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64〉완전경쟁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64〉완전경쟁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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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경제학

 

완전경쟁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70억 인구의 대다수는 노예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노예처럼,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 시스템에 순응하고 있다. 온라인 통계회사인 스타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2017년 7월 기준으로 데스크톱, 태블릿, 콘솔을 합한 OS(컴퓨터 운영체제) 시장에서 윈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75퍼센트에 달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런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MS 오피스, 인터넷 익스플로러, 비주얼 스튜디오 등의 소프트웨어를 끼워 팔고 있다. 전 세계의 PC가 랜섬웨어 같은 악성 소프트웨어의 공격에 취약해진 것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과 관련이 있다. 모든 집의 문이 똑같은 구조일 때, 한 집의 문만 따면 다른 집도 쉽게 침입할수 있다.

빌 게이츠Bill Gates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난 이후 많은 재산을 기부했지만, 2006년 이후 그의 재산은 오히려 250억 달러 증가했다.

슈퍼리치들의 부는 대부분 독과점과 조세 회피, 정경유착과 관련되어 있다. 어떤 재화를 한 공급자가 도맡아서 공급할 때 이를 ‘독점獨占, monopoly’이라 하고, 소수의 공급자가 나누어 공급할 때 ‘과점寡占, oligopoly’이라고 한다. 반면에 고만고만한 다수의 기업이 시장에 참여함으로써 어떤 기업도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상태를 가리켜 ‘완전경쟁시장perfectly competitive market’이라고 한다.

세계 시장에는 독과점기업이 수두룩하다. 전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의 80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는 드비어스De Beers는 사실상 독점기업이다. 미술품 경매시장은 소더비Sotheby's와 크리스티Christie's가 꽉 잡고 있다. 검색엔진은 구글이 독보적이다. 미국 아칸소 주의 작은 잡화점으로 시작한 월마트는 유통업계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그밖에도 도요타, 네슬레, 코카콜라, P&G, 아마존, 소프트뱅크, 애플, 삼성전자, 월트디즈니, 보잉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초국적 기업들이 막강한 자본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완전경쟁에 가까운 시장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동네 분식집, 통닭집, 음식점 등이다. 그러나 이런 영세 자영업 유형의 시장참여자들은 대형 외식업체나 체인점에 밀려 조만간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시장이 완전경쟁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시장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규모가 큰 시장은 예외 없이 소수의 기업이 장악한다.

시장이 완전경쟁에 가까워질수록, 다시 말해 시장참여자가 많아서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기업의 순이익은 감소한다. 반대로 다수의 시장참여자가 경쟁에서 탈락하고 소수에 의한 독과점이 진행될수록 기업의 순이익은 커진다. 자유시장주의자의 한결같은 논리에 따르면, 자유경쟁시장은 가만 내버려두더라도 완전경쟁 상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게 되고, 시장의 효율성은 극대화하며, 결국 소비자를 포함한 시장참여자 모두가 행복해지는 상태에 도달한다. 실제로 그런가?

2016년 기업 경영 성과 분석 사이트 CEO스코어가 지난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30대 그룹의 실적을 분석한 결과를 보자.

2015년 30대 그룹 전체 매출액 가운데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상위 5개 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년 전인 2005년에 비해 2.4퍼센트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30대 그룹 순이익 중 5대 그룹의 비중은 59퍼센트에서 95퍼센트로 36퍼센트포인트 증가했다. 5대 그룹의 매출 비중은 거의 그대로인데 순이익은 큰 폭으로 뛰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몇몇 재벌이 다 해먹고 있다는 뜻이다.

1973년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자원 무기화’를 선언하면서 제1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다. 1978년 석유수출국기구의 유가 인상 움직임과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이 겹치면서 제2차 석유파동이 발생했다. 당시 한국 사람들은 ‘불황 속 물가 상승’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경험했다.

그 후 러시아, 영국, 노르웨이, 캐나다,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등이 산유국 대열에 합류하면서 석유수출국기구의 과점적 지위가 약해졌다. 결정적으로 미국의 셰일가스업체들이 가세하면서 유가는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이것은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좋아할 만한 사례다.

그러나 자유방임시장에서 시장권력이 소수에 집중되는 것은 필연적 현상이다. 모든 시장참여자가 제각각 다른 조건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조건을 가진 기업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윤을 얻게 된다. 더 많은 이윤은 기업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그 과정이 반복될수록 시장권력은 소수에게 집중된다. 시장권력이 집중될수록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2006이 그토록 강조한 ‘선택의 자유free to choose’는 점점 줄어든다.

완전경쟁시장이 존재하려면 네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다수의 공급자와 다수의 수요자가 존재하고, 둘째로 공급되는 재화나 서비스의 품질이 동일하며, 셋째로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기업이 자유롭게 진입하고 퇴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은 정반대다. 소수의 공급자가 다수의 수요자를 독식하고, 공급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품질은 천차만별이며, 돈이 되는 고급 정보는 소수만 알고 있고, 신규 기업의 진입장벽은 높은 반면에 시장지배자는 여간해서 퇴출되지 않는다.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교수인 그레고리 맨큐는 완전경쟁시장의 예로 밀 시장을 꼽았다. 밀을 재배하는 농부는 수천 명이고 소비자는 수백만 명이기 때문에 개별 농부와 소비자는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런가? 카길, ADM, 콘아그라 등 밀의 생산에서 소비까지 전 과정을 장악한 소수의 메이저 곡물회사를 떠올린다면, 맨큐의 주장은 허구임을 바로 알 수 있다.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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