 세력이 추진한 역사 수정주의 캠페인이 힘을 얻고, 북한이 인정한 일본인 납치 사건을 무기로 삼아 역으로 위안부 문제 등 한반도에서 자행한 식민주의적 폭력을 회피한 ‘응답의 실패’는 1990년대 후반 이후로 지난 20년 간 일본의 우경화를 가속화시킨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 수정주의가 일본에서 세력을 얻으면서 일장기와 <기미가요>를 국기와 국가로 지정하는 '국기 국가법'이 제정되고, 과거와 같은 국가주의를 교육 제도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으로 '교육 기본법'이 개정됐다.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들이 이런 식으로 정책화되면서, 시민 개개인의 비판적 정신을 강조하고 국가의 독주는 통제하는 사회를 만들려 했던 일본 전후 민주주의의 목표가 퇴락한 것이다.

히로히토 천황의 죽음에서 일본의 언론들이 보여 준 과거사 인식의 한계와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2013) 및 그에 동조한 일본 리버럴파 지식인들의 모순도 주목된다. 2000년에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 위안부 문제의 최종 책임자로 선고되기도 했던 히로히토의 사망 이후, 일본 언론이 그가 평화주의자였으며, 전후 일본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 기여한 바가 컸음을 강조한 사실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천황제에 대한 문제 인식이 미약한 일본 언론의 태도는 바로 히로히토가 통치자로서 주도한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는 현대 일본의 본성과도 직결된다. 일부 위안부의 사례를 근거로 삼아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변호하는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에 의미를 과잉 부여하는 일본 리버럴파 지식인들의 무책임한 태도도 비판이 대상이다. 박유하 씨의 주장처럼 위안부 피해자 중 일부에게 어떤 모순이 있더라도 그것이 이 전쟁 범죄의 책임을 희석할 이유가 될 순 없는 것이다.

현재 일본은 위안부와 징용공을 비롯해 과거에 식민지 조선 등에서 저지른 폭력과 과오를 의도적으로 망각, 은폐하고 있다. 이런 태도야말로 일본 본토가 패전 직후부터 자신들의 방어를 위해 감당했어야 할 미군 기지들을 오키나와에 몰아넣고, 지금까지도 그런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은 채 무작정 외면하는 무책임성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 세력은 과거에는 소련, 현재는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미일 군사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리버럴파는 미일 군사 동맹의 해소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차이는 있지만, 오키나와의 현상을 먼저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점은 동일하다. 특히 평화주의를 표방한 리버럴파가 오키나와 내셔널리즘이라고 비판하며 오키나와 미군 기지의 본토 이전론을 반대하는 모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저지른 폭력에 희생된 오키나와, 위안부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는 것이 특정 집단, 민족의 입장만 내세운 내셔널리즘이라고 말하는 일본 리버럴파의 협소한 관점은 매우 우려스러운 사안이다. 소수자와 약자를 착취하고 그들의 존재를 지워 버리는 일본의 뿌리 깊은 식민주의는 일본의 심장부인 도쿄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의 원전에서 일어난 사고로 엄청난 희생을 당한 후쿠시마에 대한 멸시와 외면으로 이어진다.

보편주의라는 이름 아래 현대 일본이 취해 온 양면성은 모순 그 자체다. 일본은 중국이나 북조선(북한)을 비판할 때는 항상 자신들이 ‘법의 지배’, ‘자유’, ‘인권’, ‘민주주의’ 등을 지키는 유럽적 보편주의 그룹의 구성원임을 강조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상징 천황제를 정점으로 한 일본식 보편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아베 신조 정권이 집요하게 추진하는 헌법 개정에서도 과거 전후 헌법에 도입된 “국민 주권, 기본적 인권, 평화주의”와 같은 유럽적 보편주의 이념들을 미국이 주입한 비일본적인 것으로 배격하며, 천황을 명실상부한 국가의 상징으로 '받들어 모시는' 과거 제국 헌법의 일본적 보편주의를 되살리려 한다.

때문에 현재의 상징 천황제는 일본이 얼마든지 ‘대동아 공영권’과 같은 과거의 일본적 보편주의로 회귀할 수 있는 도구인 동시에, 일본 사회가 전쟁 범죄, 식민주의와 같은 과거사의 책임을 회피, 망각하는 수단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두 저자는 한국과 일본에서 정치적 반동의 국면에 저항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추구하는 양국의 시민들이 연대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일본인들이 한국의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하려는 쪽이 아니라 이를 지키려는 쪽, 오키나와에 대해서도 미군 기지의 오키나와 내 존치, 이전을 반대하는 쪽과 연대해야만 일본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호소는 지금 한국인들도 일본 내에서 자신들의 과거사 책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인들과 협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