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2018)」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순수 ‘국산 식품’은 없다

2012년 통합진보당이 분열로 치달을 때 커피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구당권파 핵심인 백승우 전 사무부총장은 당원게시판에 “아메리카노 커피를 먹어야 회의를 할 수 있는 이분들을 보면서 노동자 민중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의아할 뿐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여기서 ‘이분들’은 유시민 전 공동대표와 심상정 의원을 지칭한다. 아메리카노 커피를 먹는 사람은 노동자 민중의 삶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가?

문제는 코카콜라와 리바이스 청바지가 아니라 그 협량한 세계관에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순수 토종 식품만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과장이 아니다. 슈퍼마켓 진열대를 가득 채운 수많은 가공식품의 원료는 대부분 미국산 콩과 밀, 옥수수다. 한 노동자가 공사장에서 배달시켜 먹은 짜장면은 미국산 밀가루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미국산 쇠고기는 절대로 먹지 않는다는 청년이 어젯밤 미국의 횡포를 성토하며 안주로 먹은 국내산 갈매기살은 십중팔구 미국에서 수입한 사료로 생산된 것이다. 아무리 스타벅스와 델몬트와 코카콜라를 회피하려 애써도 소용없다. 국산 음료와 커피와 과자에는색소, 감미료, 방부제 등 다양한 첨가물이 들어가는데 이 또한 상당 부분이 미국산이다.

당신이 국산 전등의 스위치를 ‘딸칵’ 하고 켜는 순간 화석연료로 생산된 화력발전소의 전기가 소비되기 시작한다. 발전소의 터빈을 돌린 석유나 가스가 미국에 적대적인 러시아에서 수입된 것이라 해도, 그 회사에는 미국 메이저 석유회사의 자본이 들어갔을지 모른다. 100퍼센트 국내산 원료와 국내 노동력으로 만들어지는 제품이 있다 치자.

그 회사가 상장기업이라면 외국인 지분이 적지 않을 것이고, 그 외국인 중에 상당수가 미국인일 것이다. 국내 주요 기업의 외국인 지분율 을 살펴보면, 삼성전자는 50.42퍼센트(2016년 5월 2일 기준), 포스코는 49.18퍼센트(2016년 7월 21일 기준), ‘국민기업’을 표방하는 KT는 48.4퍼센트다(2015년 12월 기준).

이쯤 되면 어디까지가 국내산이고 어디서부터 미국산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아메리카노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었으니 일단 먹는 것에 한정해서 따져보자.

미국의 영양학자이자 소아과 의사인 시모포로스는 미국 워싱턴 D.C.의 일반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달걀의 지방산 비율을 측정했다. 그 결과 오메가-6 지방산과 오메가-3 지방산의 비율이 20대 1로 나타났다. 자연 상태의 달걀은 그 비율이 1대 1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미국산 옥수수 때문이다. 미국의 공장식 사육장에서 가축에게 먹이는 사료는 주로 알곡이고, 그중에서도 옥수수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미국 옥수수는 오메가-6와 오메가-3의 비율이 60대 1이다. 오메가-6는 혈관을 수축시켜 고혈압을 유발하고 비만과 심장병의 원인이 되는 등 부작용이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2007년 시모포로스의 단순한 방법을 따라 슈퍼마켓에서 달걀과 소고기 샘플을 구하여 조사한 적이 있다.12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오메가-6와 오메가-3의 비율이 달걀 60대 1, 소고기는 무려 108대 1이라고 나왔다. 우리의 식생활이 얼마나 미국산 옥수수에 의존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실제로 한국인의 몸에 포함된 지방산을 측정해 보았더니 오메가-6와 오메가-3의 비율은 11대 1에서 125대 1까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으로 돌아가면, 아메리카노에 시비 거는 편협한 세계관으로는 우리 시대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 ‘미 제국주의 대 식민지 코리아’의 세계관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지 않은가? 1970년대에는 이런 식의 접근법이 유용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세계화의 깃발을 앞세운 초국적 자본은 이미 국가권력을 넘어섰다.

이념 대립이 분쟁을 낳던 시대는 지났다. 오늘날의 국제분쟁은 ‘많이 가진 자’와 ‘더 가지려는 자’의 갈등이 전부다. 중국, 러시아, 브라질, 인도,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을 보라. 잘살든 못살든 대다수가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에 포섭되었다. 원래 자본에는 이념도 없고 윤리도 없다. 끝없는 이윤 추구만 있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아메리카노는 미국 커피도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유럽 전선에 파병된 미군 병사들이 진한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타 마신 데에서 비롯한 이름일 뿐이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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