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57〉주식으로 번 돈은 불로소득인가?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57〉주식으로 번 돈은 불로소득인가?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9.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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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주식으로 번 돈은 불로소득인가?

어느 사회든 불로소득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은 노동의 소중함을 강조하기보다는 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고 단체행동을 위축시키는 이념으로 악용된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 말라’는 경구는 유사 이래 수천 년간 보편성을 축적해왔기에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증권투자는 어떤가? 주식에 투자하여 부자가 된 사람은 비난 받아 마땅한가? 그것을 확인하려면 먼저 주식투자로 번 돈이 불로소득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한 해 동안 주식투자로 1억 원을 번 사람이 있다 치자. 그가 올린 1억 원의 소득은 어디에서 온 걸까? 주식투자에 따른 소득 중에는 기업이 영업이익의 일부를 주주에게 돌려주는 배당금dividend도 있지만 대부분의 주식투자자는 시세차익arbitrage을 노리고 주식을 사고판다. 즉 싸게 사서 비싸게 팔면 돈을 버는 구조다. 반대로 고가에 사서 저가에 팔면 그 차이만큼 손실이 발생한다.

특정 기업의 주식이 주식시장에서 거래되었을 때, 주식을 판 사람(매도자)이 있으면 그 주식을 산 사람(매수자)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 말은 누구든 주식을 팔아서 이익을 본 사람이 있으면 사서 손해 본 사람도 있다는 뜻이다. 예외는 없다. 소위 ‘슈퍼 개미’라 불리는 투자자가 번 1억 원은 다른 누군가(혹은 여러 사람)의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돈이다. 이렇게 보면 주식투자는 전형적인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다.

주식투자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상승 국면에서는 가치가 창출되고 하강 국면에서는 가치가 감소한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가치가 창출되면 시가총액이 늘어난 만큼 시장참여자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고, 반대로 가치가 하락하면 모두 손해를 볼 수 있다. 참여자 모두가 돈을 잃거나 모두 따는 노름판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주식투자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주장에는 함정이 있다. 주식투자자 모두가 이익을 보려면 그들이 가진 주식의 가격이 계속 올라야 한다. 그리고 주가가 오르는 동안 주식을 보유한 사람 전원이 주식을 팔지 않고 갖고 있어야 한다. 아무도 주식을 팔지 않는데 가격이 오를 수 있을까? 주식의 가격이 오른 것은 누가 그 주식을 기존의 가격보다 높은 값으로 샀기 때문이다. 파는 사람이 있어야 사는 사람도 생긴다. 여기서 ‘모두가 주식을 팔지 않고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가볍게 무너진다.

주가가 상승했을 때 팔지 않으면 이익도 발생하지 않는다. 낮은 가격에 산 주식을 가격이 올랐을 때 파는 행위를 증권가에서는 ‘시세차익을 실현한다’고 말한다. 주식거래 계좌에 찍힌 1억 원은 적절한 매도 시점을 선택함으로써 시세차익을 거둔 결과다. 

제로섬 게임에서는 새로운 부富가 창출되지 않는다. 어느 한쪽의 부가 다른 쪽으로 이동할 뿐이다. 바둑에서 백 집이 늘면 흑 집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도박꾼 여럿이 각자 가진 밑천을 모두 걸고 도박을 할 때, 판돈의 크기는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똑같다. 딴 사람과 잃은 사람이 갈릴 뿐이다. 그들이 밤새워 수행한 노동은 사회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노동을 통한 부의 증가가 없다는 점에서, 증권투자는 본질적으로 도박과 다르지 않다.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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