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2018)」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2009년 6월, 취임한 지 두 달 된 금호타이어의 김종호 사장은 타이어 20만 개를 찢어서 폐기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살을 찢는 아픔으로 재고 타이어를 찢어라.” 재고를 팔아서 브랜드 신뢰를 망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회사의 팀장급 직원 100여 명은 전국의 물류센터를 찾아다니며 2년 이상 된 재고 타이어 20만 개의 옆구리에 칼을 들이댔다. 소비자가격으로 따지면 200억 원이 넘는 물량이다. 시중에 팔아도 큰 문제가 없는 제품이어서 싼값에 해외로 수출하거나 떨이로 팔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김종호 사장은 단호하게 “노”라고 답했다.

김종호 사장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많았다. 살을 찢는 아픔? 그해 금호타이어는 3분기까지 영업손실이 1,600억 원을 넘어섰고, 창업 50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낼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아득한 옛날에 한 만석꾼이 있었다. 그의 논에서 나는 쌀은 찰지고 맛있기로 유명해서 해마다 임금님에게 진상되었다. 수년간 대풍이 들자 그의 곳간에는 쌀이 넘쳐나서 더 이상 쌓아둘 데가 없어졌다. 그는 용단을 내렸다.

2년 이상 묵은 쌀은 모두 불태워 땅에 묻어라. 한 머슴이 진언했다. 저 북쪽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다 합니다. 그곳에 싼값으로 떨이하면 어떨는지요. 주인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내 쌀의 명성을 망칠 수는 없다!

쌀과 타이어를 같이 놓고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그리고 나는 금호타이어의 결단을 비난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비효율성이다. 자본주의의 장점을 말하라면 많은 사람이 효율성을 첫 번째로 꼽는다. 과연 자본주의는 효율적인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사회자원을 분배하는 곳은 시장market이다. 그런데 시장은 자원의 낭비가 심한 곳이다. 왜 자원의 낭비가 생기는걸까? 시장지배력을 확장하려는 경쟁 때문이다. 1등만 살아남는 무한경쟁.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경쟁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100명의 공무원을 뽑는 시험에 1만 명의 응시자가 몰렸다면 9,900명이 1년 동안 들인, 어쩌면 그 몇 배의 시간 동안 투자한 자원은 고스란히 낭비된 것이나 다름없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뽑았으니 효율적인가? 그 효율성은 9,900명의 비효율을 상쇄할만큼 큰가?

한 해 동안 지구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세계 인구의 약 2배를 먹일 수 있는 양이다. 그런데 왜 8억은 굶주리고, 5명 중 1명은 비만이고, 식량의 3분의 1은 낭비되는가? 이게 효율적인가?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모든 편리함과 즐거움은, 누가 먹어야 할 빵 한 조각과 맞바꾼 것일 수 있다. 수천만의 배고픔을 덜어줄 수 있는 음식물이 잉여 쓰레기가 되어 소각되거나 땅에 묻힌다. 소비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낭비를 부추기는 성장 지향의 경제, 이것 또한 심각한 비효율 아닌가? 아무리 봐도 자본주의의 효율성은 기만 또는 허구에 불과한 것 같다.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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