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56〉일하지 않은 자, 일한 자의 몫을 능력껏 취하라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56〉일하지 않은 자, 일한 자의 몫을 능력껏 취하라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9.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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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일하지 않은 자, 일한 자의 몫을 능력껏 취하라

증권시장은 불로소득不勞所得, unearned income의 잔치판이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 말라. 이것은 인류사회가 오래전에 합의한 도덕률이다. 그러나 그 도덕률은 노동시장에 한정된다. 노동시장을 벗어나는 순간 인류 보편의 도덕률은 원점에서 뒤집힌다. 일하지 않은 자, 일한 자의 몫을 능력껏 취하라.

거지는 노동자인가? ‘그렇다’라고 대답하려면 구걸 행위를 노동으로 인정해야 한다. 구걸도 일종의 노동이라면 거지를 ‘놀고먹는 인간’이라고 폄하하는 일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구걸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일단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은 훌륭한 거지가 되기 위해 새겨들어야 할 격언이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골판지 한 장을 깔고 앉아 몇 시간 동안 꿈쩍도 않고 영업장을 지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유동인구가 많아지는 주말에는 몸이 아파도 출근해야 한다. 초췌한 몰골을 유지하기 위해 다이어트도 해야 하고, 국세청에 세금을 안 내는 대신에 그 일대를 장악한 양아치에게 자릿세를 뜯길지도 모른다.

사회적으로는 그의 노동이 무의미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보통 사람이 감내하기 어려운 일을 꾸준히 수행함에도, 그 일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거지는 깡통에 떨어지는 돈의 대가로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서비스업입니다. 자선하는 분에게 순도 높은 만족감을 제공하지요.”
“그게 무슨 뜻이죠?”
“나는 내 앞에 선 사람에게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할 기회를 줍니다.”

내가 젊은 시절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노숙자에게 직접 들은 말이다. 그는 나보다 훨씬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다.

걸인 중에는 사지가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왜 막노동이라도 하지 않는지 묻고 싶을 것이다. 인력시장에서 일을 구하려면 아침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새벽안개가 자욱한 인력소개소 골목에는 그날의 일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나이도 살아온 이력도 제각각이지만 몸(노동력)을 팔아서 먹고산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어떤 일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철근 일, 콘크리트 일, 미장 일, 조적組積(벽돌 쌓기) 일, 이삿짐 나르는 일 등 닥치는 대로 할 준비가 되어 있기에 이들을 ‘잡부雜夫’라고 부른다. 남자 일꾼일 경우 보통 오후 5시까지 일하고 품삯으로 11만 원을 받는다. 그중에 1만 원은 인력소개소 몫이다.

인력소개소는 노동력을 착취하는 곳인가? 그렇지는 않다. 일당에서 2만 원이나 3만 원쯤 떼면 그런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9퍼센트의 소개비는 업계에서 수긍할 만한 수준이다. 노임은 그날그날 현금으로 받기 때문에 떼먹힐 염려도 없다.

문제는 공치는 날이 많아서 소득이 일정치 않다는 점이다. 한 달에 20일 일하면 운이 좋은 경우이고, 그나마 동절기와 장마철에는 일감이 뚝 떨어진다. 게다가 막노동판은 4대 보험의 사각지대여서 다치면 대책이 없다.

나보다 건강하고 사지 멀쩡한 거지가 있다 치자. 그가 이런 사정을 모르겠는가? 그는 처음부터 거지였을까? 거지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구걸로 버는 소득이 막노동으로 버는 소득보다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 대부분의 인간은 일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고 살기 위해 일한다. 먹고살 수만 있다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소득을 올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흔히 ‘노동은 신성하다’고 말하는데, 막노동판에서 먹고사는 사람은 노동의 의미 따위를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수행하는 노동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의미 있는 작업임에 틀림없다. 그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개인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둘째, 사회적으로 부의 총량을 늘리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한다. 다시 말해 소득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노동의 결과가 일정한 생산물로 남는다. 그리고 그 대가로 얻은 소득은 다시 소비로 이어져서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된다. 이 일련의 흐름을 정리하면 ‘노동-생산-소득-소비’로 요약할 수 있다. 규모는 작아도 이 흐름에는 허투루 유실되는 돈이 없다.

저축할 여력이 없으니 가내유보금家內留保 이 없고,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는 한 자본의 해외 유출도 없다. 구걸을 권장할 만한 경제활동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수 경기의 측면에서 보면 아주 무의미한 낭비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거지의 소득은 곧바로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자영업자의 눈으로 볼 때 거지 깡통에 떨어진 돈이 대기업 금고에 쌓인 수백조 원의 이익잉여금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소득재분배 측면에서도 상위소득자의 소득 일부가 하위소득자에게 이전되는 셈이니, 이거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낙수효과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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