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나라가 아니라 아픈 나라였다
이승철 지음, 행성B 펴냄

일본 해상 자위대가 지난해 10월 14일 도쿄 아사카 훈련장에서 사열행사를 갖고 있다. 일본은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를 앞세우며 군사대국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일본 해상 자위대가 도쿄 아사카 훈련장에서 사열행사를 갖고 있는 모습. 일본은 군국주의 상징인 전범기(욱일기)를 앞세우며 군사대국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경제대국, 타인을 배려하고 장인정신이 투철한 선진국, 혁신보다는 개선을 선호하는 습성, 기존 질서를 바꾸는 것에 대한 폐쇄적인 자세, 이익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업체 간 담합, 편향된 정보로 혐한 감정을 부추기는 미디어…. 일본의 현주소다.

최근 코로나19 사태에 우왕좌왕하며 대응하는 태도나,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이로울 게 없는 경제 제재 조치를 취한 사례를 보면 일본이라는 나라를 갈수록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일본이 왜 이렇게 ‘이상해지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정작 일본에서는 사회의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한 면에 대해서도 이를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고, 나온다 해도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빤히 보이는 문제점을 아예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서로 쉬쉬하는 사회인 것이다.

<나쁜 나라가 아니라 아픈 나라였다>(행성B)는 일본을 ‘나쁜 나라’로 만드는, 현대 일본이 앓고 있는 고질적인 ‘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우려하는 현실은, 집단에 매몰돼 뭔가 어긋나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는 개인들이 지금의 일본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여론조사에서 40퍼센트가 넘는 젊은이들이 이 나라에 사는 자신에게 ‘희망이 없다’고 답한 결과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낸, 변화를 두려워하고 사회 곳곳에서 현상 유지에 급급하며, 나아갈 줄 모르는 습관성에 물든 현대 일본의 속성을 이 책에서 새롭게 정의한 개념이 ‘자기 속박주의’다.

 

이 책이 다루는 9가지 키워드(배제 사회, 집단 사회, 억압 사회, 자기 속박 사회, 함몰 사회, 호족 사회, 종교 사회, 관례 사회, 자멸 사회)는 ‘자기 속박주의’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귀결된다.

‘자기 속박주의’는 저자가 오랜 취재와 탐구를 통해 도출해낸 개념이다. 과거 일본이 ‘축소 지향 사회’, ‘안전 사회’ 등으로 규정된 적은 있지만, 이러한 접근은 이 책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창적인 현대 일본 분석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일본 특파원으로, 도쿄대 연구원으로 재직한 일본 전문가다. 직접 발로 뛰며 일본의 곳곳과 각계각층의 사람을 취재한 결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9가지 키워드를 토대로 ‘자기 속박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현장 취재라는 단단한 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책은 한 국가에 대한 기존의 평가가 어느 때보다 흔들리고 있는 이 시점에서 ‘병’이 ‘악’으로, ‘아픔’이 ‘나쁨’으로 변질되어가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21세기 일본의 비밀스러운 심층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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