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75〉식량시장의 지배자
[스트레이트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75〉식량시장의 지배자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20.0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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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2018)」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식량시장의 지배자

한국은 유엔 회원국이고,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주권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전시에 자국 군대를 지휘할 권한이 없으며 경제적으로는 달러라는 기축통화에 예속되어 있다. 특히 식량주권이란 측면에서 보면 자립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

실제로 한국은 식량자원의 생산·수급·품질·가격·유통에 대한 통제력이 없다. 그 말은 시장지배자가 주는 대로 받아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누가 시장지배자인가? 카길, ADM, LDC, 벙기, 앙드레 등의 메이저 곡물회사를 꼽는다. 이들 5개 회사가 세계 곡물시장의 80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세계 곡물 무역의 40퍼센트를 장악한 카길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다.

카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름다운 홍보영상이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들판 위를 행복밖에 모를 것 같은 젊은 부부가 어린 딸을 어깨에 태우고 천천히 걸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화면에 이런 메시지가 뜬다. “카길은 세계의 번영을 헌신적으로 돕고 있습니다Cargil is committed to helping the world thrive.”

카길은 전 세계 70개국에 15만 5,000명의 직원을 두고 있고, 2017년에 매출 1,097억 달러, 조정영업이익 303억 달러를 기록했다. 비상장기업으로는 세계 최대의 기업이다.

5대 메이저 곡물회사는 전 세계 식량의 공급사슬supply chain을 장악하고 있다. 그들은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 수백 개의 거점을 두고,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면서 식량 수급의 거의 전 과정을 통제한다. 그 모습은 18세기에 유럽인이 구축했던 삼각무역과 흡사하다.

지중해에서 활동하던 뱃사람들을 위험이 가득한 대양으로 인도한 것은 후추, 정향 등의 향신료였다. 항구를 떠난 배 10척 가운데 2척은 돌아오지 못하는 죽음의 뱃길이었지만, 항해를 무사히 마친 상인들은 최대 300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산업혁명을 전후하여 상품 목록에는 금, 은, 상아, 면직물, 고무, 담배, 커피, 설탕, 노예 등이 추가되었고, 해적질은 부업이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인간 사냥꾼들이 ‘검은 황금’으로 불리는 노예를 확보하기 위해 내륙에까지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유럽-아프리카-신대륙을 잇는 삼각무역이 완성되었고, 돈독이 오른 유럽의 여러 나라가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그중에서도 영국이 가장 짭짤한 재미를 보았고, 여기서 벌어들인 돈은 산업혁명의 종잣돈이 되었다. 영국의 무역상들은 17세기 후반부터 150년 동안 340만 명의 흑인 노예를 실어 날랐다.

메이저 곡물회사의 시장지배는 제국주의적 수법과 매우 닮았다. 좀 더 세련된 기법과 마케팅 전략으로 포장되었을 뿐이다. “농부의 밭에 심은 하나의 씨앗에부터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저녁 식탁에 오르기까지, 카길은 전 세계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결합한다.”카길의 초국가적 시각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카길의 막강한 지배력은 공급사슬의 통합과 연계에서 나온다. 미국산 쇠고기가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카길이 어떻게 관여하는지 살펴보자.

종자와 비료 → 농업자문 서비스 → 농민과 계약 → 곡물 구매 및 판매 → 대형 곡물창고 저장 → 가축사료 생산 → 가축 사육 계약 → 쇠고기 가공 → 포장육 → 수송

이런 방식으로 카길은 옥수수 농가와 축산 농가까지 영향권 안에 두고 있다. 카길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옥수수를 재배하기도, 소를 키우기도 어렵다. 게다가 판로도 카길에 맡겨야 한다. 카길이 마음만 먹으면 시장가격도 조절할 수 있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 격언이 있다. 특히 식량처럼 생존과 직결된 재화를 특정 기업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공급경로를 다원화하고 생산기반을 다변화해서 위험을 분산해야한다. 식량이라는 매우 특별한 재화는 10년, 20년의 장기적 안목으로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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