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농업인의 날'을 맞아 농민단체와 지자체에서는 기념식이 한창이다. 그러나 난데없는 가을태풍에 한 해 수확을 망치고 중간상의 가격장난질에 매번 농락당하는 농민들 눈 앞에는 씁쓸한 풍경이 펼쳐진다.  

제과업체의 마케팅에 불과하건만 어느새 공식 기념일처럼 치러지는 '빼빼로데이'. 올해는 일본불매운동의 영향으로 예년만 못 하다는 분석도 있지만 기본은 하는 모양이다. 동네 편의점마다 기획된 각종 스틱형 과자들이 매대를 점령하고 있다. 당연한 약속처럼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이 과자를 사서 주고 받는다. 우리 쌀 판촉을 위해 권장되는 '가래떡데이' 이벤트는 안 스럽다 보인다. 열 십(十)과 한 일(一)이 만나 11이요 위아래로 붙이면 흙 토(土)가 되니 '토토절'이 어떠하냐는 제안도 반응이 신통치 않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동서양의 역사를 통틀어 농민 계급이 권력의 주인공이 된 예는 드물다. 농민들은 줄곧 수탈과 착취의 대상이였으며, 국가적 토목공사와 전쟁시 동원되는 최하층의 소모인력으로만 취급되어 왔다. 참다 못 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난 경우도 많았지만 지식인층과 귀족, 군벌들이라는 지배세력에 의해 번번히 무릎을 꿇었다. 중세 농노의 반란이 그랬고, 러시아 스텐카 라진 (Razin, Stepan)의 반란이 그랬고, 중국 후한과 명나라 때의 황건과 이자성의 난이 그랬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봐도 마찬가지. 조선 철종때의 홍경래의 난과 구한말 동학농민운동도 그랬다. 가까운 과거이자 현재인 쌀시장 개방과 미국산 소 수입반대에 대한 농민들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FTA 협약을 계기로 무섭게 치고들어오는 다국적기업의 유전자조작농산물에 대한 위기의식도 희미하다. 농민을 대변하겠다던 다수의 정치인들이 국회들 거쳐갔지만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은 미진하다. 선거철에 신토불이를 외치며 농민의 자식을 자임했던 정치인들은 대기업이 주도하는 첨단 정보통신 박람회장에서 사진 찍기 바쁘다.

최근 '스마트팜'이나 '기업농' 형태의 새로운 농업 시스템이 소개되고 장려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고령인 지역의 농민들은 하늘만 바라보는 신세다. 저수지와 산등성이는 태양광패널들이 뒤덮기 시작했다. 쓸만한 토지에는 기획부동산 업체가 말뚝을 박고, 토건족들이 탱크같은 굴착기를 들이밀고 쳐들어온다. 농자천하지대'봉'이 됐다. 일상과 미디어에서도 소외됐다. 전원일기 김회장의 수더분한 웃음도, 대추나무에 사랑 걸릴 일이 없다. 정녕 농민들에게 농업이란 천업이 아니라 천형이었던가. 종로 네거리에 주저앉은 전봉준 동상이 주먹을 움켜쥐고 일어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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