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50〉거품은 반드시 꺼진다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50〉거품은 반드시 꺼진다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9.0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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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거품은 반드시 꺼진다

다시 영화 속의 2005년으로 돌아가 보자. 장소는 골드만삭스의 접견실. 가구는 단조롭지만 고급스럽다. 마이클 버리와 골드만삭스의 베테랑 트레이더들이 가죽의자에 등을 기댄 채 마주보고 있다.

마이클 버리 : 모기지 채권의 스와프를 사고 싶습니다. 채권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돈을 버는 신용부도스와프요.

트레이더1 : 주택시장 폭락에 돈을 건다고요?

트레이더2 : 수백만이 모기지론을 안 갚아야 부도가 나는 채권인데, 역사상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어리석은 투자 같습니다.

마이클 버리 : 물론 시장과 은행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보면 어리석은 투자가 맞습니다. 하지만 모두 틀렸습니다.

트레이더2 : (웃음을 터뜨리며) 농담도 참…….

트레이더1 : (미소를 지으며) 여긴 월가입니다, 버리 박사님. 공짜돈을 마다하진 않아요.

마이클 버리 : 사실 나는 채권이 부도났을 때 이곳의 지불능력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우려됩니다.

트레이더1 : 진심이세요? 우리가 돈을 못 줄까 봐 걱정이에요?

마이클 버리 : 그렇습니다. 

(귓속말로 의견을 교환하는 두 트레이더. 이윽고 한 트레이더가 공식적으로
제안한다.)

트레이더2 : 버리 박사님, 계속 납부 형식으로 해서 채권이 부도나면 돈을 받으시는 걸로 하죠. 다만, 채권 가격이 오르면 내셔야 할 프리미엄도 오릅니다. 월 단위 납부로 하시죠.

트레이더1 : 괜찮으시겠습니까, 버리 박사님?

마이클 버리 : 좋아요. 여섯 개의 주택저당증권에 관심 있는데, 그 투자설명서입니다.

트레이더2 : (서류를 검토하고 나서) 버리 박사님, 이걸로 하죠.

트레이더1 : 500만 달러 규모의 신용부도스와프를 팔겠습니다.

마이클 버리 : 1억 달러는 안 되겠습니까?

트레이더2 :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론 1억 달러도 되죠.

이런 식의 거래를 ‘장외거래’라고 한다. 대부분의 개미투자자는 거래소에서 취급하는 표준화된 금융상품만 사고판다. 반면에 증권시장의 큰손들은 투자은행과 직접 협상하여 계약 조건과 규모를 결정한다. 한 사람의 고객을 위한 맞춤형 금융상품이라 할 수 있다.

2007년 말, 장외시장에서 거래된 파생상품의 명목가치는 600조 달러에 달했다. 2016년 미국의 GDP(18조 5,700억 달러)와 비교하면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사이언캐피털Scion Capital의 마이클 버리는 골드만삭스, 도이체방크, BOA, 크레디트스위스 등에서 총 13억 달러의 신용부도스와프를 사들인다. 결과를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 그가 예측한 대로 미국 채권시장은 완전히 거덜이 났고, 사이언캐피털은 26억 9,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도이체방크의 재러드 베넷은 “어떤 머저리에게 2억 달러의 모기지론 신용부도스와프를 팔았다”고 자랑하는 동료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그 ‘머저리’는 사이언캐피털의 마이클 버리다). 재
러드는 은행 직원이지만 은행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동료 직원들은 그를 ‘거품 소년(bubble boy)’이라고 놀리곤 했다. 마크 바움은 사무실에 잘못 걸려온 전화 한 통 때문에 모기지론과 엮이게 된다. 전화한 사람은 재러드 베넷이었다. 그는 전화 받은 사람을 확인해 보지도 않고 “모기지론을 공매도하라”고 천기를 누설해 버렸다.

찰리와 제이미는 JP모건체이스와 거래를 트려고 했지만 문전에서 거절당한다. 15억 달러 이상의 자본금을 굴리는 투자자에게만 JP모건체이스와 협상할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낙담한 그들을 후원한 사람이 바로 전설적인 트레이더 벤 리커트, 개를 산책시키다가 제이미와 아는 사이가 되었다. 우연의 연속이었지만 그들 모두 냉소와 무시와 조롱을 천문학적인 수익과 맞바꾸었다.

이제 영화의 제목을 설명할 시간이 되었다. 금융상품을 거래할 때, 장차 가격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매입하는 것을 ‘롱 포지션long position’이라 하고, 반대로 떨어질 것을 예상하여 매도하는 것을 ‘쇼트 포지션short position’이라고 한다. 이익을 보려면 오래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고, 손해가 예상되면 재빨리 팔아치워야 한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특정 기업의 주가가 떨어질 것 같다고 판단하면, 투자에 도가 튼 선수들은 없는 주식을 만들어서 팔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애플의 주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면 투자은행에서 애플사 주식을 빌린 다음에 판다(물론 주식을 빌리려면 그만한 신용이나 담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주가가 떨어졌을 때 싼값에 그 주식을 사서 되갚아 버리면,짭짤한 시세차익을 챙길 수 있다.

이렇게 ‘없는 것을 판다’고 해서 공매도空賣渡라는 이름이 붙었고, 영어로는 쇼트 셀링short selling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빅쇼트는 ‘대규모 공매도’를 뜻하는 말이다. 공매도한 주식 가격이 예상한 대로 하락하면 이익을 보지만, 거꾸로 올라버리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채권, 주식, 화폐 같은 금융상품은 물론이고 석유나 밀가루 같은 원자재도 파생상품으로 바뀌는 순간 이런 식의 공매도가 가능해진다.

현물상품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파생상품을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추상적 권리를 사고파는 채권시장은 현대 금융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영화 〈빅쇼트〉는 이 시장의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없는 파생상품까지 허공에서 끌어와 팔아치운다. 금의 구속을 떨쳐버린 화폐는 하늘로 날아오르고, 하나의 파생상품은 탐욕이란 자양분을 흡수하며 수십 종으로 증식한다. 신자본주의 금융경제에서 거품의 팽창은 필연적이다.

꺼지지 않는 거품이 있을까? 거품이 꺼지지 않으려면 집값은 끝없이 올라야 하고, 증시는 무한히 부풀어야 하며, 비트코인 가격은 영원히 상승해야 한다. 단연코 그런 일은 없다. 세상의 모든 거품은 반드시 꺼지게 되어 있다.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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