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코리아365] KBS 10대가수 박영순, “여보 당신에게 하고픈 말은, 사랑합니다”
[힐링코리아365] KBS 10대가수 박영순, “여보 당신에게 하고픈 말은, 사랑합니다”
  • 김태현 선임기자 (bizlink@hanmail.net)
  • 승인 2019.08.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대형 히트곡 ‘부부’의 박영순, 오는 30일 합창무대 펼쳐
청계천 공구 수리하는 남편과 함께 41세 때 10대가수 등극
박영순에게 사랑은 ‘믿어서 생기는 수많은 가지들의 조합’
중년에 대박 터뜨렸으나 남편 쓰러지자 모든 것 미련 없이 버려
25년 간병 가능했던 건 투병 중 짜증 한번 내지 않았던 남편 덕
가수 아닌 지휘자로서 선배시민들 합창 지도하는 두 번째 삶 원해
힐링은 ‘덩실덩실’이자 ‘어우러짐’이고 나를 내려놓아 배려하는 것
정장선 평택시장, 특별 솔로(테너) 무대로 연주회 격려 예정
노인복지 애쓰는 대통령 내외 앞에서 힐링 연주회 갖는 게 꿈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이번 연주회는요, 발레 꼬맹이들이랑 일곱 살 아이들, 나이 많은 어르신들, 또 그분들을 섬기는 요양보호사들이 모두 함께합니다. 시간과 눈물이 콜라보 되는 무대가 될 거 같아요. 엔딩 후에 앵콜이 나오면 ‘만남’으로 가려고요. 출연자들이 시간을 넘어서 만나는 무대니까요. 그곳에서 돌아가신 제 남편도 만나고 싶어요. 아마 보러 오시겠죠? 꿈에 오셔서 마음껏 공연 기획하라고, 건강이 좋지 않으신 어르신들을 위해서 한껏 몰입해 보라고 그러셨거든요.”

중년의 나이에 서울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서고, 러시아 오케스트라와 합동 공연을 펼쳤던 KBS・MBC 가요대상 출신 가수, 청계천에서 가업으로 공구 수리점을 운영하던 남편과 함께 ‘부부의 사랑’을 노래해 LP(Long Play Record)판 100만 장을 팔아치우며 일약 국민스타로 부상했던 ‘부부듀엣(최기섭・박영순)’의 아내 박영순, 그가 오는 30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과 시간의 무대’를 펼친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부뚜막에서 부르시던 전래 타령 말고는 평생 노래를 배운 적이 없으셨어요. 그런데 90세 넘어 병으로 누워 계실 때, 그때 최고로 인기 좋았던 가요무대, 김동건 선생님이 사회 보시는 프로그램요, 거기에 당신 딸과 사위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니까, 가만히 TV 앞으로 다가가시더니 화면에 보이는 제 얼굴과 남편 얼굴을 이렇게 쓰다듬고 우시면서 ‘우리 딸이 부른 노래를 아무리 불러보고 싶어도 안 되네’ 그러시는 거예요.”

“그럼 지금 어르신들께 합창을 가르치는 이유가 그때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에?”

“예, 어머니는 노래 한 자락 못 배우고 돌아가셨지만, 가시기 전에 그렇게 말씀하셔서... 우리 어르신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잖아요. 제 능력은 모자라지만, 울 엄마한테 좋은 노래 하나 못 가르쳐드리지 않았나, 해봐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시작했더랬어요.”

환한 표정으로 인터뷰 중인 박영순 기획・지휘자(2019.08.29) ⓒ스트레이트뉴스
환한 표정으로 인터뷰 중인 박영순 기획・지휘자(2019.08.29) ⓒ스트레이트뉴스

힐링(healing)이 필요한 시대, 스트레이트뉴스는 ‘힐링코리아 365’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농림축산식품부 이개호 전 장관, 세계 생화학 분야 석학 천병수 박사, 이찬열 국회 교육위원장, 김재현 산림청장, 한국문인협회 이광복 이사장, 고도원 작가, 이시형 박사 등으로부터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치유의 방향에 대해 들어왔다.

이번 회에는 청계천 공구 수리점 주인의 아내로 평범하게 살아가다 1987년 발표한 노래 ‘부부’가 초대박을 터뜨리면서 부부듀엣으로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한 박영순 지휘자를 만나 그가 걸어온 부부 사랑의 여정과 아픔의 시간, 그리고 두 번째 삶의 가치에 대해 들어봤다.

_공연 연습할 때 보니, 성량이 여전히 풍부하고 에너지가 대단하더라. 음악은 처음에 어디서 어떻게 접했나?

“제 고향이 충북인데,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 아현동으로 갔다. 동네에 미국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 집 창문에 가만히 서 있으면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팝송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 후에 교회에서 풍금을 갖고 놀았다. 그때 목사님이 나비부인, 카르멘, 이런 뮤지컬 무대에 데려가 주시고 그래서 음악이라는 아름다운 세상을 알게 됐다. 너무 좋았다. 주위에서 ‘너는 음악으로 성공할 거다’, ‘외국 나가서 성악 공부를 해라’, 이런 말들을 자주 하셨다.”

_성악을 계속하고 유학도 가고 그러지 그랬나?

“아이구,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수미나 그런 사람들처럼 성악으로 외국유학을 정말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자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고, 어머니 앞에서도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_당시만 해도 유학은 아무나 못 가는 것이긴 했다. 집안사정이 많이 어려웠나?

“어려운 정도가 아니었다. 우리 어머니는 양반집 규수였는데도 외할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교육을 아예 시키지 않으셔서 일자무식이셨다. 거기에 정신대(일본군 위안부) 안 끌려가려고 16세 때 결혼했고, 6・25(한국전쟁)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애들 데리고 상경해서, 그때는 마포와 동대문을 왔다갔다 하는 전철이 있었는데, 그걸 타고 마포 가서 나룻배 새우젓 떼다가 곡식으로 바꿔오고, 그렇게 사셨다. 새끼들 교육시키느라고. 어머니도 딸한테 음악 못 가르친 게 평생 한이셨다. 육성회비 얘기도 못 꺼내던 시절이니, 유학은 가능한 게 아니었다.”

공식 판매 기록 100만 장을 넘긴 ‘부부 1집’ LP(Long Play Record)판의 표지. 박영순 지휘자는 이 사진이 당시 아파트 입구 우편함 앞에서 급히 촬영된 것이라며 즐거워했다. ⓒ스트레이트뉴스
공식 판매 기록 100만 장을 넘긴 ‘부부 1집’ LP(Long Play Record)판의 표지. 박영순 지휘자는 이 사진이 당시 아파트 입구 우편함 앞에서 급히 촬영된 것이라며 즐거워했다. ⓒ스트레이트뉴스

_남편(최기섭)은 중저음 목소리뿐 아니라 인물이면 인물, 키면 키 모두 출중했다. 그런 남편, 많이 따라다녔을 것 같은데 어떻게 만났나?

“지금 포항에 사는 친구가 소개해서 만났다. 제가 남편을 따라다닌 걸로 많이들 오해하시는데 반대로 남편이 절 따라다녔다.(웃음) 20살 땐데, 그때까지도 저는 아카데미음악원에 다니면서 돈 벌어서 유학가려는 꿈을 놓지 않고 있었다.”

_처음 볼 때 ‘첫눈에 반한’ 그런 사랑이었나?

“전혀 아니다. 처음에는 음악 하는데 방해가 된다 싶었다. 그냥저냥 연애를 좀 했는데, 그 사람 집에 간 후로 상황이 바뀌었다. 가보니까 어른들이 모두 아파서 자리를 보전하고 계셨다. 똥오줌까지 받아내야 할 정도로. 그 사람은 결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혼 안 하는 쪽으로 결정했어야 하는데..., 그런데 오히려 그 사람이 측은해지더라. 저는 첫눈에 반하는 사랑은 모른다.”

_그때 느낌이 어땠나?

“그게 뭘까... 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연민도 아니고, 그냥 잠깐 순수한 마음? 저 가정이 나를 필요로 하는 걸까, 내가 저 짐을 함께 지면 어떨까, 필요한 곳에 가서 잘 한번 꾸려가 보자,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_어머니가 반대하셨을 것 같다.

“당연히 반대하셨다. 식구 다 아픈 집을 니(네)가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느냐, 예수를 믿어도 너처럼 어설프게 믿으면 이렇게 불구덩이로 들어가려고 그러는 거다, 하시면서 말리셨다. 그래도 했다. 26살에.”

_아내 박영순에게 사랑은 뭔가?

“믿는 것 아닌가 싶다. 믿으면 수없이 많은 시간의 가지가 생겨나고, 그 가지들, 기쁨과 슬픔과 아픔과 행복의 가지들이 모여서 나무가 된다. 그 나무가 사랑의 나무 아닐까.”

박영순 지휘자의 사랑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박영순 지휘자의 사랑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_남편(최기섭)이 청계천에서 공구 수리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노래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런데 음반은 어떻게 냈나?

“남편이랑 저랑 동갑이다. 41살 때였으니까 결혼 18주년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여보, 당신이 그 좋은 목소리를 나 때문에 포기했으니, 뭔가 해주고 싶다. 우리만 추억으로 갖고 있을 판 하나 낼까?’ 그러면서 관광버스용 테이프 같은 걸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런 건 저랑 맞지 않다고 펄쩍 뛰었더니, ‘알았어, 알았어. 그럼 당신이 좋아하는 걸로 일단 한번 녹음해 봐’ 그랬다. 그렇게 녹음한 테이프가 평소 알고 지내던 음악 전문가 형님한테 넘어갔고, 그분이 그걸 듣고 깜짝 놀라더니 신상호 선생님까지 함께하면서 진지한 토론이 시작됐다.”

_신상호 선생이라면 저작권협회장까지 지낸 유명인인데, 일반인이 추억으로 간직하려는 음반에 참여했단 말인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그러게 말이다. 일단 그분이 누군지를 몰랐고, 또 저는 남편을 100%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완전히 바보였지만.(웃음) 남편이 그러니 그런가보다 한 거지 뭐. 신상호 선생님이 악보를 주셨는데, 너무 좋더라.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가 여자한테, 여자가 남자한테, 뭐 이런 건 있어도 부부가 함께 부르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우리 결혼 18주년에 딱 맞는 악보라고만 생각했다.”

_신상호 선생 곡이라면 메이저 음반사들도 군침을 삼켰을 텐데.

“요즘 SM, JYP, YG 엔터테인먼트 이런 데가 대세라면, 당시 메이저는 지구레코드, 신세계, 오아시스, 성음, 서울음반, 이런 데였다. 저희 ‘부부’ 앨범은 문주란씨 등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소속돼 있던 서울음반(현 로엔 엔터테인먼트, 아이유, 씨스타 등 배출)에서 나왔다.”

_앨범 내려면 큰돈이 있어야 하지 않나?

“아니다. 그때는 돈이 없어도 앨범을 제작할 수 있었다. 앨범 한 방만 성공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되던 시절이었으니까. 서울음반이 당시 빚더미에 앉아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제가 녹음한 걸 듣고 난 후에 신상호 선생님 붙이고 하면서 프로젝트로 갔던 거다. 녹음할 때, 그때는 어쿠스틱(acoustics)이라서 25인조 악단이랑 가수가 동시에 녹음실에 들어가서 처음부터 끝까지 통으로 녹음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조용필씨, 숙자매, 설운도씨의 매니저인 안태섭씨가 우연히 녹음실에 들렀다가 우리 부부 녹음하는 걸 듣고는 ‘야, 여기 이번에는 돈 벌겠는데?’ 그러셨다더라.”

1985년 시작한 이후 KBS의 대표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가요무대(자료:KBS 홈페이지)
1985년 시작한 이후 KBS의 대표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가요무대(자료:KBS 홈페이지)

_안태섭 매니저 말대로 돈은 벌었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 있다. 김동건 선생님이 진행하는 가요무대, 거기 출연한 후에 난리가 났다. 방송국과 언론에서, 전화가 계속 울려서 잠을 못 잘 정도였다. 그게 대박이 나는 신호였다. 임성훈씨, 왕영은씨가 생방송으로 진행하던 ‘KBS 전국은 지금’ 프로그램이 가요무대 영상 삽입해 가면서 일주일 내내 특집으로 편성했다. 아파트에 중계차 오고 케이블 깔고 소파랑 화초 치우고, 집을 아예 새로 꾸미더라.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었다. 서울음반은 또 서울음반대로 앨범을 아무리 찍어내도 물량이 모자랐다. 그때 공식 LP판 100만 장, 해적판 테이프 수백만 장이 팔렸고, 우리 앨범 하나로 서울음반 빚 다 갚았다. 얼마쯤 후에 매니저가 1억을 현금으로 가지고 오더라.”

_초대형 히트곡인 ‘부부’뿐 아니라, ‘영원한 사랑’, ‘백년해로’ 같은 곡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애착이 가는 곡이 있나?

“부부 2집 중에 ‘용서하세요’라는 곡이 있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랑 ‘대동강 편지’, ‘옥경이’를 작곡한 임정수 선생님이 주신 곡인데, 부모님께 드리는 노래다. 부를 때마다 우리 어머니가 생각이 나는 곡이라서 저한테는 특별하다.”

_남편(최기섭)이 25년 동안 투병했다. 부부듀엣이 갑자기 화면에서 사라지는 바람에 방송계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 했다고 들었는데.

“방송 도중에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신장 투석을 17년 하고, 중간 중간에 합병증이 와서 대수술도 여러 차례 했다. 서울생활이고 노래고 모두 포기하고 남편 간병에 올인해야 했다. 바다가 좋다 그래서 보령 대천해수욕장 끝에서 펜션 하면서 간병했고, 버티는 데까지 버티자는 생각으로 서산 가야산 중턱에 황토 흙집을 지어서 살기도 했고, 그러다가 일주일에 세 번 투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와서 신장전문병원이 있는 아산 온양온천으로 이사하고 그러면서 살았다.”

오는 8월 30일 평택남부문화예술회관에서 펼쳐질 ‘사랑 그리고 섬김’ 연주회를 앞두고 앨토 파트와 수화 파트 연습을 지도 중인 박영순 지휘자(2019.08.29) ⓒ스트레이트뉴스
오는 8월 30일 평택남부문화예술회관에서 펼쳐질 ‘사랑 그리고 섬김’ 연주회를 앞두고 앨토 파트와 수화 파트 연습을 지도 중인 박영순 지휘자(2019.08.29) ⓒ스트레이트뉴스

_결국 남편이 작년에 유명을 달리 하셨다. 아직도 마음이 아플 텐데, 우리 국민 중에는 긴 투병과 간병에 힘들어 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분들에게 용기를 좀 주셨으면 한다.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우리 양반(남편) 몸 전체를 보석 다루듯 했다. 심장에 스탠트가 5개가 들어 있고 폐에 물이 차는 상황에서, 말초까지 피가 가지 않아 발가락이 다 녹아내렸다. 뼈가 드러난 발가락이 신발에 닿으면 아프니까 구두건 운동화건 모든 신발 앞쪽을 다 잘라내고 신고 다녔다. 모든 게 조심 조심... 그런데도 그 양반은 저에게 짜증을 전혀 내지 않았다. 너무 아플 때는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가서 진통제를 먹고 참아내다가 조금 가라앉으면 다시 거실로 나오곤 했다. 주위에서는 저를 칭찬하지만, 제가 견딜 수 있었던 건 남편이 늘 ‘나 때문에 힘들지’, ‘여보, 당신 같은 아내를 만난 건 행운이야, 고마워’, 이런 위로를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선했기 때문에 간병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환자가 짜증내는 건 당연하다. 오죽 아프면 그러겠나. 그런데 그러면 가족이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저는 환자가 아닌 가족이 정신과 물질의 고통으로 더 힘들 수도 있다는 말씀, 그러니 환자가 비록 아프시긴 하지만 먼저 변해야 가족이 덜 지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투병과 간병의 질은 환자가 결정한다는 생각이다.”

_남편이 가장 보고 싶을 때는 언제인가?

“밖에 나왔다가 집에 들어갈 때면 항상 거실에서 미소를 띠고 맞아줬는데, 그때가 가장 그립다. 혼자 기차나 지하철을 타고 어디로 갈 때, 주로 음악을 듣는데, 그냥 이대로 그 양반 계신 곳까지 계속 갔으면 할 때도 있다. 이따금 남편이 온양온천역에서 절 기다리곤 했는데, 이제 내려 봐야 안 계실 테니까.”

_‘부부’ 가사 중에 “당신이 내게 있어 등불이었고”, “당신의 그림자로 행복합니다”라는 가사가 나온다. 후회는 없나? 남편을 다시 만나면 함께 할 텐가?

“왜 후회가 없겠나. 내가 이렇게 해봤으면 더 사실 수 있지 않았을까, 저렇게 해봤으면... 그중에 병실에 계실 때 옆침대에 딸들이 와서 간병하는 걸 보고 ‘나도 딸이 하나 있었으면’ 그러시더라. 딸 못 낳아 드린 게 후회된다. 다시 만나면 지금 후회되는 걸 모두 다 해주고 싶다.”

<남편에게 보내는 아내의 영상편지>

이번 ‘사랑과 섬김’ 콜라보 연주회와 관련, 평택남부노인복지관의 고은자 관장을 만났다.

“어르신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 갈 곳이 있고, 반겨주고, 가서 할 일이 있으니 굉장히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가족들도 부모님이 많이 바쁘셔서 함께 식사도 제대로 못 할 정도라면서 정말 좋아들 하신다. 어르신들이 조금 우울해지시는 건 금요일이다. 복지관이 토, 일요일은 문을 닫기 때문이다. 사실 어르신들이 즐거워하시는 모습에 저희는 더 신이 난다.”

고은자 관장은 “도레미합창단은 그동안 여러 경연대회에서 수상을 많이 한 경력이 있고, 병원과 요양원, 교도소 등지에서 아름다운 재능기부 봉사활동을 해오셨다”며 “노년을 멋지게 보내시고 계시는 만큼 선배시민으로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마음껏 펼치시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이 평택시 위탁으로 운영 중인 평택남부노인복지관(경기도 평택시 평택5로) 전경(2019.08.29) ⓒ스트레이트뉴스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이 평택시 위탁으로 운영 중인 평택남부노인복지관(경기도 평택시 평택5로) 전경(2019.08.29) ⓒ스트레이트뉴스

_이제 두 번째 삶에 대해 이야기하자. 가수가 아닌 지휘자로서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 어떤 느낌인가?

“지금 집중하는 합창은 어르신들이 하시는 도레미합창단, 도레미를 섬기고 모시는 충남요양보호사들이 하는 미레도합창단, 이렇게 두 곳이다. 어르신들, 처음에는 노래도 잘 못하는 내가 어떻게 화음을 해, 못해, 이러셨지만 지금은 다들 잘 하신다. 미레도는 요양보호사들이 정해진 일만 할 게 아니라, 노래를 불러드리면서 모시자, 다양한 환자 분들의 특성에 따라서 다양한 색깔의 노래를 들려드려야 하지 않겠나, 그런 취지로 창단된 합창단이다. 지휘하는 사람으로서 두 팀의 콜라보뿐만이 아니고, 화음을 몰랐던 사람이 화음을 알게 되고, 제 지휘 동작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봐주시는 게 정말 보람 있다.”

_이미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우리나라 노인복지,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한다고 보나?

“저도 74세이니 배워야 하는 나이로 접어들고 있다. 90이 넘으신 분들도 오셔서 문화 커뮤니티에 적응하실 정도이니 몸만 불편하지 않으면 이제 배우고 싶은 건 다 배울 수 있다. 나라가 주는 혜택이다. 참 감사한 일이다. 건강이 좋아지시는 어르신들도 많다. 정말 고맙고 계속 발전해 갔으면 좋겠다.”

_노년뿐 아니라, 이 시대는 힐링(healing)이 반드시 필요한 시대다. 그만큼 삶이 팍팍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하는 활동도 분명 힐링활동인데, 힐링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생각하는 힐링은 ‘덩실덩실’이고 ‘어우러짐’이고 나를 내려놓는 것이다. 합창이라는 게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음악은, 노래라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하고, 어떤 시골 난장에서처럼 잠재된 흥을 춤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다. 그 안에 눈물도 있고, 기쁨도 있다. 그게 덩실덩실이고, 어우러짐이다. 또 여러 사람이 하는 합창은 동료를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노래를 잘한다 해도 나를 내려놓지 않으면 솔로일 뿐이다. ‘잘하는 나’도 내려놓아야 하고, ‘못하는 나’도 내려놓아야 한다. 서로 희생하고 배려하는 거, 그 희생과 배려에서 배우는 거, 그게 합창이다. 그래서 합창은 온통 힐링이다.”

교도소와 병원, 요양원 등지에서 왕성한 재능기부 봉사활동을 펼치는 도레미합창단. 사진은 천안개방교도소에서 활동 중인 모습 ⓒ스트레이트뉴스
교도소와 병원, 요양원 등지에서 왕성한 재능기부 봉사활동을 펼치는 도레미합창단. 사진은 천안개방교도소에서 활동 중인 모습 ⓒ스트레이트뉴스

_아무래도 어르신들이 대충대충 부르고, 지시한 것 잊어먹고 그러면 뿔도 나고 그럴 것 같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본인만의 힐링 활동이 있다면?

“질문해줘서 고맙다. 제가 머리가 더 하얘졌다.(웃음) 연습할 때 녹음을 해 두었다가 집에 가는 길에 듣곤 한다. 그때마다 아, 저 연세에 이렇게 따라오려고 애 쓰시는데, 평생 노래라고는 배운 적이 없는 분도 많은데,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야 쓰나, 그러면서 스스로를 다시 채찍질하고 다독인다. 그렇게 하니까 힐링이 되더라. 저도 그런 식으로 어르신들에게서 많이 배운다. 물론 다음 주에 가면 또 속으로 뿔이 나서 막 지적하고 그러지만. 하하.”

_오는 8월 30일에 평택남부문화예술회관을 통째로 빌려서 도레미합창단과 미레도합창단이 함께하는 ‘사랑 그리고 섬김’이라는 콜라보 연주회를 갖는다. 합창단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저는 복도 많다. 이번 공연은 복지관의 도움 덕에 어르신들이 요양병원, 교도소, 요양원 같은 곳에 가서 열심히 합창봉사를 하시면서 마련한 기금으로 준비한 거다. 못 배운 것, 글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때 시대상이 그랬으니까. 그 시대에 혜택을 못 누린 분들이 혜택을 받은 분들보다 더 장한 어르신들이다. 그런 분들이 꾸미는 무대다. 당당하게 프로그램에 참여하셨으니 자신의 무대를 마음껏 자랑하시기를 바란다. 모쪼록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되었으면 하고, 단원 여러분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이 하셨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다.”

_원래 이 연주회가 12월에 계획됐던 걸로 들었다. 8월로 당긴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이번 공연은 훌륭한 음악을 들려주는 무대가 아니라, 꼬맹이들과 어르신들, 또 어르신들을 모시는 요양보호사들이 최선을 다해서 관객과 함께 감동을 나누는 무대다. 사실 공연을 기획한 후에 벌써 몇 분이 건강을 잃으셨다. 돌아가신 분도 계신다. 이번 공연에는 귀가 들리지 않는 어르신, 걸음을 잘 못 걸으시는 어르신, 시력이 거의 사라진 어르신, 치매가 급속도로 진전되는 어르신, 겨울까지 가면 안 될 어르신도 참여하신다. 죽기를 각오하고 이번 무대를 준비하신 분도 계신다. 그분들에게는 이번 무대가 마지막이다. 그만큼 귀한 무대다. 그게 8월로 당긴 이유다.”

<도레미합창단 콜라보 연주회 앨토 부분 마무리 연습 장면>

온라인 음악서비스 멜론(Melon)이 2011년 발매한 부부듀엣의 음반 'Man and Wife'
온라인 음악서비스 멜론(Melon)이 2011년 발매한 부부듀엣의 음반 'Man and Wife'

_앞으로 합창단이 꼭 해봤으면 하는 꿈이 있다면?

“저는 정치는 모르지만, 어르신들 복지가 계속 발전해온 것은 피부로 느낀다. 감사한 마음이다. 그 마음을 애 쓰시는 대통령님 부부를 모시고 청와대 뜰에서 실버합창단 연주회로 조금이나마 갚아드리는 게 꿈이다. 애 쓰시는 거 무엇으로 갚겠나, 복지정책이라고 하나? 그 정책의 혜택을 받은 결과로, 합창으로 보여드려야지. 그렇게 힐링시켜 드리고 싶다.”

_박영순 개인이 꿈꾸는 두 번째 삶은?

“아는 사람들과 단절하다시피 남편에게 올인하면서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았다. 그 양반 보내드리고 나서 저는 지금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머지않아 80인데, 남편에게 드렸던 정열을 저 자신에게 부여하면서, 작곡, 작사 같은 걸 배워서 작곡가들에게 보내고도 싶고, 못했던 공부도 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 다시 정열적으로 100살까지 살 생각이다.”

_마지막으로 힐링과 관련해서 국민께 한 말씀 부탁한다.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때까지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지 않나 싶다. 노인복지관이 전국에 있다. 제가 생각하는 노인복지관은 남은 인생 소일하는 데가 아니라, 경험을 쏟아내는 ‘가장 큰 대학’이다. 프로그램도 다양하고 알차다. 아직 노인복지관을 모르는 어르신들은 당당하게 입학해서 배우고 문화를 즐기시기를 바란다. 또 이런 노인복지가 계속해서 발전하기를 정말이지 원한다. 하나 더 바라는 것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도 좋지만, 단독 공간에 네다섯 분 정도가 함께 살면서 텃밭도 가꾸고 힐링도 하는 그런 합창공동체까지 발전했으면 하는 기대도 있다. 아무튼 노인복지가 이렇게 발전한 건 국민 여러분 모두의 덕분이다. 깊이 감사드린다. 부모님이나 나이 드신 주변 어르신들이 행복하게 사시도록 계속 배려해 주시기를, 여러분 덕택에 우리 노년이 젊은 세대와 하모니를 이룰 수 있게 되기를 고마운 마음으로 부탁드린다.”

민주당 사무총장 시절 한 무대에서 성악을 부르는 테너 정장선 시장(자료:cafe.daum.net/naigi30 by 홍성범 작가) ⓒ스트레이트뉴스
민주당 사무총장 시절 한 무대에서 성악을 부르는 테너 정장선 시장(자료:cafe.daum.net/naigi30 by 홍성범 작가) ⓒ스트레이트뉴스

이번 도레미와 미레도 합창단 콜라보 연주회 솔로 부문에 특별출연하는 정장선 평택시장을 만났다.

_중앙 정치무대에서 뵙고 오랜만이다. 노래를 잘 하시는 줄은 미처 몰랐다. 이번 공연에 솔로로 특별출연할 계획인데.

“잘한다기보다는 좋아해서 배우고 있다. 우리 박영순 선생님 하면, 정 하나로 살아온 세월, 이렇게 시작하는 ‘부부’라는 노래로 정말 한 시대를 풍미하셨던 대단한 분이다. 그런 분이 평택에서 활동하고 계신다는 것 자체가 우리 평택의 자랑이다. 이번에 또 솔로무대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 정장선의 비목을 들려드리기 위해서 제 테너 목소리를 열심히 다듬고 있다.”

_합창단 단원들에게 격려의 말씀 부탁한다.

“도레미합창단의 평균 연령이 77세다. 2010년에 창단해서 그동안 재능기부와 나눔을 정말 잘 실천해 오셨다. 특히 이번 공연에는 요양보호사님들이 하는 미레도합창단도 함께해서 기대가 크다. 음악은 마음을 위로하는 힘이 있다. 그 힘으로 일상에 지친 우리 평택 시민들께 감동으로 다가가는 힐링 타임을 만들어 주셨으면 한다. 단원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 드리고, 무탈하게, 또 멋지게 공연 즐기시기를 바란다. 이번 공연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부부듀엣 가수 박영순의 첫 번째 시간은 남편 최기섭과 함께한 사랑이었다. 이제 그는 세상을 향해 두 번째 사랑을 외치고 있다. 두 번째 사랑의 대상은 ‘선배시민들’이다. 그 변심을 바라보는 이가 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곁에서 “여보 당신에게 하고픈 말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 한마디뿐이라오”라고 고마워했던 남편 최기섭이다. 그가 아내 박영순의 아름다운 변심을 하늘거실에서 온화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다.
bizlink@straightnews.co.kr

 


주목도가 높은 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