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저녁이었다. 2014년 10월27일 '마왕' 신해철(1968년생)이 돌연 세상을 떠났다. 

세상살이에서 가정법이 가장 의미 없는 일이라지만, 신선한 음악과 따끔한 일침의 고인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작년 신해철의 사망으로 예정됐던 몇몇 무대가 취소됐다. 12월 국립국악관현악단 원일 전 예술감독과 함께 선보이기로 했던 '시나위 프로젝트'도 그 중 하나였다. 국악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시나위를 록음악으로 풀어낸다는 계획이었다. 국악에도 관심이 많았던 신해철이 살아있었더라면, 이 음악을 알리는 데 좀 더 힘을 보탰을 것이다. 

무속음악에 뿌리를 둔 즉흥 기악합주곡 양식의 음악이 시나위다. 록 역시 즉흥연주인 잼에 특화된 밴드 사운드가 기반이다. 그가 돌연 숨을 거두면서 서양음악과 국악의 즉흥성이 어우러지는 실험적 공연을 놓친 셈이다. 

1990년대 한국 록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신해철은 록뿐 아니라 전자음악과 국악 등을 다룬 진보적인 뮤지션이다. 신해철이 주축인 록밴드 '넥스트'가 1995년 발매한 3집 '더 리턴 오브 넥스트 파트 II 더 월드(The Return of N·EX·T Part II The World)'에 수록된 '코메리칸 블루스'와 '에이지 오브 노 갓' 등 2곡이 시작이었다. 

그의 국악에 대한 관심은 넥스트의 첫 싱글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1997)에 실린 '아리랑' 등 아리랑으로 이어졌고, 그해 전북 무주·전주에서 열린 제18회 동계유니버시아드경기대회의 폐막식에서 아리랑을 록 버전으로 편곡해 들려줬었다. 

1999년 발표한 프로젝트 앨범 '모노크롬'에서 국악 실험은 절정에 이른다. 록의 본고장인 영국 유학 당시 만난 멤버들과 내놓은 이 앨범에서 전위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특히 국악과 일렉트로닉의 접목을 보여준 '무소유'와 '고 위드 더 라이트(Go with the light)'가 압권이었다. 

신해철은 2009년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생중계된 문화평론가 진중권과 대담에서 해외 진출을 선언하며 넥스트 멤버들끼리 밴드 이름을 '파 이스트 샤먼 오케스트라'로 바꾸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말했다. 한국적 정서와 정체성이 담긴 음악을 하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이와 함께 '키덜트적 삶'(문화평론가 권유리야), '원조 소셜테이너'(소사이어티+엔터테이너)로 통했던 이력 등으로 인해 신해철은 사망 당시 연예계를 넘어 범사회적인 추모 열기를 불러 일으켰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절이 하 수상한 이때 그의 날카로운 독설을 그리워하는 이가 많은 이유다. 

2001년부터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 스테이션' DJ를 맡아 과감하면서 파격적인 발언으로 '마왕'이란 별명을 얻은 그는 특히 정치적인 발언과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1946~2009) 후보를 지지하며 선거유세에도 참여했다. 2003년 이라크전 파병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최근 또 논란이 된, 왜곡된 음원 유통 시장에 대한 비판도 가했다.

신해철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25일 오후 경기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에서 열린 1주기 추모식에는 500명이 운집했다. 넥스트 보컬 이현섭은 이 자리에서 "신해철 형님의 발자취는 한국 대중음악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 아직도 우리는 형님을 존경하고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합니다"라고 추모했다. 추모식 전날에는 KBS 2TV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와 JTBC '히든싱어4'에서 고인을 기억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기도 했다. 

1주기 당일인 27일에는 유작 3곡을 포함해 '더 늦기 전에', '그저 걷고 있는 거지', '길 위에서', '힘을 내' 등 고인의 숨어 있는 명곡까지 총 40곡이 실린 '웰컴 투 리얼 월드(Welcome To The Real World)' LP판이 출시됐다. 고인과 친하게 지낸 가수 윤종신은 신해철의 동명곡을 리메이크한 '고백'을 발표했다. 수익금은 전액 유족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신해철이 초창기에 키운 가수 은가은(27)이 MBC TV '일밤-복면기왕' 등을 통해 새삼 가창력과 가능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해철의 사망원인을 최종적으로 가리기 위한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신해철은 위장관유착박리 수술을 받은 뒤 가슴 통증과 고열에 시달리다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 강모(45)씨가 의료과실 혐의를 부인하며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부인 윤원희(38)씨는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보겠다"고 말했다. 

신해철 추모는 내년으로 이어진다. 신해철 팬클럽이 주도하는 추모비는 연말 번동 북서울꿈의숲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신해철이 밴드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로 'MBC 대학가요제'를 통해 데뷔한 날인 12월24일(1988)에 추모비를 공개하는 제막식을 하기로 했다. 신해철은 번동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유명인들이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류를 겪은 내용들을 소개한 '무라카미류는 도대체'라는 책에서 고인은 북서울꿈의숲 전신인 드림랜드를 언급하기도 했다. 추모비에는 신해철의 유년 시절을 노래한 가사가 각인될 것으로 알려졌다

신해철의 작업실이 있는 경기 성남시는 '신해철 거리'(가칭) 조성을 위한 정책연구 용역을 11월 말까지 마친 뒤 내년부터 본격 공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고인의 작업실은 분당구 수내동 주변 160m 구간으로, 지역 상권 활성화 사업과 연계한 문화의 거리로 조성된다.

많은 이들이 고인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지만 부인의 마음은 못 따라간다. 윤씨는 "정말 암흑 속에 있는 것 같은 시간이었는데요. 여전히 누울 때마다 빈자리가 그립고, 아이들도 밤에 자다가 몰래 울기도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신해철의 묘비에는 넥스트'의 대표곡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의 가사가 새겨졌다. "등불을 들고 여기서 있을게, 먼 곳에서라도 나를 찾아 와. 인파 속에 날 지나칠 때, 단 한 번만 6내 눈을 바라봐. 난 너를 알아 볼 수 있어, 단 한 순간에. 난 나를 지켜가겠어. 언젠간 만날 너를 위해"라고 고인은 노래했다. 윤씨는 "묘비에도 써 있듯, (남편이) 계속 지켜줄 거라 믿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팬들도 같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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