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54〉금융업은 도박업이다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54〉금융업은 도박업이다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9.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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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금융업은 도박업이다

“지난 30년 동안 경제의 극단적 금융화를 눈으로 직접 보았다. 이는 제조업, 건설업, 농업이나 다른 형태의 산업에 기대기보다 금융 거래를 통해 부를 창출하려는 경향과 관련이 있다. 전통적으로 금융은 거래, 생산, 소비를 촉진시킨다. 금융은 다른 활동을 지원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금융은 기어에 윤활유를 바르는 것과 비슷하다. 필수적인 요소지만 엔진 자체는 아니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금융은 암처럼 전이되어 생산활동에 기생했다.” 통화제도 분석가이자 금융투자 일선에서 활동해온 제임스 리카즈의 말이다. 신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은 날카로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1971년 달러가 금에게서 독립했을 때, 월가의 금융가들 머릿속에는 아마도 이런 생각이 스쳤을 것이다. “그래? 이제 달러를 막 찍어도 된단 말이지?” 그 말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이제 판돈을 마구 키울 수 있겠군.” 

다른 나라에서 자국 화폐를 남발하는 것과 미국이 달러를 대량으로 발행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달러는 세계의 기축통화다. 한국가가 통화량을 과다하게 늘리면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온 국민이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달러는 전 세계로 흡수되어 소비되므로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가능성이 낮다. 더구나 미국은자본 수출에 탁월한 능력과 노하우를 지닌 나라 아닌가?

장당 9.1센트의 인쇄비로 100달러짜리 연방준비은행권Federal Reserve Note을 무한정 찍어내는 것은 오직 미국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사실은 인쇄기를 돌릴 필요도 없다. 키보드만 몇 번 두드리면 시중은행의 지급준비금 계좌로 수조 달러의 본원통화가 공급된다. 실제로 미국 연준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그렇게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금융시장과 증권시장은 동의어다. 금융시장이란 두루뭉술한 용어보다 증권시장이란 구체적 용어가 시장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금융자본주의 또한 증권자본주의라고 해야 의미가 선명해진다. 증권시장에서 거래되는 금융상품은 100퍼센트 종이로 된 문서, 즉 증권이다. 주식, 채권, 선물, 화폐 등의 증권 거래는 실물의 개입 없이 종이만 왔다 갔다 한다. 현물시장과 마찬가지로 증권시장에서도 교환의 매개는 역시 화폐다. 화폐라는 종이 쪼가리가 팽창하는데 다른 종이쪽이라고 가만있겠는가. 화폐와 함께 주식과 채권도 부풀어 오른다. 특히 파생금융상품이 증권의 팽창을 주도한다.

화폐의 남발 다음에 오는 것은 증권시장의 팽창이다. 2018년 1월 26일의 다우지수(26,616포인트)는 바닥을 찍었던 2008년 3월(6,547포인트)에 비해 무려 400퍼센트 넘게 상승했다.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 거품이 부글부글 끓었던 2007년의 꼭짓점에 비해서도 거의 2배 가까이 부풀었다. 정상적인 경제생태계에서 주가가 저 정도로 오르려면 매년 큰 폭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해야만 한다.

주가는 기업의 가치를 반영한다. 따라서 기업의 실적이 좋으면 주가가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Dow Jones Industrial Average는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된 30대 우량기업의 평균 가치가 반영된 지표다. 다시 말해 미국 경제의 축소판이다. 그렇다면 2018년의 미국 경제는 2007년보다 2배 가까이 좋아졌는가?

‘70의 법칙’을 적용하면 2007년부터 10년 동안 매년 7퍼센트씩 성장해야 경제규모가 2배로 커진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2006년 이후 한 번도 3퍼센트를 넘은 적이 없다. 그렇다면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연 평균 7퍼센트씩 팽창한 다우지수는 미국의 실물경제와 동떨어진 지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도표 16]이 보여주는 것은 명백한 거품이다. 그 거품은 머니게임에 통달한 자본가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미국의 기업 경영자들은 금융위기 이후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가 띄우기에 열중했다.

예를 들어 2013년 4월, 애플사는 이익잉여금retained earnings에 170억 달러의 차입금을 얹어 총 600억 달러가 소요되는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기업을 증권시장에 상장하는 이유는 주식을 팔아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다. 우리 모두 경제학 교과서에서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거꾸로 빚까지 내가면서 자기 회사의 주식을 사들이는 행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미국의 기업 경영자들은 대부분 창업주가 아니라 전문경영인이다. 그들은 채용될 때 고액 연봉과 함께 스톡옵션stock option을 받는다. 스톡 옵션이란 기업의 임직원이 일정 기간 내에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자사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스톡옵션은 주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식을 살 권리’를 받는 것이므로, 약정된 가격보다 주가가 낮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스톡옵션에는 기업을 잘 경영해서 주가를 올리고 그에 따른 보상도 받으라는 주주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기업을 키우고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는 기업경쟁력을 강화하고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 인재를 뽑고 생산설비를 개선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런 일련의 노력을 ‘생산적 투자productive investment’라고 한다.

그런데 더 손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자사주 매입이다. 거액의 차입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면 증권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의 수량이 감소하므로 주가가 올라간다. 그리고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우리 회사 주식이 저평가되었다”고 언론 플레이를 하면, 귀가 솔깃해진 개미투자자들이 주식 매수 대열에 합류한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가진 주주들이 가장 좋아한다. 보유한 금융자산이 무럭무럭 불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가가 올라간 만큼 스톡옵션을 가진 경영자의 이익도 커진다. 이런 경우를 두고 ‘돈 놓고 돈 먹기’라고 한다.

기업이 속으로 곪아도 주가는 상종가를 칠 수 있다. 주가지수가 실물경제를 반영한다는 소박한 믿음은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도표 16]은 대략 1980년대부터 금융경제의 본격적인 팽창이 시작되었음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 말은 월가의 자본가들이 세계를 커다란 도박장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그때부터 금융경제는 메이저리그가 되었고, 실물경제는 동네축구로 전락했다.

[도표 16]의 1980년대 구간을 보면서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떠올렸다면 역사의 행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수상은 금융자본가들의 장기적 구상을 실행한 꼭두각시였다. 아마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몰랐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는 신자유주의, 경제적으로는 신자본주의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세계를 새로운 시대로 끌고 갔다. 1980년대 이전의 긴 횡보는 주가지수가 실물경제를 반영했던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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