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초기를 둘러매고 선산에 오르는 김씨의 몸이 천근만근이다. 해마다 하는 일이지만 나이가 들어선지 벌초도 이젠 예전같지 않다. 내년부터는 대행업체에 맡겨야지 하면서도 만만치 않은 벌초비가 걱정이다. 팥죽같은 땀을 흘리고 비틀거리고 내려와 개운하게 등물이라도 하고나니 좀 살 거 같다. 테레비 속 뉴스에서는 어느 여성국회의원이 삭발을 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온다. "어허~ 민주투사 나셨네."

서슬퍼런 군사독재정권 시절, 단식과 삭발은 재야운동가들의 주된 시위방식이었다. 전태일이나 박승희처럼 몸을 산화해 노동자 권리와 민주주의를 외친 '열사'도 있었다. 새로 구성된 노동자단체의 집행부는 삭발한 머리위에 붉은 띠를 두르고 대정부투쟁을 선언하는 것이 통과의례처럼 됐다. 자식의 목숨을 빼앗긴 세월호 희생자의 부모는 단식과 삭발로 '진실'을 요구하며 절규했다. 그들을 비웃고 손가락질 하던 당시의 집권여당이 이제는 민주주의와 법질서를 논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져버린 정치인들이 이제는 '삭발'이라는 의식이 가지는 의미까지 모독하고 있다.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박지원 의원은 정치인들이 하지말아야 할 세 가지로 '의원직 사퇴, 단식, 삭발'을 꼽았다. '사퇴한다고 떠들어댄 의원 중에 사퇴한 사람 없고, 단식으로 굶어죽은 사람 없고, 머리는 또 자라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길게 설명할 필요없이 요는 이거다. '쇼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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