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구(흥사단 시민사회연구소장)

헌법은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교육기본법은 제 2조(교육 이념)에서 교육은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민주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에서 교육의 목적이 민주시민을 양성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에 대놓고 반대하는 경우는 드물다.

문제는 법에 정한대로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는 교육을 실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사독재 시기에는 독재권력에 저항하지 않고 복종하는 인간을 기르기 위해 반공과 도덕 과목을 중요하게 가르쳤다. 군사독재권력은 자본권력과 야합했으나 종속되지는 않았다. 국민의 힘으로 군사독재가 무너지고 들어선 정치권력은 갈수록 커지는 자본권력을 제어하지 못함에 따라 자본독재가 가능할 정도로 자본권력의 힘이 커지고 있다. 자본권력은 인간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몰아넣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는 입시교육이 우선이고, 학생이 욕망실현을 위해 무한경쟁하는 인간이 되도록 방조하고, 독재권력이 되고 있는 자본권력의 위험성을 경계하도록 가르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는 인간 존중으로부터 시작하고 자본주의는 이윤 추구가 본질이다.

자본권력은 더 많은 자본을 갖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인간을 자유인이 아닌 노예로 거느릴 때 쥐꼬리만큼만 나눠주면 되므로 이윤이 극대화 된다. 그러나 인간은 노예로 살려고 하지 않으며 자유롭게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자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필요하며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자를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자가 없으면 민주주의는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민주주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자인 민주시민은 저절로 생기지 않으며 교육을 통해 양성해야 한다. 교육기본법이 교육의 목적을 ‘민주시민의 양성’으로 명시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2013년 3월, 경기도교육감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교육청에 민주시민교육과를 설치하고, 2014년 3월 민주시민교육 인정교과서인 ‘더불어 민주시민’을 학교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2015년에는 경기도 학교민주시민조례를 제정하고 이어서 13개 교육청이 민주시민교육조례를 제정했다. 교육부도 2018년 1월 4일 민주시민교육과를 설치하고 11월에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를 위한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이와 같이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점차 넓어지고 있으나 실시 현황을 보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경기도교육청이 펴낸 민주시민교과서.
경기도교육청이 펴낸 민주시민교과서.

지난 1월 14일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열린 국회토론회에서 발표한 김원태 학교민주시민교육연구소장에 의하면 학교민주시민교육을 처음으로 시작한 경기도에서도 민주시민교육을 선택교과로 채택한 중·고등학교는 약 0.5%(2019년 기준)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전담교사도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교육부도 종합계획을 발표했으나 계획대로 실행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학교에서 민주시민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거론되고 있다. 내용이 명확하지 않으며, 필요성에 대한 합의도 없고, 의식화교육이라고 반대하며, 가르칠 수 있는 교사와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 등등이다.

위에 거론한 이유 중 의식화교육만 빼고 일리가 있다.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려면 과목, 담당교사, 교재, 수업시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시민교육은

필수과목으로 편성된 상태가 아니다. 필수과목이 아니므로 교사, 교재, 수업시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으니 가르치기 어려운 것이다. 가르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는데 가르치라고 하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다그치는 것과 같다. 이제 민주시민교육은 교사의 열정을 기대하고 열정에 의존하는 운동 수준에서 벗어나, 제도적으로 실시하여 지속성과 안정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므로 학교에서 민주시민교육을 해야 하며, 범교과 교육이나 선택과목이 아닌 필수과목이어야 하는 이유는, 국어가 필수과목인 것과 같은 것이다. 민주시민교육을 독립된 필수과목이 아니라 모든 과목에서 가르칠 수 있고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국어 과목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국어야 말로 모든 과목, 심지어 외국어 과목에서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라는 말을 되새겨야 한다.

미국이나 영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기에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국어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친다. 이와 같이 대한민국은 왕국이나 일당 독재국가가 아닌 민주공화국이므로 민주시민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가르쳐야 한다. 다만,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포기한다면 민주시민 과목은 없어도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Tags #민주시민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