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중 한국외대법학대학원 교수
정한중 한국외대법학대학원 교수

우리는 자주 원칙을 잊고 산다. 예외에 익숙할수록 더 그렇다. 무죄추정원칙이 유죄추정으로 운용되고 있는 우리 형사절차도 그 중 하나이다.

프랑스혁명 후 형사절차에서 진짜 원칙이 나타났는데, 탄핵주의 형사절차가 그것이다. 그 이전에는 규문주의가 형사절차를 지배했다. 규문주의란 법관이 검사 역할도 하여 공소도 제기하고 재판도 하는 구조였다. 따라서 기소기관인 검사의 기소(소추)를 전제로 하는 피고인이라는 개념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고,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조사의 객체 내지 고문의 대상이어서 방어권의 주체나, 무죄추정도 인정될 수 없었다.

조선시대까지 우리 원님재판과 비슷하다. 탄핵주의는 소추기관과 재판기관을 분리하여 검사가 소추기관으로 등장하여 법관은 재판만 담당하는 구조이다. 이에 따라 재판에서 고문이 금지되고, 피고인이 공판절차에서 소추기관인 검사와 대등하게 자신의 권리인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탄핵주의는 영미법계와 대륙법계를 막론하고 자유주의 형사절차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간주되고 규문주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탄핵주의에서는 기소되기 전 피의자와 기소 후 피고인은 단순히 두 글자의 차이가 아니다. 피고인은 이제 수사나 재판의 객체가 아니라 재판의 주체 내지 당사자(민사소송의 피고)로서 검사(원고)와 대등하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법원이 피고인에 대한 보석석방이나 구속정지 결정을 하더라도 검사가 즉시항고를 하면 보석결정이나 구속정지의 집행이 정지되어 피고인이 석방될 수 없었던 종전의 형사소송법 관련 조항에 대하여 ‘헌법의 적정절차원칙과 무죄추정원칙 등에 반한다.’고 하였고, 나아가 “피고인의 상대방 당사자의 지위에 있는 검사에 대하여 집행정지의 효력이 있는 즉시항고권을 인정한 것은 당사자대등주의와 형평의 원칙에 반한다.”고 위헌결정을 하면서 이를 확인한 바가 있다.

검사와 피고인의 지위는 대등하고, 공소가 제기된 후에는 재판절차의 주재자는 법관이므로 법관이 직접 피고인을 구속할 수는 있으나 같은 당사자인 검사가 영장을 청구하여 판사가 발부한 영장에 의해 피고인 구속이나 압수 등 강제수사는 불가능하다.

이로 인하여 취득한 증거는 위법수집증거라는 것이 우리나라 통설, 판례이다. 기소된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에서 직접 영장을 발부하여 피고인을 구속하거나 압수 등 강제처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검사는 이러한 조치를 하도록 법관에게 촉구할 수 있을 뿐 영장을 청구할 수 없고 청구하면 법관은 영장을 기각하여야 한다.

다만 실무에서는 기소된 사건과 다른 사건, 즉 별건으로 검사가 영장을 청구하고 피고인을 구속하는 사례가 일부 있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아직까지 이러한 경우에 대한 논의가 없다.

그러나 별건으로 검사가 영장을 청구하여 당사자인 피고인을 구속하려면 피의자 구속에 비해 훨씬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은 탄핵주의 구조에서 자명하다.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 임명식 수여식 직전 차담회에서 자리를 안내하는 조국 민정수석(2019.07.25)(자료:청와대) ⓒ스트레이트뉴스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 임명식 수여식 직전 차담회에서 자리를 안내하는 조국 민정수석(2019.07.25)(자료:청와대) ⓒ스트레이트뉴스

따라서 기소당시 검사가 구체적 범죄사실을 알지 못한 중대한 별건 범죄(예컨대 사기로 기소되었는데 살인을 범한 경우)이고, 도주와 증거인멸의 염려가 매우 현저한 경우로 제한되어야 한다.

여기서 정교수 사건을 보면 정교수는 사문서위조로 기소되어 피고인이 되었다. 먼저 그 이후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위조사문서행사,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등이 별건인지 여부가 문제된다. 별건은 물론 같은 범죄사실이라 하더라도 법원이 직접 피고인을 재 구속하는 데에 제한이 없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제208조(재구속의 제한)에서 「①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에 의하여 구속되었다가 석방된 자는 다른 중요한 증거를 발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일한 범죄사실에 관하여 재차 구속하지 못한다. ②전항의 경우에는 1개의 목적을 위하여 동시 또는 수단결과의 관계에서 행하여진 행위는 동일한 범죄사실로 간주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감금하고 강간한 경우, 주거침입 후 절도한 경우, 두 개의 죄를 저질렀지만 피의자 구속에서는 수단과 목적의 관계이므로 동일한 범죄로 본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재구속할 때 동일한 사건을 확대하여 재구속을 제한하려는 규정이지만 구속에서 별건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규정이다. 따라서 정교수의 경우,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업무방해, 증거인멸은 수단과 결과 내지 목적 관계에 있으므로 별건이 아닌 같은 범죄사실로 보아야 한다.

다만 정교수가 처벌이 되는지 여부는 향후 재판에서 밝혀지겠지만 자본시장법위반, 횡령은 기소된 사문서위조와 별건임이 명백하다. 그러나 이러한 범죄사실은 처음부터 직접 수사를 한 검찰이 기소 당시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고, 살인과 같은 중대한 범죄도 아닐 뿐더러 공인으로 도망의 염려도 없으며, 공범인 5촌 조카가 이미 구속되었고, 컴퓨터 등 증거도 이미 확보되어 증거인멸의 염려가 현저하지 않다.

검찰은 정교수를 사문서위조의 공범으로 기소하였으나 공모자가 누군지 등을 특정하지 못하고 급하게 기소하여 피고인으로 만들어 원칙이라는 덫에 스스로 빠졌다. 검찰은 정교수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경우 야당과 보수언론은 대통령의 말이나 서초동 집회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검찰도 그런 비난을 내심 반길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청구할 수 없는 이유는 법원에서 위에서 본 이유로 피고인 정교수에 대한 영장을 기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만약 청구하더라도 영장 담당 법관은 그 동안 우리들이 잠시 잊었던 문명국가 형사절차의 기본인 탄핵주의 수호자로서 영장을 기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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