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왼쪽)과 동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왼쪽)과 동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한진그룹 조원태 회장에 맞서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이른바 ‘3자연합’의 한 축인 반도건설 권홍사 회장이 작년 말 조 회장에게 한진그룹 명예회장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반도건설 측이 당초 공시한 '단순투자' 목적의 지분 취득이 아니라는 점에서 허위공시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모양새다.

허위공시라면 의결권이 제한돼 오는 27일 예정된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3자연합 쪽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진그룹은 감독당국에 권 회장 측의 허위공시와 관련한 조사요청서를 제출하며 시장질서 교란에 대한 엄단을 촉구할 방침이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한진칼은 법률 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의 가처분 소송 답변서를 통해 권홍사 회장이 지난해 12월 조원태 회장을 직접 만나 자신을 한진그룹 명예회장에 선임해달라며 사실상 경영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주장했다.

답변서에는 권 회장이 명예회장 선임과 함께 자신들이 요구하는 한진칼 등기임원과 공동감사 선임을 비롯해 한진그룹 소유의 개발 가능한 국내외 주요 부동산의 개발 등을 조 회장에 제안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 한진칼은 반도건설이 당초 주식등의대량보유상황보고서 공시에서 '단순 투자'로 명기했다가 지난 1월 10일 투자 목적을 '경영 참여'로 바꿔 공시했지만, 이는 그 전부터 권 회장이 경영 참여를 요구해 온 만큼 이는 명백한 허위 공시라는 주장이다.

반도건설은 지난해 10월 8일 계열사인 대호개발을 통해 한진칼 지분을 5% 이상 취득했다고 공시한 바 있다. 이후 여러 차례 장내 매수를 통해 한진칼 지분을 매집해왔다. 현재 반도건설은 한진칼 지분을 13.30%까지 끌어올렸으며, 지난주 지분을 추가로 더 매집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앞서 반도건설은 이달 초 서울중앙지법에 지난해 주주명부 폐쇄 전 취득한 한진칼 주식 485만2000주(8.20%)에 대한 의결권 행사 허용 가처분을 신청했다.

당시 3자연합은 "가처분 신청은 한진칼 경영진이 주총 현장에서 기습적으로 감행할 수 있는 의결권 불인정 등 파행적 의사 진행을 예방하려는 방어적 법적 조치"라며 "반도건설 측이 적법하게 공시했는데도 한진칼 현 경영진은 일부 언론을 통해 반도건설 지분 매입 목적에 근거 없는 의문을 제기하며 법 위반 문제까지 거론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진칼 측은 "반도건설의 지분 보유 목적이 허위 공시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반도건설이 선제적으로 의결권 행사 지분을 인정해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냈다"고 반박했다.

자본시장법에서는 주식 보유목적 등을 거짓으로 보고할 경우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5를 초과하는 부분 중 위반 분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반도건설의 한진칼 지분 공시가 허위로 결론난다면 이번 한진칼 주총에서 의결권이 있는 반도건설의 지분 8.20% 중 3.20%에 대한 의결권이 제한될 수 있는 만큼 3자연합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전망이다.

현재 3자연합이 지분 공동 보유 계약을 통해 확보한 한진칼 지분은 이번 주총에서 의결권이 유효한 지분을 기준으로 31.98%로, 허위 공시로 의결권이 제한되면 28.78%로 내려간다.

이와 달리 조 회장 측은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지분 22.45%와 델타항공의 지분 10.00%를 확보한 상태이며 대한항공 자가보험과 사우회 등이 보유한 지분 3.8%와 GS칼텍스가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0.25%까지 합하면 36.50%로 격차를 벌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은 주총까지 남은 10일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자본시장법 위반 내용을 모두 조사해 결론을 내리는 건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조사요청서의 내용을 살펴보지 못한 시점에서 구체적인 일정을 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법원의 의결권 가처분 결정도 있는 만큼 결과에 따라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허위 공시 논란이 확산되자 권 회장과 조 회장의 만남에 관심이 쏠리면서 양측이 이에 대해 서로 엇갈린 입장을 내놓아 주목된다.

반도건설은 전날 보도자료를 통해 "권 회장은 지난해 고 조양호 회장의 갑작스런 타계 이후 조원태 회장이 도움을 요청하는 만남을 요구해 몇차례 만난 바 있다"며 "당시 만남은 시름에 빠져 있는 조 회장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조 회장이 그 자리에서 여러 제안을 먼저 했는데 이에 대한 권 회장의 대답을 몰래 녹취하고 악의적으로 편집해 악용하면서 전체적인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며 "한진칼 투자는 반도건설 등 계열사가 단순투자 목적으로 진행한 것이며 조원태 회장을 만난 시기의 지분율은 2∼3%에 불과해 명예회장 요청 등 경영 참여 요구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진그룹은 곧바로 입장 자료를 내고 "권 회장의 요청으로 지난해 12월 10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임패리얼팰리스 호텔에서 만남의 자리를 갖게 됐다"며 "(조 회장이) 도와달라고 만남을 요청했다는 주장 자체가 거짓이며 명예회장직을 비롯한 명백한 경영 참여 요구였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해 12월 6일 기준 반도건설의 지분은 6.28%인데 지분율이 2∼3%에 불과했다고 거짓을 얘기하고 있다"며 "상당한 양의 지분을 보유한 권 회장의 제안은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제안이 아닌 협박에 가까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진그룹의 성장과 발전에 전혀 일조한 바도 없으며, 오히려 불법적으로 '보유목적 허위 공시'를 한 당사자가 한진그룹 명예회장을 운운한 것 자체가 비상식적인 행위"라며 "반도건설의 허위 공시는 중대한 범죄 행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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