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환법(Extradition Law) 탓에 전쟁터로 변한 세계 금융허브 홍콩
4‧19혁명이나 5‧18, 6월항쟁, 촛불혁명과 흡사한 홍콩 민주화시위
자유를 향한 홍콩의 시민의식, 2014년 우산혁명 당시부터 깨어나
홍콩 정부 송환법 폐지했으나 시위대 4가지 요구 관철 강력 요구
홍콩 언론 침묵에도 SNS 통해 시민들의 간절함에 응답한 세계
2020년에도 국가폭력에 대항하는 홍콩 민주화시위는 계속될 전망

2019년은 국내정치와 국제통상, 외교, 사회 등 모든 면에서 어느 때보다 우울했던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라는 기쁨을 안겼고, 영국 프리미어 리그 토트넘 소속 골잡이 손흥민은 새벽잠을 설치게 했으며, 낙태죄가 제정된 지 66년 만에 폐지되면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제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유치원 개학연기 사태부터 선거법과 공수처법 표결까지 잠시도 평온한 적이 없었다. 정치는 패스트트랙과 조국 정국으로 얼룩졌고, 전직 대법원장이 사법 사상 최초로 구속됐으며, 고유정, 안인득, 장대호 등 흉악 범죄자는 계속해서 나타났다. 경제성장률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인 2.0%로 예측되고, 청년 취업률과 노인 빈곤율, 자살율은 개선될 기미가 없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 스트레이트뉴스는 2019년을 달군 10대뉴스 키워드로 ▲NO JAPAN과 지소미아(GSOMIA), ▲국회 파행, ▲급랭한 남북미 관계, ▲조국 정국, ▲양승태 구속, ▲홍콩 민주화 시위, ▲화성 연쇄살인범, ▲대형참사와 자연재해, ▲G2 무역전쟁, ▲구설 끊이지 않은 연예계 등을 선정했다.<편집자주>

<목차>
① [사회] 일본 불매운동 ‘NO JAPAN’과 지소미아(GSOMIA)
② [정치] 패스트트랙 등 ‘동물국회’로 극한 대치한 여의도 정가
③ [통일] 역사적인 하노이 만남 이후 급랭한 남‧북‧미 관계
④ [정치] ‘퇴진’과 ‘수호’로 한반도의 가을 양분한 조국 사태
⑤ [사회] 사법 71년 역사에 치욕 오점 남긴 양승태 사태
⑥ [국제] ‘송환법’ 반발해 불타오른 홍콩 민주화 시위
⑦ [사회] 화성 연쇄살인범 이춘재와 흉악범 고유정.안인득.장대호
⑧ [환경] 대형참사‧가뭄‧산불‧폭염‧태풍...고통의 지구촌
⑨ [국제] 일시 휴전했지만 불씨 여전한 G2(미중) 무역전쟁
⑩ [사회] 불법촬영‧성폭행‧도박...구설 끊이지 않은 연예계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세계 금융허브 홍콩, 그러나 6개월 전 홍콩과 지금의 홍콩은 다르다. ‘송환법(Extradition Law)’이 촉발한 시위로 자유를 원하는 시민들이 홍콩 정부와 무장경찰, 중국 정부를 상대로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어서다.

한국의 민주화운동 빼닮은 홍콩 민주화시위

“홍콩도 한국처럼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렸으면 좋겠다. 자유를 공짜로 누리는 것, 그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홍콩 민주화시위의 핵심 인물 조슈아 웡(黃之鋒, Joshua Wong)이 한국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현해 한 발언이다.

홍콩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다가서는 사이 한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고 있다.(자료:standard.co.uk)
홍콩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다가서는 사이 한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고 있다.(자료:standard.co.uk)

홍콩 민주화시위대의 구호는 “총알은 신념을 뚫을 수 없다(Never did we can kill the believe.)”는 것이다. 죽을 각오가 담긴 결기 찬 구호다. 마치 우리의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혁명 당시를 보는 듯하다.

송환법 촉발 시위 배경은 '일국양제'와 '행정장관 간선제'

발단은 대만을 여행하던 도중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주한 ‘찬퉁카이 사건’이다(2018년 2월). 홍콩 정부는 법률적인 근거가 없어 처벌을 할 수 없었다. 홍콩 의회는 범죄인 인도 법안, 즉 송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 자체가 없었으니 별다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에는 중국에서 범죄로 인정되더라도 홍콩 법이 범죄로 인정하지 않는 한 홍콩 시민을 중국 본토에서 처벌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홍콩에서는 이미 반정부 또는 반중국 인사들을 납치해 폭력을 행사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민들은 법이 없는 상황에서도 국가폭력이 실재해 왔는데, 송환법이 생기면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송환하는 등 정치적으로 악용할 소지가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홍콩 민주화시위의 배경에는 일국양제(一國兩制, 하나의 국가, 두 제도)가 도사리고 있다. 중국의 공산주의와 홍콩의 자본주의가 공존하는 제도다. 홍콩이 영국으로부터 반환되던 1997년부터 적용됐다. 홍콩 행정장관을 간선제로 선출하되, 2017년 이후에는 직선제로 변경하도록 되어 있었다.

1997년, 영국령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됐다. 영국 깃발이 내려지는 모습(자료:interestingworldhistory)
1997년, 영국령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됐다. 영국 깃발이 내려지는 모습(자료:interestingworldhistory)

그러나 2013년 집권 이후 독재체재를 강화하던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선출을 거부하고 간선제 선출을 유지하겠다며 태도를 바꿨다. 2014년 10만여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던 이유다. 그 시위는 ‘우산혁명’으로 알려져 있다. 시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시민들은 깨어나고 있었고, 깨어난 시민의식은 송환법에 자유를 빼앗길 수 없다는 각오로 거리로 몰려들었다.

홍콩 정부, 시위대 폭도 규정했으나 결국 백기

지난 6월 9일, 검정 옷에 노란 헬멧, 마스크를 착용한 100여만 명의 시민이 송환법 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본격 표출되는 시작점이었다. 시위는 질서정연했고 평화적이었지만, 홍콩 경찰은 평화시위를 ‘폭동’으로 규정, 최루탄과 곤봉, 고무총을 동원해 강경 진압했다.

며칠 후 캐리 람(林鄭月娥, Carrie Lam) 홍콩 행정장관이 송환법 무기 연기를 발표했다. 시위대는 무기 연기가 아닌 완전 철폐를 요구했다. 그사이 시위대는 200만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경찰은 진압 수위를 높여갔다. 부상자가 속출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 과정에 시위대를 향한 무차별 테러(백색테러)가 발생하면서 경찰과 조직폭력배 유착설이 대두됐다. 중국 정부는 군대를 투입할 준비를 마쳤다. 소총에 대검이 장착된 사진이 유출되기도 했다. 총파업이 발생했으며, 경찰은 물대포와 실탄이 장착된 총기를 동원했다.

기자회견에서 “홍콩의 송환법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는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2019.07)(자료:thestandard.hk)
기자회견에서 “홍콩의 송환법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는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2019.07)(자료:thestandard.hk)

일촉즉발, 그러나 홍콩 정부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시위가 장기간 유지될 경우, 금융허브 홍콩의 국제적 위상이 피해를 입어 자본 유입이 어려워 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9월 4일, 캐리 람 행정장관은 송환법 철회를 발표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거리를 떠나지 않았다. 시위대를 대하는 모습을 통해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졌기 때문이다.

시위대의 다섯 가지 요구와 민주파의 구의회 장악

“Five Demands, not one less(다섯 가지 요구 중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

거리를 지키는 시민들의 구호다. 시위대가 내건 5대 요구사항 중 ‘송환법 완전 철폐’ 외에 ‘경찰 강경진압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와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한 정부 입장의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무조건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시위를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시위대와 대화를 나누는 한편, 복면금지법 관련 긴급조치를 발동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고, 중국 정부는 ‘홍콩 전면 통제’를 선언했다.

이후 구의회 선거가 있기까지 홍콩 폴리텍대 학생이 경찰의 추격을 피하다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시위대의 가슴을 향해 실탄을 발사했다. 그러나 11월 24일 열린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파가 18개 지역구 452석 중 388석을 독식하는 압승을 거두면서 시위와 경찰의 강경진압은 진정세로 접어들었다.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파가 압승하자 환호하는 홍콩 시민들(2019.11.24)(자료:asianews.it)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파가 압승하자 환호하는 홍콩 시민들(2019.11.24)(자료:asianews.it)

홍콩 민주화시위에 동참하는 세계 시민

“홍콩 시민들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계속 투쟁할 것이다. 홍콩 시민을 외면하지 말아달라.”

지난 9월 11일, 시위대 핵심 인물 조슈아 웡이 독일 베를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이다. 사실 대부분의 홍콩 언론은 시위에 침묵했다. 홍콩 이공대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한 이튿날, 홍콩의 주요 6개 신문 중 4개 신문은 1면에 시위 소식 대신 친중광고를 게재하고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한 바 있다(CNN).

그러나 언론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은 홍콩 민주화시위 소식을 실시간 전 세계로 퍼 날랐다. 홍콩 시민들의 간점함, 그 간절함에 세계가 응답했다.

유럽연합은 이미 7월 18일에 송환법 철회 결의안을 의결한 바 있다. 세계 곳곳에서 홍콩 민주화시위를 향한 지지와 연대시위가 잇따랐다. SNS와 온라인에는 ‘Pray for HongKong(홍콩을 위한 기도)’라는 헤시태크가 달렸다.

미국 워싱턴 백악관 앞과 캐나다 벤쿠버, 독일, 호주, 대만, 일본 등 12개 국가 29개 도시에서 연대집회가 개최됐다(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SCMP). 8월 26일, G7 정상들은 “폭력사태를 피할 것을 요구한다”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특히 미국 의회에서는 중국 정부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하원과 상원이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의 골자는 미국 행정부가 매년 홍콩의 자치 수준을 평가해 특별지위 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특별지위가 유지되지 않을 경우, 해외자본의 홍콩 유입이 어려워지는 점을 노린 것이다.

홍콩의 오늘. 경찰들이 지나가는 행인을 감시하고 있다.(자료:thestar.com)
홍콩의 오늘. 경찰들이 지나가는 행인을 감시하고 있다.(자료:thestar.com)

수개월째 침묵하는 우리 정부

국내에서도 연대 움직임이 일었다. 더불어민주당 당원들은 모임을 결성해 홍콩 경찰에 무력 수단을 사용하지 말 것과 진상 규명 및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도 중국 정부에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서울대 학생들은 교내 중앙도서관 벽에 ‘레넌벽’을 만들어 홍콩 시민들에게 보내는 응원 문구를 적게 했다. 연세대 학생들도 지지 모임을 결성해 홍콩 시민들의 투쟁에 힘을 보태는 대자보를 게시했다. 두 학교 학생들은 검은 옷을 착용하고 침묵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 세계가 거대한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홍콩 시민들 지지에 동참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수개월째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 및 북한과의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SNS 덕에 국경도 이념도 사라지고, 지구촌 사람들은 이제 세계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정의롭지 않은 일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시민을 폭행하고 살해하는 국가폭력이 여전히 벌어지는 홍콩, 2020년 새해에도 시민과 국가폭력의 강대강 대치는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bizlink@straigh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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