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69〉고기가 되어줄 양을 존중하는 방법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69〉고기가 되어줄 양을 존중하는 방법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20.0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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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2018)」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보이지 않는 경제학

 

고기가 되어줄 양을 존중하는 방법

해리 아트만이 젊은 양치기를 만난 것은 마지막 거점을 떠난 지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여행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말에서 내린 청년은 해리에게 그릇을 하나 달라고 하더니 수통에 담긴 아이락을 가득 부었다.

아이락은 말 젖을 발효시킨 것으로 몽골 사람이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겨 마시는 음료다. 청년은 해리를 집으로 초대했다. 청년이 말고삐를 당겨 세운 곳은 짧은 풀이 듬성듬성 난 황량한 벌판이었다. 북풍을 가리기에는 조금 낮아 보이는 언덕을 등지고 낡은 게르 두 채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먼저 검은 개 한 마리가 기세 좋게 짖으며 그들을 맞았고, 코흘리개 아이들이 줄줄이 뛰쳐나왔다. 이어서 앳된 처녀와 중년 부부가 게르 밖으로 걸어 나와 손을 흔들었다. 게르 안으로 들어서자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늙은 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머리 짧은 중년 사내는 청년의 형이었고 처녀는 그의 누이였다. 목에 때가 시커멓게 낀 아이들이 몰려와 신기한 듯이 해리의 옷과 곱슬곱슬한 팔뚝의 털을 만졌다. 자외선 차단용 고글은 아이들이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해리는 아이들의 손에 사탕을 하나씩 쥐어주고 그들의 부모에게는 주머니칼과 닭고기 통조림을 선물했다. 그리고 얼굴을 붉히는 처녀의 목에 은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바오터우의 노점에서 건진 물건이었다. 해리가 늙은 여자의 쪼글쪼글한 뺨에 입을 맞추고 울과 실크로 짠 담요 한 장을 무릎에 덮어주자 그녀는 몇 개 안 남은 누런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들아, 여긴 네 집이다. 마음껏 먹고 편히 쉬어라.”

해리는 몽골어를 배운 적이 없지만 신기하게도 그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검은 털이 사자 갈기처럼 늘어진 개는 경계심을 풀고 꼬리를 흔들었다. 눈 위에 황갈색 반점이 있어서 4개의 눈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중년 남자가 양 한 마리를 끌고 오자 청년이 거들었다. 형제는 양을 눕혀서 네 다리를 꽉 잡았다. 중년 남자는 양의 가슴팍을 예리한 칼로 따서 작은 구멍을 냈다.

양은 잠깐 버둥거리더니 곧 얌전해졌다. 그는 양의 가슴 속으로 한 손을 집어넣었다. 손을 천천히 안쪽으로 밀어 넣다가 심장에 손이 닿자 동맥을 꽉 움켜쥐었다.

양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남자는 양의 가슴팍에서 사타구니까지 한 번의 칼질로 쫙 갈라 땅 위에 펼쳐놓았다. 다시 배를 가르자 김이 뭉실뭉실 피어오르며 검붉은 내장이 드러났다. 잘라낸 내장을 큰 고무 통에 옮겨 담고 넓적한 양은그릇에 피를 받는 동안 한 방울의 핏물도 땅을 적시지 않았다.

화덕에 얹은 솥에서 양고기가 익어갈 때, 처녀는 게르 입구에 걸린 가죽부대에서 아이락을 길어왔다. 시금털털한 맛이 났지만 해리는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잘 익은 양고기는 해리가 전에 먹었던 양고기와 왠지 다르게 느껴졌다. 가축을 오래 키우다 보면 정이 들기 마련이다.

조금이라도 양의 고통을 덜어보려는 유목민의 마음은 심장의 동맥을 쥐는 방법을 찾아냈다. 가축을 삶의 자원이 아니라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본다면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해리는 여행을 위해 사전조사를 하면서, 몽골에서 일어난 재앙에 대해 알게 되었다. 2002년에 1,000만 마리, 2010년에 600만 마리의 가축이 떼죽음을 당했다. 여름에는 가뭄이, 겨울에는 혹한이 유목민의 삶을 황폐화시킨다.

여름에 충분히 풀을 먹지 못한 가축은 겨울의 혹한을 견디지 못한다. 봄에 기습적으로 찾아오는 한파는 유목민에게 공포 그 자체다. 낮에 기온이 올라가서 눈이 녹았다가 밤에 다시 얼어붙으면 굶어 죽는 가축이 속출한다. 눈을 헤집고 풀을 뜯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구 평균기온이 0.7도 상승하는 사이에 몽골의 평균기온은 1.92도 올랐다. 기온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모래폭풍이 자주 발생하고 사막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지난 40년간 몽골에서만 1,200개의 호수가 사라지고 900개의 강이 말라버렸다.1 지구온난화라는 외부효과는 몽골 유목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밤이 되자 그들은 바싹 마른 소똥으로 모닥불을 피우고 술을 마셨다. 아이락을 증류하여 만든 아르히 술이다. 해리와 두 사내는 형제가되었다. 해리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몽골어 배우기.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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