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장면이다. 살인사건 현장을 다시 찾은 송강호는 지나가던 소녀를 만난다. 범인의 인상착의를 묻는 질문에 소녀는 이렇게 답한다.

"그냥 평범한 얼굴이었어요."  

미완의 수사로 남을 것 같았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유력한 의자가 검거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경찰은 DNA 일치를 증거로 범인을 확신하는 분위기지만 풀어야 할 의구점도 남아있다. 당시 특정했던 혈액형이 맞지 않는 것 등을 비롯한 여러 앞뒤 정황들이다. 범인으로 확정된다 하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이 어렵다고 한다. 여론은 '공소시효 폐지'를 외치며 공분하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에서 '악의 평범성'을 언급했다. 유대인 학살은 반사회 성향의 인격장애자가 아닌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졌다는 것이다. 즉, 아돌프 히틀러의 개인 광기가 아니라 여기에 동조한 다수대중의 뒤틀린 이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파시즘의 다른 얼굴은 악마였던 것이다.  

역사책에서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의 다른 페이지에 일본의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이 기록되어 있다. '위안부'와 '강제노동'은 어떠한가. 해방 후 우리나라 안에서도 '이념'을 내세워 무수한 악행이 저질러져 왔다. 이 악행을 방관했던 어떤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미래가 중요하다'고 '지나간 것은 덮자'는 주장이 나온다. '위안부는 없다'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주문을 건다. 악마는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소환된다. 

화성연쇄살인에 희생된 10명의 피해자 유족의 심정들은 어떠할까. 성노예로 끌려갔던 할머니의 기억에 깊이 패인 상처는 어떠할까. 빨갱이라는 오명으로 죽어나간 제주 양민과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진 광주 시민군의 영혼은 누가 달래줄까. 가해자는 단죄가 아닌 사면이라는 축복을 받았다. 조용히 미소지으며 오늘도 주어진 수명에 하루하루를 더하고 있다. 역사의 심판에는 공소시효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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