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탐욕과 불감증에 희생되는 아이들

이용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이용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2020년1월14일....우리 딸이 떠났습니다.. 천사처럼 와주어 엄마밖에 모르던 우리 큰딸... 바로 집앞 3분내 인도에서... 매일 다니던 그 길에서 무겁디 무거운 굴착기 밑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은 내 딸... (중략) 굴착기는 3차로에서 곧장 차로를 가로질러 다급히 인도쪽 주유소로 진입했고 커다란 굴착기 밑으로 깔려들어간 제 딸은 아무 것도 모른채... 그렇게 주검이 되었습니다. (중략) 유독 겁 많던 제 딸을 혼자 보내고, 3일장을 마치고, 아이 사진 앞에서 아이 책상에 앉아 고작 애미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입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최근 서울 양천구에서 발생한 굴착기 난폭운전사고로 초등학교 3학년 딸을 잃은 어머니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이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과속단속카메라 의무 설치 등이 포함된 민식이법, 하준이법의 국회통과 직후 발생한 사고라 안타까움을 더한다. 청원에는 이미 5만명 이상이 서명했다.

이번 사고는 음주상태는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굴착기 기사의 ‘부주의’나 ‘난폭운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사고지점에 사고 유발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달아 있는 드라이브스루와 대형건물, 주유소의 진출입로를 마치 하나처럼 사용하다 보니 과도하게 넓어졌고 급한 우회전 진입이 가능했다. 버스정류장과 진입로가 너무 가까워 보행자가 차량들과 계속 마주쳐야 하고 특히 정차한 버스를 지나 차량이 진입할 경우 우측 보행자 주시가 어렵다. 가드레일이나 차량진입 알림신호기, 아니면 최소한 안전요원이라도 필요했다.

재난과 안전을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하나의 큰 사고가 터지기 전, 같은 원인의 작은 사고 29건과 사소한 이상징후 300건이 있었다는 경험칙이다. 즉 사고나 재해는 순간 발생한 ‘우연’이 아니라 사소함을 방치한 ‘결과’라는 무서운 경고다.

통학로 안전 문제는 초중생 자녀를 둔 부모들 공통의 걱정거리다. 특히 재개발 재건축이 한창인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부모들은 건설사를 찾아가 항의도 해보고 공사차량 주행속도를 줄여달라며 아이들 책가방에 노랑색 덮개도 해본다. 안전도우미도 더 배치해보고 때로는 자신이 통학도우미가 돼 혹시 있을 불행을 막아보려 애쓴다.

문제는 도시 곳곳에 안전하게 걸어다닐 인도조차 없는 통학로가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좁은 통학로를 차량이 가로막아 학생들 안전이 위협받는데도 인력과 예산, 혹은 단속 명분이 부족하다며 방치해왔다. 하지만 주차 차량으로 인해 차도로 걸어야 하는 통학로, 경사로 벽면 주정차로 사고위험이 상존하는 등하굣길, 나만 편하면 된다는 우리의 이기주의와 나태, 불감증이 존재하는 한 ‘제2의 민식이’ ‘제2의 하준이’는 또 나올 것이다.

 미국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5단계 욕구 중 생존 다음의 욕구로 ‘안전’을 꼽았다. 안전은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토대이자 국민 행복을 위한 사회적 가치의 시작점이다. 어른들의 탐욕과 무능함으로 인해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진 수많은 꽃들에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진짜 어른’이 될 것을 다짐해본다.

-이용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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