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72〉석유가 차린 밥상
[스트레이트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72〉석유가 차린 밥상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2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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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2018)」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석유가 차린 밥상

오늘날 농업의 석유 의존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현대인의 식탁을 가리켜 “석유가 차린 밥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적절한 비유다. 식품 가격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70퍼센트가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미국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만 봐도 석유를 이용한 농법이 대세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극소수의 자연농업 실천가를 빼면 대부분 기계로 밭을 갈고, 기계로 이랑을 만들고, 기계로 비닐을 씌운다. 기계로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고, 기계로 농약을 치고, 기계로 비료를 주고, 기계로 수확하고, 기계로 도정搗精한다.

기계는 석유 없이 움직일 수 없고, 농약과 비료는 물론이고 포장재로 쓰이는 비닐과 플라스틱 박스도 석유화학제품이다. 계절을 거스르는 시설농업에는 더 많은 석유 에너지가 투입된다. 유가가 오르면 식량생산비용이 따라 오를수밖에 없는 구조다.

식량의 운송과 보관에도 석유 에너지가 소비된다. 식품회사에 필수적인 저온창고와 냉동설비는 물론이고 가정마다 한두 개씩 있는 냉장고도 전기를 잡아먹는 기계다. 그 전기의 태반은 화석연료로 만들어진다. 수입 농산물에는 더 많은 석유가 들어간다. 먼 거리를 이동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식품의 원료는 대부분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한 것이다. 국내산 돼지고기와 한우만 먹는다 해도 축산 농가가 쓰는 사료는 절반이 수입 사료다. 국내산 사료로 키운다 해도 그 원료는태반이 수입 옥수수다.

물론 유가 상승 말고도 식량위기를 초래한 여러 요인이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태국처럼 기후변화와 자연재해로 생산량이 감소한 경우도 있고, 중국, 인도, 브라질, 베트남 등 신흥국의 소득이 늘면서 종전보다 고기를 더 많이 먹게 되었다는 이유를 들 수도 있다. 바이오연료Biofuel도 무시할 수 없다. 사람과 가축이 먹어야 할 식량을 자동차가 먹어치우니 이래저래 식량 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식품은 ‘수요의 가격탄력성Price Elasticity of Demand’이 매우 낮다는 사실이다. 수요의 가격탄력성은 가격의 변화에 따라 수요가 변하는 정도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요트나 고급 스포츠카 같은 사치품은 가격이 많이 오르면 소비가 크게 줄어든다. 반면에 생활필수품이나 중독성이 강한 마약은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좀처럼 줄지 않는다. 그래서 마약상은 일단 싼값에 마약을 공급하여 중독자를 늘린 다음에 가격을 올리는 전략을 쓴다.

수요의 가격탄력성=수요 변화율÷가격 변화율

 

땟거리는 가격이 올라도 소비를 줄이기가 어렵다. 굶을 수는 없지 않은가. 반면에 쌀값이 훅 떨어져도 하루에 밥을 다섯 끼씩 먹는 사람은 없다. 식량이 매우 특별한 재화인 까닭은 여기서 분명해진다.

[도표 22]에서 D는 수요곡선이고 S는 공급곡선이다. 쌀 같은 생활필수품은 가격 변화가 수요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수요곡선의 기울기가 가파르다. 만약 가격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상품이 있다면 수요곡선은 수직이 될 것이다. P₁은 쌀이 정상적으로 공급되었을 때의 균형가격이다.

시장에서 쌀은 280원으로 거래된다. 어떤 이유로든 쌀 공급량이 크게 줄면 무슨 일이 생길까? 이때 공급곡선은 S₁에서 S₂로 이동한다. 쌀 수요량은 330가마에서 300가마로 30가마 줄었다. 가격은 280원에서 420원으로 140원 올랐다. 수요가 9퍼센트 감소할 때 가격은 50퍼센트 폭등했다.

역사의 격변은 대부분 식량위기에서 비롯했다. 아랍의 민주화운동은 석유자원을 사유화한 독재 권력의 자업자득이었다. 고유가 행진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달러를 쓸어 담을 때, 그것이 장차 식량폭동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리라고 예상한 독재자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2014년 이후 곡물 가격의 내림세는 경기 침체와 유가 하락이 주도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한국 사람들도 덕을 보았다. 석유와 밀가루를 싼값에 수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문제가 간명해졌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을 회복할 때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 프레리Prairie 초원에 가뭄이 든다든지 러시아・캐나다・호주의 밀 작황이 어떤 이유로든 나빠졌을 때, 석유값까지 오른다면 식량 가격은 얼마나 뛸 것인가? 

여기에 하나의 변수가 더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가 경쟁적으로 돈을 찍어냈다. 양적완화, 즉 통화량 팽창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국지적인 인플레이션 현상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전 세계가 한꺼번에 이렇게 막대한 양의 종이돈을 찍어서 시중에 푼 적은 인류사에 단 한 번도 없었다. 금융자본주의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과연 인류사회가 어떤 대가를 치를지, 그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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