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러리맨 신화' '세계경영' '탱크주의' 신화
'경제사범' '해외도피' '추징금 미납' 오명
천문학적인 추징금 남기고 영면

신화는 없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영면했다. 향년 83세의 인생에서 그처럼 정상에서 나락으로 추락한 사람도 드물다. '셀러리맨 신화' '세계경영' '탱크주의' 등의 화려한 수식어로 고인의 인생을 치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경제사범' '해외도피' '추징금 미납' 등으로 폄훼하는 사람도 있다. 향불 앞에서 고인의 허물은 애써 캐묻지 않는 우리나라 특유의 정서도 있지만 공과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기술은 사오면 된다?

1967년 서른의 나이에 대우를 설립한 김우중은 IMF 핵폭탄을 맞기 전까지 자산규모 2위의 굴지의 대그룹으로 성장시켰다. 그가 그룹을 확장하는 방식은 차입경영, 즉 돈을 빌려서 규모를 키우고,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계열사를 늘려나가는 방식이었다. 내실경영보다 차입경영, 기술개발보다 인수합병 식의 경영방식이었던 것이다. 촘촘한 안방살림과 기술개발에 신경을 썼더라면 나중의 공중분해 사태까지는 오지 않았을 거라는 사후 평가도 뒤따른다.

천문학적인 분식회계

1999년 공식적으로 해체되기 전까지 대우그룹은 표면적으로 76조를 넘는 자산과 매출 91조라는 '건강한' 그룹이었다. 그러나 IMF 핵폭탄 이후 소극적인 구조조정의 과정을 거친 후 채권은행단이 뚜껑을 열어봤을 때 실상은 달랐다. 자산 60조, 부채 90조의 사상누각이었다. 이러한 부실의 원인에는 회계장부조작, 즉 41조에 달하는 분식회계가 있었다. 창립 32년만에 역대 최대의 부도를 내고 경제사범의 신분으로 전락한 김우중은 해외를 떠도는 신세가 된다. 긴 도피생활을 접고 2006년 귀국한 김우중은 징역 8년6월과 벌금 1천만 원, 추징금 17조9천253억 원을 선고받았지만 2년 후 특별사면 받게된다.

막대한 추징금은 어떻게?

이제 남은 건 17조가 넘는 추징금에 대한 집행 방안이다. 본인 명의의 재산이 없는 상태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현행법상 가족에게 추징금 집행을 할 수 없다. 당시 공모한 대우 임원들이 연대보증의 형식으로 부담해야 한다. '패기'와 '승부사 기질'을 자랑하던 김우중은 그렇게 빚더미만 남긴채 오욕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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