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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가 넘쳐나는 고담시의 뒷골목 인생 '아서 플렉'. 코미디언이 꿈이지만 그의 '조크'는 사람들에게 먹히지 않고 심지어 롤모델이었던 유명 방송인에게까지 조롱당하는 신세가 된다. 학대받던 어린 시절에서의 트라우마와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난 후 어머니에 대한 배반감, 그리고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 속에서 아서 플렉의 자아는 붕괴되고 급기야 조커라는 '절대 악'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들 추종하는 다수의 '광대'들의 응원을 받으며.

영화 <조커> 속에서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였어'라는 대사는 찰리 채플린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비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명언을 연상하게 한다. '조커에 대한 공포'의 이면에 '아서 플렉에 대한 연민'이 작용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닌게 아니라 영화에는 찰리 채플린의 희극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음을 솔직하게 드러낸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조커의 웃음도, 찰리 채플린의 웃음도 '왜 사냐면 웃지요'라는 해탈의 웃음이 아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고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진저리 쳐지는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안 스러운 몸부림이다. 차이가 있다면 조커는 참담한 좌절과 증오를 바탕으로 악으로 흑화되지만 채플린은 그것을 희망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이다.

영화에 깔린 주제곡 'Smile'은 찰리 채플린이 직접 작곡했던 곡이라고 한다. <모던 타임즈(1939년)>에 쓰일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어떤 사유로 쓰이지 못하다 근 1세기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 <조커>에 반영됐다. 현대(모던 타임즈)를 살아가는 우리들 중 누군가는 지금도 사회에서 낙오된 채 간절하게 구원의 손길을 갈구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른바 '사회적 약자'로 일컬어지는 그들은 여성, 장애인, 성소주자, 독거노인, 외국인노동자 등으로 분류된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사는 '청년'도 예외일 수 없으며, 평범하게 살아가지만 알고보면 빚투성이인 소시민도 전전긍긍 불안을 안고 산다. 여차하면 누구든 시스템에서 추방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사는 것이다.

막다른 길에, 벼랑끝에 몰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냉소와 방관이 아니라 따뜻한 공감과 소통일 것이다. 돈과 권력으로만 해결하려는 소수 기득권에 기대어 기생충처럼 살 것이 아니라 모두가 양지에서 대우받고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사회는 소수 강자들의 이너서클이 아니라 약자들의 집합체라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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