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보이지 않는 손’의 실패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시대의 시장은 대도시라 하더라도 오늘날의 시골 장터보다 규모가 작았고 시장에서 판매되는 물품의 가짓수도 보잘것없었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절정이던 1800년에 런던의 인구는 100만 명이었다.

오늘날 월마트의 종업원 수는 190만 명이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전직 대학교수 애덤 스미스는 거리의 빵가게와 정육점, 10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핀 공장을 둘러보면서 ‘완전경쟁 시장’이라는 이상적 모델을 그려냈다. 이기심의 긍정적 측면과 경쟁의 효율성을 발견한 그의 업적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의 생각을 21세기에 그대로 가져와서 불변의 공리公理, axiom처럼 모든 문제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합리적이지 않다.

압도적인 시장지배력market power과 막강한 구매권력buying power을 가진 초국적 기업들이 즐비한 시대에, 애덤 스미스의 소박한 이상주의를 왜곡해서 우려먹는 경제학자·정치가·기업가들이 사회의 주류인
까닭은 무엇인가? 시장권력을 획득하고 휘두를 ‘자유’를 옹호하기에 딱 좋은 논거를 애덤 스미스가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경쟁의 원리는 애덤 스미스 사상의 일부일 뿐이다. 자유경쟁시장에 대한 예찬은 ‘화폐(금)의 축적에 주력했던 중상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읽어야 한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국가(왕)의 의무와 역할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국왕 또는 국가의 세 번째 책무는, 전체 사회에 가장 큰 이익을 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이윤이 어떤 개인 또는 소수의개인들에게 그 비용을 보상해 줄 수 없으며 따라서 어떤 개인 또는 소수의 개인들이 그것을 건설하고 유지할 것으로 기대할 수 없는 성질을 지닌 공공사업과 공공기구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의무다.”

애덤 스미스를 정신적 지주로 떠받들면서 거의 모든 것의 민영화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애덤 스미스의 이 주장을 어떻게 반박할지 궁금하다.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공공재’라고 부르는 재화의 성격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의 특징은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이다. 경제학자들은 어려운 용어를 좋아하는데, 알고 보면 쉬운 개념이다. 비경합성이란, 어떤 재화를 소비할 때 다른 사람과 다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내가 〈무한도전〉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시청할 전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비배제성이란, 누구나 그 재화를 소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내보내면서 누구는 듣고 누구는 듣지 말라고 강제할 수 없다. 그와 달리 티켓을 사야 극장에 들어갈 수 있는 영화나 공연은 배제성을 갖는다. 그러니까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은 그 말이 그 말이다.

국방 서비스와 치안 서비스는 대표적인 공공재다. 내가 대한민국 국군의 수고로움 덕분에 발 뻗고 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누려야 할 국방 서비스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내가 가로등이 환하게 켜진 골목길을 걷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그 길을 걸을 때 가로등이 어두워지는 일은 없다.

공공재를 민영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민영화’는 생산과 공급과 유지관리를 시장 논리에 맡긴다는 뜻이다. 즉, 돈을 내는 사람에게만 재화나 서비스가 제공된다. 돈을 더 많이 내는 사람에게는 더 나은 재화와 서비스가 제공된다.

골목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골목길에 가로등은 세워지지 않는다. 밤길을 많이 이용하는 사람은 일찍 퇴근하는 사람보다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시장 논리에 부합한다. 사설 경찰서에는 범죄 추적의 난이도에 따라 가격표가 불을지도 모른다.

절도범 500만 원, 특수강도 3,000만 원, 공소시효 만료가 임박한 범죄에는 할증료 부과. 신변보호 서비스도 요금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고, 범죄예방 서비스는 부촌에 집중될 가능성이 많다.

공공재를 이용하는 대가로 소비자가 내는 비용에는 민간기업의 이윤이 포함된다. 시장주의자들은 경쟁을 통해 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국가가 제공할 때보다 저렴하고 나은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상수도나 도시가스 같은 공공재는 특정 기업에 독점권을 줄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수많은 기업이 제각각 땅을 파고 배관을 하기 때문에 막대한 중복투자가 발생한다. 물론 공개입찰 과정에서 기업 간 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독점권을 확보하고 나면 ‘창의적 경영’의 동기가 사라진다.

공공재를 정부가 공급해야 할 이유가 또 있다. 어떤 재화나 서비스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되더라도 그 생산비용에 이윤을 덧붙여 회수할 방법이 없다면 누구도 자본을 투자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기업이 무인도에 등대를 짓는다고 가정하면, 그 기업이 인근을 지나는 모든 배에서 이용료를 거두기는 어렵다. 이렇게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특정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경우를 ‘무임승차free ride’라고 한다. 대도시의 미세먼지를 줄이는 사업을 정부가 시행하면 그 도시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 무임승차의 혜택을 누린다.

이런 공공재는 대부분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낳지만 그 과정의 공정성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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