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화'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못하랴
'우경화'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못하랴
  • 김세헌 기자 (betterman89@gmail.com)
  • 승인 2019.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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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 성향의 일본 의원들이 광복절인 15일 일제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집단 참배하고 있다.
우익 성향의 일본 의원들이 광복절인 15일 일제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집단 참배하고 있다.

“재특회의 힘이 약해진 이유 중 하나는 혐오발언적인 행동에 대해 사회적 압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재특회가 없어도 될 만큼 사회에 이미 ‘극우 공기’가 가득 찼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재특회의 추락으로 바뀐 것은 재특회가 주최한 데모가 거의 사라졌다.”

<일본 '우익'의 현대사>의 저자 야스다 고이치다는 과거 <거리로 나온 넷우익>을 쓴 기자 출신 논픽션 작가다. <거리로 나온 넷우익>이 나온 2012년만 해도 일본 사회는 재특회(재일 특권을 허락하지 않는 시민 모임)로 대표되는 넷우익의 등장에 몸살을 앓았다. 이들은 거리 곳곳에서 혐오발언을 일삼으며 수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그런데 지금 그 재특회는 거리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그 현상을 일본 사회가 이미 극우화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더 이상 재특회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일본 사회에 ‘극우 공기’가 가득 찼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재특회가 내뱉는 혐오발언(혐한, 혐중)은 이제 일본 사회의 일상이 됐다. “요 몇 년을 돌아보기만 해도, 차별이나 편견을 부추기는 일본의 ‘극우화’는 속도를 올리고 있다. 차별 데모에 참가하는 한 지방의원이 있다. 응원하러 달려오는 국회의원이 있다. 차별 발언을 되풀이하는 의원이 있다. 넷우익이 주최하는 집회에서 강연을 하는 의원이 있다. 블로그에 외국인을 “구더기, 바퀴벌레”라고 표현한 신사의 궁사가 쓴 책에 아베 신조 수상이 추천사를 쓴다.”

일본의 우익은 국가권력의 거수기로만 행세한다. 정부와 함께 ‘개헌’을 위해 움직이는 확성기 역할을 할 뿐이다. 시민사회나 마이너리티를 보호하기는커녕 위협하기만 한다. 그들이 연료로 삼고 있는 것은 증오와 배타에 가득 찬 사회의 ‘분위기’다. 그 우익의 주체가 바로 ‘극우의 분위기를 탄 일반인’이라다.

저자는 일본 우익의 역사를 추적한다. 전사前史로서 일본 우익의 원류인 혈맹단을 살피고, 본격적으로 전후戰後 우익의 역사를 개괄한다. 그 역사는 현재 일본을 움직이고 있는 일본회의를 비롯해 넷우익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런 우익의 역사를 추적하면 ‘일본의 정체’가 보인다.

일본 우익은 여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선 전통 우익. 대동숙, 불이가도회로 대표되는 이 계열은 전후 미국이 만든 질서를 부정하고 전전의 천황 중심 세계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한다. 고대 신도의 정신을 버리지 않고, 심신수련 장소로서 농장과 기숙사를 운영하기도 한다. 

그다음으로 거리 선전을 중심으로 하는 행동 우익이 있다. 이들은 반공, 반좌익을 기치로 내걸고 직접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군복을 입고, 선전차를 타고, 음량을 크게 올린 군가를 트는 행동을 한다.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익단체이다. 좌익 집회가 열리면 우르르 몰려가 집회를 방해하는 활동도 벌인다. 중심 단체로 시국대책협의회, 전일본애국자단체회의 등이 있다. 

폭력단이 모체인 임협 우익도 있다. 행동 우익과 경계가 애매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기도 한다. 언론사에 테러를 가하는 등 그동안 여러 폭력 사건들을 일으켰다. 기업에 경비원으로 고용되어 노조를 파괴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즉 ‘반공’, ‘애국’을 대의명분으로 삼아 멋대로 행세하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에 등장한 신우익이 있다. 이들은 ‘친미’ 일변도인 기존 우익단체와 달리 ‘반미’ ‘반체제’를 외쳤다. 그래서 언론 등에서 이들을 새로운 우익이라는 의미인 ‘신우익’으로 불렀다. 민족파 학생운동을 모체로 탄생한 일수회가 대표 단체이다. 그러나 일반 우익단체와 주장하는 게 달라 ‘이단’ 취급을 받는다. 민족파 학생운동은 신좌익 학생운동에 대한 대항으로 탄생했는데, 좌익 학생운동이 쇠퇴하자 함께 소멸해갔다. 

종교 보수. 지금 일본을 움직이고 있는 일본회의 등도 종교 보수단체가 모체이다. 일본회의와 쌍두마차인 신도정치연맹도 이 계열이다. 신도정치연맹은 전국 대부분의 신사들이 가맹되어 있는 신사본청이 배후에 있다. 저자는 이들을 ‘양복을 입은 우익’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들은 친정부 노선을 걸으며 아베 신조의 자민당 정부를 지원하고, ‘개헌’을 주장한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등 활발한 대중운동을 펼치며 일본 사회에 ‘극우의 공기’를 주입하고 있다. 정계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일본회의를 지원하는 국회의원 조직인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소속 국회의원은 280여 명(2017년 10월 현재)이다.

아베 수상은 간담회의 특별고문이고, 현 내각 각료 대부분도 이 모임 소속이다. 신도정치연맹 의원 네트워크인 ‘신정련 국회의원 간담회’는 중의원과 참의원을 합쳐 288명(2018년 5월 현재)의 멤버를 자랑한다. 아베 수상도 그중 한 명으로, 젊은 시절부터 사무국장 등의 요직을 맡았다. 

마지막으로 배외주의, 인종차별을 주장하는 넷우익. 지금은 규모가 작아진 재특회가 대표적인 단체다. 하지만 저자는 이미 일본 사회 전체가 재특회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극우화되었다고 진단한다. 재특회의 혐오발언이 이미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얘기다. 또한 기존 우익과 넷우익의 경계가 허물어져 둘 사이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책에는 전전의 혈맹단에서부터 최근의 재특회, 일본회의까지 일본 우익의 역사를 아우른다. 저자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우익의 역사를 살핀다. 하나는 종전부터 1970년 안보까지. 제2차 세계대전은 일본의 패배로 끝났으며, 동시에 우익의 자멸이기도 했다.

전후, GHQ(연합군 최고 사령부 총사령부)의 손으로 우익 세력은 ‘전전의 유물’이라는 이유로 무대에서 끌어내려졌다. 대부분의 우익 인사들이 이때 공직 추방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한때의 휴식일 뿐이었다. 국가권력의 폭력 장치로서 숨을 다시 쉬게 된 우익은 ‘반공’을 기치로 내걸고 되살아났다. 일부는 폭력단과도 연계되어 검게 칠한 선전차로 대표되는 ‘위협과 공갈’이라는 우익의 이미지를 정착시켰다. 한편 1970년대에는 전후라는 시대에 의문을 제기하며 ‘반체제’를 주장하는 신우익이 등장하기도 했다.

두 번째 흐름은 1970년에 이르러 신좌익은 운동의 첨예화, 내부 분열 등으로 급속히 힘을 잃었다는 것이다. 신좌익에 대한 대항으로 탄생한 민족파 학생운동도 신좌익이 힘을 잃자 함께 방향을 잃었다. 이제 우익은 새로운 옷을 입고 나타났다. ‘반공’을 대신하는 ‘개헌’이라는 새로운 테제를 들었다. 개헌을 구심력으로 삼은 일부 우익은 풀뿌리 대중운동에서 활로를 찾았다. 그 흐름에서 일본회의와 같은 거대한 대중 조직이 탄생했다. 우익은 ‘개헌’이라는 새로운 테제를 들고 사회에 다시 침투한 것이다.

이 새로운 조직들은 ‘우경화’라고 불리는 시대를 만드는 데 영향을 끼쳤다. 게다가 이런 움직임을 자양분 삼아 21세기에 ‘넷우익’이라는 계층이 탄생했다. 기존 우익들은 처음 넷우익의 배타적, 차별적 주장을 백안시했지만, 이제는 양 진영의 경계를 찾아보기 어렵다. 넷우익을 포함한 우익 세력의 목적은 ‘개헌’뿐 아니라 인종, 반전, 반차별과 같은 전후 민주주의가 키워온 ‘상식’을 부정하는 것이다. 전후라는 시간에 대한 ‘반동’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보다는 일본의 전통을 강조하고, 이는 전전의 일본으로 회귀하는 것을 뜻한다.

“내가 우익이라는 말을 꺼낼 때마다 목구멍 안에서 역겨운 느낌이 치밀어 오르는 이유는 폭력에 대한 공포를 느끼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1932년 민정당 소속 전 대장대신 이노우에 준노스케가 총탄을 맞고 살해됐다. 얼마 뒤에는 미쓰이 재벌 총수인 단 다쿠마가 미쓰이은행 본점 현관 앞에서 사살됐다. 범인은 모두 혈맹단 출신 청년들이었다.

일본 우익의 특징 중 하나는 직접 행동, 즉 테러 활동이다. 테러는 최근까지도 행해지고 있을 정도로 일본 우익을 상징하는 행동 중 하나다. 이 우익 테러리즘의 원류는 전전의 우익단체 혈맹단. 이노우에 닛쇼가 설립한 혈맹단은 ‘국가 개조’, ‘부패 체제 타도’를 지향했다. 사리사욕에 치우친 지배계급을 타도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만민평등사회를 실현하고자 했다.

이를 쇼와유신 운동이라고 하는데, 얼핏 보면 혁명적으로 보이지만 천황에게 국가의 모든 것을 집중시키자는 주장에 지나지 않았다. ‘체제 전복’을 주장했지만, 천황만은 절대적으로 사수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혈맹단은 천황 옆의 간신들을 ‘일인일살一人一殺, 일살다생一殺多生’의 정신으로 제거하기로 결의하고 여러 테러 사건을 저질렀다. 

결국 혈맹단원 14명이 체포되면서 혈맹단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혈맹단의 테러리즘은 일본 우익에게 깊이 각인됐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폭력행위마저도 긍정하는 게 일본 우익의 특징이 됐다. 이후 우익에 의한 테러는 최근까지도 거듭 벌어졌다.

혈맹단 사건이 일어난 1932년 무장한 해군 장교들이 총리 관저에 난입해 총리를 암살했다(5·15사건). 1936년에는 육군 청년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2·26사건). 전후에도 테러는 계속되었다. 1947년 신예대중당 당원이 전일본산업별노동조합회의 의장 기쿠나미 가쓰미를 식칼로 베는 사건을 저질렀다. 1960년 10월 12일 일본 사회당 아사누마 이네지로 위원장이 우익 소년 야마구치 오토야의 칼에 찔려 사망했다.

1961년 <주오코론中央公論>에 발표된 한 소설에 천황 일가를 야유하는 듯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17세 우익 소년이 주오코론사 사장 집에 침입해 사장 부인에게 중상을 입혔고, 가정부를 살해했다. 2018년에는 두 명의 우익 활동가가 조선총련 중앙본부 현관을 향해 총탄 5발을 쏘았다. 이런 테러로 인해, 일본 사회는 폭력 앞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천황을 유일, 절대적인 존재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천황의 존재 없이 일본 우익은 존재할 수 없다. 네오나치에게는 사상상의 ‘절대군주’는 존재하지 않지만, 일본 우익에게는 ‘천황이 있어야 우익’인 것이다.”

야스다 고이치 〈일본 '우익'의 현대사〉
야스다 고이치 〈일본 '우익'의 현대사〉

전쟁은 일본의 패배로 끝났다. 1945년 천황은 스스로 자신이 신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천황의 인간 선언’이 우익에게 안겨준 충격은 컸다. 1945년 8월 22일, 종전에 반대하는 ‘존양동지회’ 멤버 10명이 아타고산에 올라가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친 후 서로에게 수류탄을 던져 자살했다. 5일 뒤, 이번에는 자결자의 부인 3명이 그 장소에서 권총을 쏘고 자결했다.

같은 해 8월 23일에는 명랑회 회원 12명이 황거 앞에서 단도로 할복하거나 목을 찔러 자살했다. 8월 25일에는 대동숙 숙생 14명이 요요기 연병장 근처에서 집단 자결했다. 전쟁 패배의 책임은 천황에게 있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 있으므로 죽음으로써 사죄한다는 취지였다.

천황 중심의 만민평등사회를 지향한 ‘쇼와유신’의 꿈은 전쟁과 함께 사라졌다. ‘신주불멸’, 즉 일본은 신의 나라이므로 패할 리가 없다는 믿음도 패전을 맞이함으로써 끝났다. 그러나 일부 우익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천황에게 사죄했다. “천황주의가 초래한 광기였으며, 가장 순수한 형태로 전전 우익 사상을 실천한 셈이었다. 황도 사상에 너무 충실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종전 조서 발표와 함께 그들의 이상과 육체는 산화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듯 일본 우익에게 천황은 절대적이다. 일본 우익이 다른 나라의 우익과 다른 점은 천황을 중심으로 모든 걸 생각한다는 점이다. 즉 천황절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천황이 있고, 국민이 있다는 생각, 이것을 계속 지키는 것이야말로 일본 우익이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다. 

일본 사회에서는 천황을 비판하는 건 금기 사항이다. 바로 우익의 테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치인, 언론사, 출판사 등에 우익이 가한 테러 사건은 수없이 많았다. 1990년 나가사키 시장 모토지마 히토시가 “천황에게 전쟁 책임이 있다”고 발언하자, 우익단체는 바로 테러를 가했다. 특히 1961년 주오코론사 사장 집 난입 사건은 언론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이 언론계에 끼친 영향은 컸다. 즉 우익 테러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황실에 관해 언론은 강제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천황의 전쟁 책임’을 비롯해 황실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상업지는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기자들은 황실 보도에 관해서는 폭력 장치로서 우익의 존재에 기가 눌려 압박을 받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최근 2016년에도 우익 청년이 월간지 <윌> 편집부실에 난입해 사무실 바닥에 페인트를 뿌리고 소화기를 분사한 사건이 있었다. 황태자나 마사코 비를 비판하면서 현대 황실을 걱정하는 내용을 실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참고로 월간지 <윌>은 우익 성향의 잡지였다.

종전이 되자 기존 우익은 궤멸했다. GHQ(연합군 최고 사령부 총사령부)의 손으로 우익 세력은 공직 추방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곧 미국이 원하는 ‘반공’의 깃발을 내걸고 다시 등장했다. 미국 또한 동아시아의 반공 보루로서 일본을 이용하기 위해 우익 세력의 등장을 부추기는 면도 있었다. 원래 천황의 질서를 무너뜨린 미국을 반대해야 마땅하지만, 우익은 손쉽게 ‘반미’에서 ‘친미’로 돌아섰다. 망설임이나 고통의 표현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 사실은 전후 우익의 궤적을 보는 데 아주 중요하다. 민족주의, 국수주의의 깃발을 흔들면서 미일 안보를 긍정하고,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고정화를 돕는 것이 이젠 대부분의 우익이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후, 노동쟁의가 자주 일어나자 회사 편에 서서 노조를 파괴하는 데 앞장섰고, 1960년대 학생운동이 활발했을 때는 학교 편에 서서 좌익 학생들과 싸웠다. 결국 우익은 항상 권력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우익단체들은 국가권력의 폭력 장치로서 기꺼이 자신들을 갖다 바쳤다. 1951년 당시 법무대신이었던 기무라 도쿠타로는 공산당의 무장투쟁에 대항하고자 우익단체와 폭력단을 엮은 반공발도대를 구상했다. 결국 이 구상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이때부터 폭력단과 연계된 우익단체가 정부와 긴밀하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반공’, ‘애국’을 대의명분으로 삼아 정치-폭력단-우익의 트라이앵글이 형성된 것이다.

현재도 우익은 아베 신조의 자민당 정권을 지지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때로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수상이 선거 유세 차량에서 내려갔는데도 열광은 멈추지 않았다. 환희의 기세는 그대로 분노가 되어 곧 ‘적’을 향한 공격으로 바뀌었다. 그 자리에 ‘참가’한 소수의 ‘반아베’파 사람들과 언론이 표적이 되었다. ‘꺼져라!’ ‘너희들, 비국민이야!’” 

지금 일본 우익은 ‘혐한’을 외치지만 예전만 해도 한국과 동지 관계였다. 정확히 말해 그들과 동지 관계였던 ‘한국’은 한국의 군사정권을 말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의 우익과 한국의 군사정권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일본 우익은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 협력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서로 이익이 되니 일본 우익은 한국의 군사정권을 지원했고, 한국의 군사정권도 자신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 일본 우익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한국이 군사정권이었을 시절에 일본 우익은 한국 군부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우익에게 북조선은 한일 공통의 적이었으니까 당연히 보조를 맞췄지요. 한일 양국이 가진 다른 역사 인식 문제는 북조선이 붕괴할 때까지 보류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전후 일본 행동 우익을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인 아카오 빈은 ‘반공 파트너’인 한국과의 우호를 중시했는데, 영유권을 둘러싼 독도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국과의 우호가 중요하니 “그딴 섬은 폭파시키면 돼”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우익과 한국 군사정권과의 관계도 종언을 맞이했다. 1987년에 한국이 민주화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군사정권이 몰락하자 일본 우익은 그 파트너를 잃었다. “우익은 군부와는 연결되었지만 민간과 교류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우익은 한국 군사정권이 영원히 지속되리라 생각했죠. 한국의 민주화는 결과적으로 우익과 한국의 연결이 소멸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1970년대에 접어들자 새로운 테제로 ‘개헌’을 들고나온 종교 보수가 등장했다. 1974년 생장의 집을 중심으로 한 종교계 우파들이 대거 모여 ‘일본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했다. 이 단체의 목적은 ‘전후’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헌법을 개정해 다시 전전의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꿈꾸었다.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평등, 반전평화라는 개념은 전후 일본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파는 거기에서 ‘파괴되어가는 국체’를 보았다. 있어야 할 일본이 사라진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들은 전전의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한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들이 운동 수단으로 삼은 것은 검은 선전차가 아니라 대중운동이었다. 그들은 좌파의 풀뿌리 운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집요하게 대중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은 조금씩 이기는 법을 알아갔다. 가장 먼저 ‘원호법제화 운동’(황위가 계승될 때마다 바뀌는 원호는 우익 진영에게 천황제의 상징이기기도 하다)애서 승리했다. 전국 각지에 ‘원호법제화’를 주장하는 원정대를 파견하고 각각의 지방 의회와 교섭했다.

나아가 저명인을 초청한 집회를 열고, 데모 행진 등을 펼쳤다. 그 결과 전국 지방의회의 약 반수에 해당하는 1632개 의회에서 ‘원호법제화’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마치 바닥을 기는 듯한 풀뿌리 운동의 성과였다. 결과적으로 1979년에 우파 세력이 간절히 원하던 ‘원호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우파 대중운동의 빛나는 성공 체험이었다.

이 운동 성과를 바탕으로 1981년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가 만들어졌다. ‘국민회의’는 최대 목표로 개헌을 내걸었지만, 더 나아가 자주방위와 일본의 전통에 근거한 교육의 실현도 과제로 삼았다. 그중에서도 ‘교육 정상화 운동’에 힘을 쏟았다.

‘국민회의’의 인식에 따르면, 전후 학교 교육은 일교조의 강력한 지배 아래 놓여 있으며,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도 일본의 전통문화를 경시하는 매우 불공정한 내용이었다. ‘국민회의’는 ‘적화 교육’이 진행 중인 학교 현장을 비판할 뿐 아니라 독자적 교과서 편찬에도 나서게 되어 1985년 《신편 일본사新編日本史》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자민당과의 관계 맺기에도 더 적극적이었다. 자민당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꾸준히 당내에 동조 세력을 늘려왔다. 연대하고, 단결하면서 때로는 감시하고, 의견을 내놓고, 그러면서 자민당 내부에 끼치는 영향력이 커졌다. 

1997년 ‘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가 통합해 ‘일본회의’가 탄생했다. 지금 일본 정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일본회의 역시 ‘개헌’과 ‘일본의 전통문화 복원’을 실행해야 할 과제로 내세웠다. 일본회의는 ‘지키는 모임’과 ‘국민회의’에서 성과를 거둔 대중운동을 더욱 강화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목적을 하나씩 이뤄나갔다. 게다가 이전보다 정계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아베 신조 총리 또한 일본회의와 깊은 관계에 있다.

2017년 일본회의가 주최한 개헌집회. 민간이 주최한 집회에 아베 총리가 화상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수상 지위에 있는 사람 중 그 누구도 개헌 일정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없었다. 그날 아베 총리는 2020년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새로운 헌법이 시행되면 좋겠다고 일본회의가 주최한 자리에서 말했다. 

일본회의는 개헌운동 외에 국기국가법 제정운동, 외국인 지방 참정권 반대운동, 교육기본법 개정운동 등에 몰두해왔다. 결과적으로 이 운동 모두 일본회의가 계획했던 대로 진행됐다. 1998년 국기국가법(일장기와 기미가요에 국기와 국가의 지위를 부여하는 법률) 제정에 관여해 결국 통과시켰다. 같은 해, 외국인 지방 참정권은 거의 국회에서 통과되기 직전이었지만, 일본회의의 반대운동으로 결국 무산됐다.

2006년에는 교육기본법 개정운동을 펼쳐 이를 통과시켰고, 이로 인해 ‘가해자의 역사’가 담긴 역사교과서는 퇴출되고, 일본회의가 관여해 만든 역사교과서가 대거 채택되었다. 전전의 질서가 반영된 복고적이고 퇴행적인 교육이 학교에서 이뤄지기 시작했다. 모두 일본회의가 바라던 바였다. 이외에도 일본회의는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지지하는 국민운동도 일으켰다.

집회, 데모, 지방의회에 대한 진정, 청원, 결의. 이 모든 것을 일본회의는 온 힘을 다해 집요하게 진행했다. 시간을 들여 정성을 다해 하나씩 과정을 밟아나갔다. 지방에서 시작해 중앙으로 확장시켰으며, 국회의원들을 포위했다. 일본회의는 이런 식으로 자신들이 바라는 일본상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었다. 

일본회의가 바라는 대로 일본 사회는 지금 우경화로 치닫고 있다. 일본 사회에 ‘극우의 공기’가 가득 차오르고 있다. 저자는 우익의 현대사를 훑으면서, 그와 관련된 사건 현장, 인물들을 직접 취재했다. 일본의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있는 보기 드문 논픽션이라고 할 수 있다. 전전의 위대했던 일본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우익의 심리와 그들의 주장, 그들의 문제점, 그들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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