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3·1절 101주년 기념사 "홍 장군 유해 조국에 안장"

한말과 일제 강점기 대한독립의 영웅, 홍범도 장군
한말과 일제 강점기 대한독립의 영웅, 홍범도 장군

봉오동과 청산리의 독립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이 고국 품에 안긴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3·1절 101주년 기념사에서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드디어 국내로 모셔올 수 있게 됐다"며 "올해 봉오동 전투 100주년을 기념,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방한과 함께 조국으로 봉환하여 안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홍 장군의 유해를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키로 했다.

홍범도 장군은 한말과 일제의 시기에 독립운동가로서 봉오동과 청산리 등 항일전투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1920년에는 일제군이 독립군 본거지인 봉오동을 급습시에 이에 맞서 승리, 그때까지 독립군이 올린 전과 중 최대의 승전을 거뒀다.

같은 해 10월에는 청산리 전투에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와 함께 제1연대장으로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후 항일단체들의 통합을 주선하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 부총재가 되었으며, 고려혁명군관학교를 설립했다.

호는 여천(汝千)이며 일명 범도(範道)라고도 불렸다. 1868년 8월 27일 평안북도 자성에서 출생,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수렵과 광산 등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다, 1907년 전국적인 의병봉기 시에 포수들과 함께 일본군을 대적, 유격전에 앞장섰다.

1910년 일제 강점기에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 양성에 나서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대한독립군의 총사령이 되어 약 400명의 독립군으로 1개 부대를 편성, 국내에 들어와 만포진 전투에서 일본군 70여 명을 사살하기도 했다.

일본군이 1920년 6월 반격에 나서면서 독립군 본거지인 만주 지린성 봉오동을 공격해 오자, 700여 명의 독립군을 지휘하여 3일간의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일본군 157명을 사살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청산리 전투에 참가, 제1연대장으로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후 헤이룽강에 항일단체들의 통합을 주도,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고 부총재로 활약하는 데 이어 1921년 러시아령 흑하자유시로 이동, 레닌 정부의 협조를 얻어 고려혁명군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독립군의 실력양성에 힘썼다.

당시 소련 당국의 한국독립군에 대한 무장해제령으로 이르크츠크로 이동하는 데 이어 연해주에서 콜호스(집단농장)를 차려 농사를 지으며 한인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37년 스탈린의 한인강제이주정책에 의하여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로 강제 이주된 후 이곳에서 극장 야간수위, 정미소 노동자로 일하다가 1943년 76세로 사망했다.

홍 장군은 1962년 카자흐스탄의 한글신문 <레닌기치>가 독립운동가의 위업을 알리면서 한인들이 중심이 되어 크질오르다 중앙공동묘역으로 이장되어 흉상과 3개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홍 장군이 말년에 머물던 집은 크질오르다의 역사기념물로 지정됐고, 집 근처의 거리는 '홍범도 거리'로 지정되었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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