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의 노모를 요양원에 모신 박 씨의 기분이 심란하다. 공기 좋고 시설 좋다는 경기도 근교의 어느 요양원인데 요즘들어 방문이 뜸해진다. 자식이 부모 모시는 일이 당연하거늘 이런 불효자식이 있나 하면서도 한숨은 막지 못한다. 나는 치매 걸리지 말아야지 자식한테 짐 되지 말아야지 각오만 다질 뿐이다.

어쩌다 한 번이라도 정신이 돌아와 아들 얼굴이라도 알아보면 좋으련만, 그 때처럼 품에서 사탕 하나 꺼내서 내 새끼 먹으라고 입에 넣어주면 좋으련만, 마치 다섯 살배기처럼 입으로 아 하고 받아먹는 늙은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미소지으면 좋으련만, 아 그러나 어머니의 정신은 이제 저 쪽으로 넘어가 영영 돌아올 생각이 없다. 초점을 잃은 눈으로 멍하게 허공만 쳐다보며 요양보호사가 떠먹여주는 죽을 반은 흘리고 반은 먹고, 안타깝게 그 모습을 바라만 보다가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 때도 그랬다. 데모질 하다가 끌려가서 실컷 두들겨 맞고 돌아온 박 씨에게 어머니가 죽을 끓여줬을 때도, 죄송함 때문에 꺼이꺼이 울며 퉁퉁 부은 입술 사이로 죽을 흘려넣던 그 때도.

나들이에 나섰다가 귀가하는 차들이 병목구간에 몰리면서 정체가 심해진다. 여기는 항상 막힌다니까 우회도로를 뚫든가 아님 넓히든가 해줘야지 이거야 원 세금 걷어서 뭐 하는 거야 엉뚱한 사대강 강바닥이나 후벼파고 하여간. 투덜거리는 박 씨와 달리 조주석의 아내는 말이 없다. 친엄마도 아닌 시애미 보러가는 길인데도 기꺼히 동행해주는 아내가 고마울 뿐이다.

따분해진 박 씨의 오른 손이 라디오를 켠다. 한참 동안 저녁 뉴스를 듣던 박 씨의 입에서 갑자기 욕이 튀어나온다. 이 XX는 뒈지지도 않네. 깜짝 놀라는 아내를 그 때서야 의식하고는 얼른 내뱉은 말을 수습한다. 아니아니 어머니 이야기하는 거 아니라고 뉴스 이야기 하는 거라고. 그래도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사람이 사람한테 함부로 그런 욕하면 못 써 나이도 먹은 사람이. 핀잔하는 아내에게 박 씨가 정색하고 묻는다.

"사람? 사람이라고? 그 XX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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