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등업은 아베 노림수, 삼성전자 죽이기
트럼프 등업은 아베 노림수, 삼성전자 죽이기
  • 이호연 선임기자 (leehoyon84@daum.net)
  • 승인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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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글로벌 경제전쟁 핵심 무기는 '제2·3의 삼성' 육성

[스트레이트뉴스=이호연 선임기자]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국가 배제 결정에 청와대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소미아(GSOMIA) 파기로 맞섰다. 일본이 불 댕긴 싸움은 역사, 정치, 경제, 그리고, 군사 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다. 변수가 하나 둘이 아닌 고차방정식으로 셈법을 알아내기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가르침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책략으로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상책이라 했다.

얼마 전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죽창가’를 들고 나왔다. 우리 국민들이 동학혁명 시절의 결기로 똘똘 뭉쳐 일본의 도발에 대응하지는 뜻이었을 게다. 하지만 죽창으로 무장한 동학군이 일본의 총포를 이길 수 있었을까? 싸움에서 이기려면 무기, 즉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힘은 경제력에서 나온다. 결기만 앞세우면 애꿎은 희생만 초래한다. 결기로 말하자면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의 인간 폭탄 정신만큼 공포감을 자아내는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힘이란 국민들의 지혜와 국력의 총화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섣불리 국민들을 선동하는 것은 금물일 것이다.

일본 극우 실세의 침략전쟁 DNA

전쟁의 근본적인 동기는 게으름, 즉 나태일 것이다. 땅을 갈아 씨앗을 심고 땀을 흘려 수확을 하는 것보다는 총칼로 이웃을 쳐들어가 빼앗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과거 일본의 지방 영주 세력들은 땀 흘려 생산하는 것 보다는 칼과 창으로 이웃 세력을 정복해 부를 창출함을 선호했던 것이다. 이런 끊임없는 전쟁 끝에 일본은 통일국가가 됐다. 더 이상 일본 내에서 정복할 전쟁 상대가 없어지자 이들은 이웃 나라 정복의 꿈을 꾸었다. 이것이 사무라이 정신과 일본인 뼈 속에 까지 녹아있는 일본 극우세력들의 전쟁 DNA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중국의 발전된 문물을 한국을 통해 전수받았다. 이런 과정 속에서 일본인들은 스스로 미개하다는 것을 깨닫고 수치심과 질투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자신들의 게으름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이 더해져 무력으로 이웃 국가들을 손아귀에 넣기 위한 정한론(征韓論)이란 꿈을 설계했다. 이들은 명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전체를 손아귀에 넣기 위한 초석으로 먼저 조선에 쳐들어왔다. 임진왜란이다. 당시 충무공 이순신의 등장과 조명 연합세력에 밀려 일본의 야망은 물거품으로 끝났다.

이달 4일부터 단행된 일본의 대(對)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한일관계가 더욱 경색되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7월 4일 단행된 일본의 대(對)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한일관계가 더욱 경색되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의 표적은 글로벌 반도체 1위, 삼성전자의 주저앉히기가 핵심이다.ⓒ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임진왜란 패퇴이후 수 백 년이 지나 일본의 전쟁 DNA는 다시 부활했다. 일본은 1853년 미국 페리제독이 이끄는 흑선(黑船)의 위세에 눌려 미국과 미일화친조약(米日和親条約)이란 불평등 조약을 체결했다. 이후에도 당시 선진국 여러 나라와 조약을 체결했다. 당시 일본의 지배층들의 굴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868년 일본 메이지(明治) 천황은 메이지 유신을 선포했다. 이를 시작으로 막번(幕藩) 체제를 대신할 입헌군주국으로서의 기틀을 새로 짜는 개혁에 착수한 것이다. 중앙집권제 채택, 행정기구 개편, 신분제 폐지, 사법제도 정비 등을 단행되었고, 탈아입구(脫亞入歐)란 정치적 구호를 내세웠다. 아시아에서 벗어나 유럽으로 진입하기 위해 모든 것을 서양식으로 바꾸기 위함이었다. 부국강병 기반의 과거 정한론(征韓論) 정신이 다시 부활한 것이다.

부국강병을 위한 일본의 필사적 역사 행보

일본의 유신정부는 1871년 이와쿠라 사절단을 꾸려 요코하마를 출항해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워싱턴 D.C.를 거쳐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강국들을 방문했다. 그들의 임무는 미국을 비롯해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맺은 불평등 조약에 대해 재협상을 하는 것이었고, 그리고 선진국의 교육, 과학 기술, 문화, 군사, 사회와 경제 구조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일본의 근대화를 촉진하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정부는 전체 예산의 1% 정도를 사절단 여행경비로 충당했을 만큼 부국강병 목표가 절실했다. 사절단은 당시 특명정권 대사로 내정된 당시 외무성장관 이와쿠라 도모미를 포함해 정부의 핵심인물들, 그리고, 사무라이 출신의 젊은 에리트 집단 등 총 107명의 인원이 1년 10개월에 걸쳐 선진국 견학을 했던 것이다.

일본은 이와쿠라 사절단을 통해 체득한 선진 문물을 일본에 구축하는데 힘을 쏟았다. 철도를 비롯한 기간산업을 정비했고, 부국강병의 기틀을 닦았다.

일본의 탈아입구(脫亞入歐) 국가전략을 위한 군국주의의 첫 번째 희생양은 당시 우리나라였다. 일본은 한반도 지배권을 놓고 청일전쟁을 일으켜 1895년 승리의 전리품으로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을 체결해 요동반도(遼東半島) 영유를 확정하였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도 이겨 전 세계를 상대로 아시아에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국익에는 피아와 선악이 없어 보이는 게 글로벌경제질서다. 2차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원자폭탄 투하(왼쪽)와, 종전 후 경제동물로 급성장한 일본을 한방에 나락으로 떨어뜨린 '플라자 합의'(오른쪽)의 역사의 상대방인 미국과 일본의 수장은 현재 '삼시세끼 밀월'의 공조체재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익에는 피아와 선악이 없어 보이는 게 글로벌경제질서다. 2차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원자폭탄 투하(왼쪽)와, 종전 후 경제동물로 급성장한 일본을 한방에 나락으로 떨어뜨린 '플라자 합의'(오른쪽)의 역사의 상대방인 미국과 일본의 수장은 현재 '삼시세끼 밀월'의 공조체재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10년 한일강제병탄조약 체결로 한반도는 36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받는 처지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일본이 이렇게 무모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과 체결한 밀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1905년 루스벨트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받은 태프트가 일본에서 가쓰라와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상호 교환조건으로 승인하는 밀약을 체결했던 것이다. 강대국간 약소국 나눠먹기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일본은 전쟁광이 돼버렸다. 한반도에서의 엄청난 수탈을 통해 아시아 각국을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급기야 일본은 1941년 하와이 진주만의 미국 해군 기지를 선전포고 없이 기습공격하면서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초반에는 일본이 기선을 잡았으나 미드웨이 해전을 전환점으로 대세가 기울었다. 미국은 마지막 카드로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각각 투하했다. 1주일 뒤 일본 왕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항복문서는 1945년 9월 2일 조인되었다. 1945년 9월 9일 일본은 중국에 대해서도 별도의 절차를 거쳐 항복했다. 이 때 우리도 타력으로 독립국가의 위상을 확보했다.

일본, 화려한 부활과 추락

패전 후 일본의 경제상황은 궁핍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일본은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경제부흥의 전기를 잡았다. 미국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일본에서 조달하기 위해 일본에 군수사령부를 창설했다. 맥아더 사령관의 결정으로 당시 일본은 전체 수출액에 버금가는 규모의 전쟁 물자를 일본으로부터 구매했다. 이를 계기로 전쟁이 끝날 무렵인 1953년 일본의 전체 생산 규모는 패망 전보다 훨씬 커졌다. 전범국가인 일본경제와 일본의 유수 전범기업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을 때보다 훨씬 크게 성장한 것이다.

경제 부흥의 기틀을 잡은 일본의 성장세는 무서웠다. 일본 집권층의 사무라이 정신과 일본인 특유의 지배층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문화는 일본 경제 부활의 초석이 되었다. 일본인 특유의 모방문화와 경박단소(輕薄短小)의 강점을 살려 제조업 강국으로 화려하게 부활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일본 전자제품은 전 세계인들의 구매력을 자극했다. 일본은 구미 각국으로부터 ‘경제적 동물’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일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본은 넘치는 무역흑자와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을 상대로 오만함의 극치를 넘는 돈 자랑을 했다. 지나침이 과하면 화를 입게 되는 법이다.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에 있는 플라자 호텔에서 G5 경제선진국(프랑스, 서독, 일본, 미국, 영국) 재무장관, 중앙은행총재들이 모여 일본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를 높이기로 환율 합의를 결정한 것이다. 당시 미국은 쌍둥이 적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일본 자동차 수출 활황으로 수많은 미국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일본 차량을 부수며 시위가 벌이기도 했다. 레이건 행정부가 ‘쌍둥이 적자’를 해소하기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전략이었다. 플라자 합의로 일본엔화의 가치는 36%까지 올라갔다. 이 때 부터 이른 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반도체 강국이란 신화는 삼성의 등장으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증대를 견인하는 대형 이슈들(왼쪽부터 한일경제전쟁, 미중무역분쟁, 홍콩사태)(자료:philnews/연합뉴스/law)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증대를 견인하는 대형 이슈들(왼쪽부터 한일경제전쟁, 미중무역분쟁, 홍콩사태)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일본의 극우 세력들은 빼앗긴 반도체 강자의 위상을 되찾아 국부를 창출하고, 군사력을 확충해 과거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데 대한민국과 삼성의 급부상이 큰 장애요인이 된 것이다.

국부 창출, 경쟁력 핵심 무기는?

인류 문명사에서 중국의 화려했던 과거의 위상을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은 화려했던 과거의 세계 대국으로서의 위상을 대국굴기(大國屈起)를 통해 중화주의(中華主義)를 다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은 개방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해 그 동안 벌어들인 국부를 기반으로 대국굴기(大國屈起)를 통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국부란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상품을 많이 만들어 팔면 풍성해지는 것이다. 과거 중국은 도자기(China)를 유럽에 많이 수출했다. 포크와 나이프로 쇠로 만든 접시에 담겨져 있는 고기를 썰어 먹는 것보다 하얀 도자기 접시에 담아 먹는 것이 훨씬 품위 있어 보였다. 유럽인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인도의 향신료도 마찬가지다. 산업혁명 이후엔 대량 생산을 위한 기계장치, 증기 기관 기차, 자동차 등의 제품이 당시 시대를 풍미했던 국부 창출의 원동력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국부의 원천이 되는 킬러 제품은 무엇일까? 당연히 반도체다. 과거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라고 정의를 내렸던 혜안이 돋보인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5G시대를 맞이하면서 반도체 수요는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을 방문해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성장을 강조한 이유도 같은 이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5G 시대를 맞이하면서 핵심 경쟁력 분야는 통신네트워크, 스마트폰, 그리고, 비메모리 분야의 센서나 프로세서 제품의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5G 시대와 이전 세대의 차이점은 IoT 시대를 맞이해 비메모리 수요가 획기적인 팽창이 예상된다. 미래 세대엔 1인당 필요한 센서나 프로세서수가 현재 몇 개 수준에서 수 백 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가전제품, 의류, 신발, CCTV, 자동차 또는 가로등 마다 몇 개씩의 비메모리 반도체가 탑재될 것이다.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인간의 5관(觀)을 대신할 센서나 프로세서 수요가 창출될 예정인 것이다. 5G 시대와 4차산업혁명시대에는 반도체 승자가 세계 1등 기업이나 국가로 우뚝 서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일본의 반도체 전쟁 선전포고

그렇다면 향후 시대를 이끌어 갈 주역은 누가 될 것인가? 누가 뭐라고 해도 당연히 삼성이고, 삼성을 품고 있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미국은 삼성을 상대로 특허권 사용료를 무기로 벌인 반도체 전쟁을 벌였으나 삼성은 일본기업들과 달리 도태되지 않았다. 이후 삼성은 일본이나 대만과의 사운을 건 치킨 게임에서도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얼마 전 미국이 화웨이가 네트워크산업의 강자로 부상하자 새로운 경제전쟁 카드를 들고 나와 자국 산업보호를 목표로 중국을 공격했지만, 삼성만 어부지리의 이득을 보았다. 이런 삼성이 비메모리 반도체 굴기 야망을 보이자 공포심을 느끼고 일본은 경제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30일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빈전 선포식 이후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평택 반도체 증설현장을 시찰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4월30일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빈전 선포식 이후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평택 반도체 증설현장을 시찰했다. @ 연합뉴스

미국은 과거 일본과의 반도체 전쟁에서 써 먹어 성공을 거둔 바 있는 관세부과, 지적재산권 침해를 무기로 한 특허권 사용료 징수 정책, 이전가격세제를 통한 불공정 거래 결정 등을 통해 일본 기업들은 굴복시켰지만, 삼성은 꿋꿋하게 버텨냈다. 미국과 일본은 초조할 것이다. 아마도 미국은 일본 뒤에서 일본의 삼성 공격에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원래 아나로그 통신 교환기 시장에서 미국은 강자였다. 미국의 루슨트 테크놀로지를 포함한 유럽 일부 국가기업들이 통신 시장에서 과점시장을 유지했었다. 미국은 디지털 통신 시대가 시작돼 GSM(이동통신 글로벌 시스템) 방식의 무선통신 네트워크 시장 확산에 잠시 멈칫했지만, 유럽 에릭슨 등에 시장 맞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교환기를 앞세워 통신 강자로서의 위상을 지켜냈다. 이후 인터넷 통신 프로토콜인 TCP/IP(Transmission Control Protocol-Internet Protocol) 로 통신 기술이 발전되면서 미국의 씨스코가 세계 시가 총액 1위로 부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통신기술 혁신 과정에서도 삼성은 CDMA 교환기 시장에서 압도적인 강자로 부각됐다. 미국의 애플은 스마트 폰 시대를 열어 핀란드의 노키아를 무너뜨리고 통신기기 시장을 선점했지만 삼성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5G 시장에서 미국은 한국에 뒤져 있고, 일본은 저 멀리 뒤쳐져 있다.

미국은 원래 반도체 종주국이었다. 1970년대 까지만 해도 반도체 산업은 미국의 독무대였다. 1980년대부터 일본 기업들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강국으로 부상했지만, 삼성은 1990년대부터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전 세계적인 리더로 부상했다. 삼성 최고 경영층의 통찰력, 엔지니어들의 지독한 R&D 노력, 생산직 근로자들의 근면함과 장인정신의 총화였다.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은 2030년까지 비메모리 등에 모두 133조원을 투자, 글로벌 시스템반도체 1위를 목표로 한 ‘반도체 비전 2030’을 지난 4월 선언했다.

삼성전자에 대한 미국와 일본의 우려가 현실화된 셈이다. 미일이 삼성 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삼성이 5G 시대를 맞이해 통신 네트워크, 스마트폰 단말, 반도체, 가전제품 등 풀 스팩트럼(Full Spectrum)의 모든 양산라인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5G 세대에 필수적인 비메모리 시장 경쟁력까지 구비하게 된다면 전대미문의 압도적 강자로 부상하게 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일본의 손정의 회장이 영국의 비메모리 강자인 ARM사를 거액을 주고 인수했지만, 삼성이 비메모리 시장에 본격적으로 달려든다면 쉽게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래 전부터 비메모리 시장 확산을 예상하고 착실하게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강국 한국의 임전태세

과거 미국이나 일본이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이유는 미래 시장수요에 대한 통찰력 부족과 과감한 투자 의사결정 실패 등이다. 우리는 이런 실패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일본은 반도체 강국 부활을 꿈꾸며 삼성 때리기에 앞장섰다. 수출 규제를 하겠다고 선언한 에칭가스나 포토레지스트 등의 품목들이 이를 입증한다. 미국도 은밀하게 일본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오월동주가 따로 없다.

혹자는 소재 국산화를 주장하지만, 단기적으로 완성될 것은 아니다. 혹자는 대기업이 우리 중소기업이 개발한 소재나 부품 구매를 회피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반도체 매출액은 연간 120조원, 하루 평균 3천억원의 매출 규모다. 이런 상황에서 에칭가스 연간 구매 금액은 몇 백 억 원에 불과한데, 무모하게 국산 에칭가스를 생산라인에 투입하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할 바보는 없을 것이다.

정부는 R&D 투자를 강화하기에 앞서 반도체 생산 Test Plant를 건립해 국내 중소기업들이 개발한 원료나 소재의 양산 테스트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삼성의 반도체 구매 고객사들을 통해 일본기업에 완제품을 팔지 않을 조건을 내걸어 메모리 반도체를 팔면 된다. 말도 안 돼는 전략이란 비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다. 비상식적 공격에 상식으로만 대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시장점유율은 전 세계 70%를 상회한다. 누가 뭐라 해도 완벽한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시장생산품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주문생산품이다. 삼성의 고객들이 메모리 반도체 구매선을 다른 기업으로 돌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반도체 구매 고객사들은 대부분 생산트래킹시스템(Lot Tracking System)을 갖추고 있고, 중간제품일지라도 자사 제품의 유통경로 파악을 위한 공급망시스템(Supply Chain System)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전략이 될 것이다.

싸움을 하질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지만, 일단 전쟁이 벌어졌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이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나 삼성은 도광양회(韬光养晦)의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과도한 오만은 화를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비 메모리 반도체 시장 강국 주장은 크게 떠든다고 성취될 일이 아니다.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조용히 힘을 길러 결과로 입증하면 되는 것이다. 소재·부품 국내외 시장의 사슬망 확보와 세습 총수일가의 정도경영도 국민이 납득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쇄신이 동시 진행된다면 금상첨화다.  

일본의 식민지 침탈과 인권 유린에 대한 사죄 문제와 관련해서는 유럽식의 공동 대응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만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다. 중국을 비롯해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피해를 입었다. 독일의 빌리브란트 총리가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한 유대인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데 수 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유럽 각국 똘똘 뭉쳤고, 유대인들의 압력으로 미국까지 합세해 독일을 압박한 결과였다. 비록 많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자세로 외교적 노력에 힘을 쏟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도 스와트(SWOT) 분석을 통해 중장기 국가 비전과 발전전략을 수립해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일본은 헌법 개정을 통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돼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확보하자는 엉뚱한 중장기 발전전략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과거 화려했던 세계 중심지(中華主義)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국가중장기 전략으로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착실히 추진해 나가고 있다.

21세기 세계패권의 경제전쟁에서 승리하는 무기는 혹세무민의 죽창이 아닌 핵심 기술이다. 핵심 경쟁력을 보유한 삼성과 제2, 제3의 삼성이 글로벌시장을 이끌 때 남북평화경제도 빛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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