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그의 혼에 군사독재 망령이 들어가 비정상일 것

14일 저녁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한 농민이 차벽에 밧줄을 걸고 당기던 중 경찰의 물대포를 직사로 맞고 쓰러져 있다.코피를 흘리며 쓰러진 농민은 뇌진탕 증세를 보이며, 아스팔트에 누워있다가 구급차로 병원으로 호송됐으며 위독한것으로 알려졌다. 2015.11.14.ⓒ뉴시스

“불순세력에 의한 난동이고 누군가 뒤에서 선동하고 있다”
"아무리 시위해봤자 소용없다 그냥 포기해라“
"불법적, 폭력적으로 하지 말고 합법적이고 정당한 방법으로 해라“”
"당신들이 하는 말은 다 알고 있다. 그러니 조용히 기다려라”
"이럴 시간에 차라리 공부를 해서 힘을 키워라"
“아직도 깨닫지 못한 어린 것들이 여전히 몰지각한 행동을 한다”
"책한 후에 따르지 않으면 반드시 매를 들어 때릴 것"

1919년 3·1운동 이후 발표한 매국노 이완용의 경고문이다. 이렇게 6·10 민주항쟁 때도, 5.18 민주화운동 때도, 4·19혁명 때도, 3·1운동 때도, 을사밀약 때도 독재권력 아래서 의롭게 저항하는 이들은 폭도로 불렸다. 어쩌면 거의 백년이 지난 2015년 지금도 상황은 닮은 꼴인지... 

지난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던 농민 백남기(69세) 선생이 경찰이 쏜 캡사이신 물대포를 맞고 아직도 사경을 헤매고 있다. 경찰이 넘어져 실신 상태에 빠진 백 선생에게 엄청난 양의 물대포를 직사했고, 그를 구해 병원으로 이송하려던 사람들과 응급차를 향해서도 물대포를 쏘는 장면이 동영상을 통해 목격됐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은 시위 진압에 불법이 없었다며 오히려 시위대를 불법으로 몰고 있다. 거기에 더해 새누리당 이완영(경북 고령·성주·칠곡군)국회의원은 “미국에선 '폴리스 라인'을 벗어나면 경찰이 그대로 패버리고, 총을 쏴서 시민들이 죽어도 정당하다는 결론이 나오고, 이런 게 선진국의 공권력이 아닌가”라고 말해 시민들이 격노하게 했다.

그럼 앞으로는 시위에 나가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말인가. 칠순 고령의 농민이 경찰이 직사한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국정의 책임을 같이 지고 있는 집권여당의 국회의원이 그 것도 농촌지역을 기반으로 당선된 의원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것은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이 의원의 주장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망언이다.

경찰이 공무집행을 위해선 시민을 쏴 죽여도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민주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흉기를 든 강력범죄자도 아니고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따지기 위해 헌법이 보장하는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이것이 어찌 민주국가란 말인가.

미국은 시위가 보장 된 나라다. 심지어 백악관 앞에서도 집회가 가능하다. 미리 차벽으로 막는 일도 없고, 합법적으로 시위하는 시민에게 물대포를 조준사격하지도 않는다. 다만 개인총기휴대가 가능해 불심건문에 응하지 않을 때만 경찰의 안전을 위해 총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해서 이 의원의 주장은 무식의 산물이거나 아니면 아마도 그의 혼에 군사독재 망령이 들어가 비정상일 것이다.

백남기 선생은 광주서중학교,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8년 중앙대에 입학했다. 1971년 10월 위수령 사태 때 시위를 벌이다 1차 제적됐고, 1973년 10월에는 교내에서 유신 철폐 시위를 주도했다. 1975년 전국대학생연맹에 가입해 활동하다 2차 제적됐고, 이후 가르멜 수녀원, 가르멜 수도원 등에서 생활했다.

농민운동에 발을들여 1987년 가톨릭농민회 보성 고흥협의회 회장을 거쳐, 전남연합회장(1989~1991), 전국 부회장(1992~1993) 등을 역임했다. 1992년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창립에 나서, 1994년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을 지냈다. 그가 면사무소에 들르면 전부 일어나서 인사할 정도로 신망을 얻었다고 한다. 막내 딸 이름도 민주화, 백민주화다.

평생을 나라의 민주화와 농민들의 권익산장에 몸 바친 삶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분이 오죽했으면 칠순이 다된 나이에 시위에 나섰겠는가. 민주화에 역행하고 있는 정부가 농민죽이는 정책을 강행하자 더 이상 가만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데 지금 그가 박근혜 정부의 공권력에 의해 사경을 헤매고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현장지휘 책임자를 구속수사하고,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불법 캡사이신 물대포를 운용한 경찰관과 지휘체계에 속하는 상급자를 포함한 최고 책임자에 이르기까지 엄정하게 조사해 책임을 묻고 처벌해야 한다.

처음 물대포가 시위 진압에 사용된 건 1960년대 미국에서였다. 최루탄, 곤봉보다 물이 훨씬 더 안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시위대가 물살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이 언론에 비치면서 인권침해 논란이 일었고 독일에선 물대포를 맞아 실명했던 사례도 나왔다.

2011년 런던 폭동을 겪은 영국 런던시장 역시 "내가 직접 맞아보겠다"라고까지 말하며 물대포 도입을 주장했지만 정부는 승인을 거부했다. 눈과 같은 급소를 직접 타격하거나 물줄기로 인해 쓰러져 치명상을 입는 등 67가지의 문제점이 발견됐고. 경찰의 전통이 훼손되어선 안 된다 이유에서였다. 우리도 살상무기나 다름없는 물대포 사용을 즉각 중지해야한다.

차벽설치는 이미 위헌 판결이 났고, 유엔에서조차 자유로운 집회를 허용하라고 권고한 바도 있다. 박근혜 정부가 또다시 헌법을 유린하며 집회를 가로막는 일을 반복한다면 더 큰 국민적 저항과 역사의 오명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백남기 선생의 빠른 회복을 간절히 기원한다.

 

김상환(전 양천신문/인천타임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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