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연재-박혜리의 도시 부둣가 이야기⑤] 열린 공간은 대립 요소의 창의적 충돌의 결과
[ST연재-박혜리의 도시 부둣가 이야기⑤] 열린 공간은 대립 요소의 창의적 충돌의 결과
  • 박혜리 (seoulscrap@googlemail.com)
  • 승인 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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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규칙 사이에 있는, 뮐러피어(Müllerpier)/ 네덜란드 로테르담
▲로이드피어 맞은 편에 자리한 뮐러피어(Müllerpier) ©박혜리
▲로이드피어 맞은 편에 자리한 뮐러피어(Müllerpier) ©박혜리

네델란드 로이드피어 맞은 편에는 단지 전체가 적벽돌로 재료를 통일한 뮐러피어가 자리하고 있다.
뮐러피어라는 이름은 1908년부터 1970년 동안 이 부두를 사용했던 무역 및 운송회사인 뮐러가족회사(Wm.H. Müller & Co's Stuwadoors Mij. N.V.)의 ‘뮐러’라는 이름에서 따왔다.

이 회사는 독일인 산업자본가인 빌헬름 뮐러가 1876년 설립하였고 가족회사로 되물림되었다. 창업자가 사망한 후 딸인 헬레네 뮐러와 사위인 네덜란드인 크뢸러 A.G.가 가업을 물려받았고 예술품 수집광인 이들 부부가 모은 예술품으로 채운 크뢸러 뮐러 미술관(Kröller-MüllerMuseum)은 네덜란드에서 꼭 가봐야하는 미술관 중 하나가 되었다. ‘대단한 가문’의 부두였고 그 이름에서 시작됐다.

▲뮐러 피어의 1930년대. 항구활동이 활발했을 때의 모습. (C) Havenwerk 010 http://www.rotterdamhavenwerk.nl/stukgoed-en-ro-ro-op-en-overslag/historie-stukgoed-op-en-overslag/
▲뮐러 피어의 1930년대. 항구활동이 활발했을 때의 모습. (C) Havenwerk 010 http://www.rotterdamhavenwerk.nl/stukgoed-en-ro-ro-op-en-overslag/historie-stukgoed-op-en-overslag/

곡물과 광석 및 기타 광물의 운송 및 보관에 특화된 회사였으며, 이 부두에는 로이드피어와는 다르게 주목할 만한 건축물은 없었기에 부두가 폐쇄된 후 보존가치가 없던 몇 채의 창고건물은 철거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빈 부두에 본격적인 개발 이전, 임시 사용으로 흥미를 이끌었던 것으로 유명했다. 박람회(Expo), 임시 놀이공원, 임시 테니스 경기장, 및 댄스파티 등을 위한 이벤트 장소로 사용했었다.

▲뮐러피어의 빈 땅에 국제적 스포츠경기인 데이비스컵 테니스대회를 1994년에 개최하였다. (c)ANPFOTOPAUL VREEKER https://www.anp-archief.nl/page/85343/sport-tennis-davis-cup-stadion
▲뮐러피어의 빈 땅에 국제적 스포츠경기인 데이비스컵 테니스대회를 1994년에 개최하였다. (c)ANPFOTOPAUL VREEKER https://www.anp-archief.nl/page/85343/sport-tennis-davis-cup-stadion
▲1990년대에는 놀이공원(Kermis)으로 임시 사용하기도 하였다. ©Rotterdamse historie in beeld http://fotos.serc.nl/zuid-holland/rotterdam/rotterdam-11344/
▲1990년대에는 놀이공원(Kermis)으로 임시 사용하기도 하였다. ©Rotterdamse historie in beeld http://fotos.serc.nl/zuid-holland/rotterdam/rotterdam-11344/

임시사용이 이루어지는 중, 설계작업도 진행되었다. 전체 마스터플랜은 필자가 일하고 있는 KCAP가 담당하여 건축가 께이스 크리스티안서(Kees Christiaanse)대표와 뤼르트 히터마(Ruurd Gietema) 대표가 마스터플랜 설계 및 가이드라인 설정으로 밑그림을 마련하였고 또 다른 다수의 건축가가 개별 건축물에 함께 참여하여 성공적인 개발을 이루어 내었다.

이곳은 화물적재 장소였고 이후 빈 공터로서 자유로움을 담던 구속력이 적은 공간이었다. 마스터플랜도 건물이 자유로운 각각의 오브제(Objet)로 서 있는 듯한 배치로 계획되었다. 랜덤으로 배치한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건물은 부두의 방향에 정렬하였으며 2개의 ‘랜드마크’ 건물이 약간 틀어져 변화를 주었다. 건축재료는 적벽돌로 지정하여 바다의 청색과 대비를 이루며 전체적으로 독특하고 통일된 경관을 만들어 내었다.

뮐러피어의 부두의 부둣가(Quay) 길 전체는 여전히 로테르담 항만공사가 소유하고 있으며 언제라도 배를 댈 수 있도록 부두의 형태 및 계선주 등을 유지하고 있고 이는 뮐러피어의 중요한 공공 오픈스페이스기도 하다. 모든 수변부가 공공공간이며 사유화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였다.

▲마스터플랜의 설계 개념 ©KCAP
▲마스터플랜의 설계 개념 ©KCAP
▲개발이 다 이루어지고 마지막으로 남았던 부두 끝 부분 필지 (C)Create@Müllerpier
▲개발이 다 이루어지고 마지막으로 남았던 부두 끝 부분 필지 (C)Create@Müllerpier

마지막 개발용지 강변측 필지는 경제위기를 겪는 동안 계속 개발이 지연되었다. 원래의 계획은 중층의 아파트 개발이었지만 오랜기간 공터로 남아있자, 시는 이를 ‘셀프빌딩 주거단지’로 개발방식을 전환하였다. 1개의 개발회사에 넘기길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닌, 다수의 주민참여형 주거블록으로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마지막 필지에 드디어 채워진 주거단지. 집합셀프빌딩(CPO)프로젝트로 실행되었다. ©박혜리
▲마지막 필지에 드디어 채워진 주거단지. 집합셀프빌딩(CPO)프로젝트로 실행되었다. ©박혜리

하나의 대형블록을 총 28개 단독주택필지로 쪼갰다. 그러나 단순히 28개 필지로 나눠 개별 개발을 하는 난개발을 조장한 것이 아닌, CPO(Collectief Particulier Opdrachtgeverschap/집합적 민간 셀프개발)의 형식을 취했는데, 이는 시민 DIY주택개발을 뜻하는 PO(Particulier Opdrachtgeverschap)를 단체로 실행하는 것을 뜻한다. 주민 참여형 집합적 단독주거단지라고 한국어로 설명할 수 있겠다. 맞벽 건축 블록이다.

KCAP는 마스터플랜너로서 시행사 블라우후드(Blauwhoed) 및 로테르담 시정부와 함께 전체 프로젝트를 감독하고 주민들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주민들은 본인이 건축가일 경우에는 말 그대로 자신의 집을 스스로(셀프로) 설계하고 시공하기도 하였으며 비전공자인 경우 전문 건축가과 함께 설계를 진행하였다. 이 모든 과정은 몇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서로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체 커뮤니티의 규칙도 세워나가는 시간이 되었다.

실제 워크숍이 필자의 회사 사무실에서 이루어져 참여하며 지켜보았는데, 어떤 주민은 대부분의 입면을 투명유리로 마무리하고 싶어했지만 마스터플래너의 조정으로 그 주민은 입면변경을 해야했고, 서로 만나는 벽의 높이가 다를 경우 노출되는 면의 마감에 대한 공사비를 누가 대는지 등도 의논을 하였다. 여러 자세한 사항을 다 같이 만나는 자리에 대화로 소통하며 하나의 블록을 완성하고 있었다.

▲뮐러피어 주민 워크숍. 각자 1:50 모형을 만들어와서 서로 맞춰보고 의견을 나눴다. ©KCAP
▲뮐러피어 주민 워크숍. 각자 1:50 모형을 만들어와서 서로 맞춰보고 의견을 나눴다. ©KCAP

뮐러피어의 적벽돌 재로는 이곳에도 적용되었다. 다만, 벽돌의 쌓기방식 및 줄눈에도 ‘자유’를 허용할 지 ‘통일’하여 규제를 할지 주민들끼리 이견이 있었다고 했다. 바로 마스터플래너인 KCAP에 자문을 요청하였고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KCAP의 한 판 덴 보른(Han van den Born) 대표는 재료만 통일할 뿐 어떻게 표현할지는 주민들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답변을 해주었다.

그 결과 조화롭게 같은 벽돌 재료로 뮐러피어의 정체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미세한 차이로 개별 건축물의 각각의 개성은 더욱 더 도드라지게 하였다.

▲벽돌은 같은 종류이다. 쌓기 및 줄눈에 따라 변화를 주어 각각 다르게 보인다. ©박혜리
▲벽돌은 같은 종류이다. 쌓기 및 줄눈에 따라 변화를 주어 각각 다르게 보인다. ©박혜리

이렇게 마스터플랜을 담당한 건축가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끝까지 책무를 다하며 가이드를 하였고, 개별 건축을 담당하는 민간기업 및 주민들이 그러한 전문가를 믿고 따라주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전문가를 단순히 ‘용역회사’로 비용을 받고 단기간 노동을 제공하는 그러한 일시적인 역할로 설정해서는 이러한 장기간 프로젝트에 일관적인 디자인 및 컨셉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점을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우리나라도 꼭 기억해 주면 좋겠다.

뮐러피어에는 고층, 중층, 소규모 건축물 등 다양한 크기의 건축물이 자율적인 배치로 들어서 있지만, 전체 아우르는 공공공간과 재료 및 디자인 가이드라인으로 일정한 ‘규칙’으로 통일감있는 하나의 부두 단지를 완성해 내었다.

개발 이전에는 대공간의 자유롭고 다양한 시민 이벤트 공간으로 임시 사용하여 장소 만들기를 먼저 하였고, 개발의 끝은 주민 공동체 주거형태인 참여형 주거단지로 의미있게 마무리 지었다. 마스터플랜 및 가이드라인의 중요성을 알게 됨과 동시에, 자율성과 다양성의 도시구성의 본질적 원리도 잃지 않은 사례라 하겠다.

KCAP의 설립자 께이스 크리스티안서(Kees Christiaanse)가 주장하는 ‘열린도시(Open City)’컨셉에서 ‘규제 및 자유방임(Control & laissez-faire)’의 균형을 이야기 하는데, 이는 상황(situation)적 도시 환경을 설계할 때 인위적으로 일회적 계획안을 만드는 것이 아닌, 상호 대립적 요소들의 창의적 충돌을 고려하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점이 뮐러피어에는 잘 실현되어 있다.

“’열린도시’란 유토피아도 아니고 분명한 현실도 아니다. 이는 개방성과 폐쇄성, 통합과 해체, 제어와 자유방임의 균형, 즉 ‘상황’이다.‶ 
(께이스 크리스티안제의 ‘TEXTBOOK’에서 발췌)

“The Open City is neither a utopia nor a clear-cut reality, but it is a situation, a balance between openness and closedness, between integration and disintegration, between control and laissez-faire.” Kees Christiaanse

▲박혜리 (도시건축가)
-네덜란드 도시계획사(SBA, Stedenbouwkundige)-
-KCAP 프로젝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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