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흐름에 불황까지...대기업 속속 '비상경영'
생산차질·영업장 휴점 등... '경제 악순환' 불가피
노동·시민단체 "고용유지 절실해... 해고 막아야"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글로벌 경영환경 악화로 신음하던 산업계 전반에 구조조정 칼바람까지 불고 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항공·여행은 물론 자동차, 정유, 유통 등 업계에서 희망퇴직·휴직을 시행 또는 계획 중인 가운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수준의 대규모 정리해고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여러 대기업은 속속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하고 있으며, 극에 달한 공포감이 밀려들면서 생산차질까지 빚어지자 극심한 불황이 장기화 국면으로 갈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항공사마저 코로나19 위기에 임원 급여 반납 등 자구책을 강구하는 가운데 지상조업사와 하청업체 등은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대량 해고 칼바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 항공사마저 코로나19 위기에 임원 급여 반납 등 자구책을 강구하는 가운데 지상조업사와 하청업체 등은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대량 해고 칼바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1일 산업계에 따르면 먼저 중국내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시작된 부품공급과 생산차질이 한 달 넘게 이어지며 자동차, 디스플레이 등 주요산업의 올해 1분기 실적을 끌어내릴 전망이다.

국내 최대 완성차인 현대·기아자동차는 '셧다운' 사태에 휘청이고 있다. 지난 2월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진 뒤 현대차는 지난달 5일부터 국내 공장 가동을 멈췄다가 재개하고 있으나 완전한 회복은 가늠하기 어렵다. 중국 부품 공장에서 공급받는 '와이어링 하니스(wiring harness)' 물량이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른 완성차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국지엠(GM) 르노삼성차, 쌍용차는 업체별로 2~5일간 공장문을 닫았다가 재가동했지만 생산량을 수요에 맞추기는 버거운 상태다. 특히 완성차의 어려움이 1차, 2차, 3차의 협력사에도 여파를 주면서 지역경제에도 악영향이 미치고 있다.

부품공급 비상으로 완제품 생산이 원활치 못한 전자업계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양상이다. 단적으로 가전제품의 핵심인 디스플레이는 중국내 부품공급과 완제품 생산차질까지 겹쳐 신음중이다. 디스플레이의 중국산 비중은 50%를 넘는다.

공장가동을 멈추지 않고 있는 반도체도 날이 갈수록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한다면 생산물량 감소는 불가피하다. 특히 스마트폰, 노트북 등 제품 판매 감소에 따른 반도체 수요감소는 이미 현실로 다가오는 중이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올해 1분기 실적 하락 전망을 속속 내놓고 있다.

유통업체의 임시 휴점도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초기 CJ CGV, 홈플러스 등 일부 영업점 휴점 러시에 이어 최근 확진자 증가에 따른 영업장 휴점은 그 규모가 더 커지고 있다.

요식업이나 호텔 등 관광업, 테마파크 등 레저업 전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확진자가 다녀간 곳의 휴점 소식에 더해 소비자들의 불안심리가 반영된 매출 하락은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은 최악의 국면이다. IMF외환위기 때보다도 더 손님이 없다는 울부짖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달 13일부터 19일까지 소상공인 1079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실태를 조사한 결과, '매우 감소'와 '감소'의 응답이 무려 97%에 달했다. 

코로나19 악재가 늘어나면서 산업계의 비상경영은 최악의 단계까지 왔다. 사업장 규모를 줄이며 유동성 확보에 나서는가 하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도 본격화하고 있다.

항공업계의 불황탈출은 휴직에서 출발 중이다. 제주항공은 경영진 임금 30% 반납과 함께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근무일·시간 단축제를 시행한다. 진에어는 최장 12개월에 달하는 전사적인 무급 희망휴직을 받는다. 에어부산도 무급 희망휴직을 신청받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캐빈(객실) 승무원을 대상으로 희망휴직에 들어갔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말 운항승무원(조종사) 등을 일부를 제외한 전 직원을 대상으로 최대 3개월의 단기 희망휴직을 실시한 바 있다.

수주 부진으로 경영 위기를 겪는 두산중공업이 명예퇴직에 이어 휴업까지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경남 창원시 성산구 두산중공업 내 설치된 대형 크레인.
수주 부진으로 경영 위기를 겪는 두산중공업이 명예퇴직에 이어 휴업까지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경남 창원시 성산구 두산중공업 내 설치된 대형 크레인.

 

대규모 감원 움직임도 감지된다. 

두산중공업은 수년간 발전시장 침체로 고전하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며 만 45세 이상 직원 2600여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최근엔 수주 부진으로 경영 위기를 겪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긴급 운영자금 1조원을 수혈받기에 이르렀다.

이동통신업계에서도 LG유플러스가 명예퇴직 시행안을 만들어 노조와 협의 중인 상태다.

유통업계는 온라인 쇼핑이 급증하자 오프라인 판매가 주력인 대형마트, 슈퍼 등을 중심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으며, 특히 업계 전반의 구조조정 칼바람이 본격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CJ그룹은 지난해부터 주력 계열사 구조조정에 돌입했고 최근엔 미국법인 본사에서도 감원을 실시했다. 이마트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주도한 '삐에로쑈핑', '부츠' 등 전문점을 철수하거나 축소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전체 700여개 점포의 30%인 200여개 점포를 정리할 계획이다.

지난 2018년 기준 전국의 백화점, 대형마트 등 대형종합소매업 종사자 수는 8만명에 달한다. 통상 점포 한 곳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100~300명정도로 유통업 위기는 수 천~수 만개 일자리 소멸로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코로나19 경제 사회 위기 대응 관련 종교 시민사회단체 입장 발표 긴급 기자회견'에서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코로나19 경제 사회 위기 대응 관련 종교 시민사회단체 입장 발표 긴급 기자회견'에서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동·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기업이 고용을 유지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대규모로 이뤄지고 있는 코로나19 관련 기업 지원에 '고용 유지'라는 조건을 부과하고, 해고 금지 등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주노총 등에 따르면 과거의 경험을 보면 위기 앞에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가장 먼저 해고했고, 재벌 대기업에 편중됐던 지난 정부들의 위기 지원 대책은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켰다.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은 기업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해고 금지, 총고용 유지를 내세우거나 해고 금지 조치를 하고 있는 만큼, 위기를 틈탄 구조조정이 있어선 안 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무급휴가, 무급휴직, 권고사직이 시작되고 있는 가운데 노동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공포에 젖어 들고 있는 상황으로, 경제 지원 대책의 초점을 기업을 살리는 데만 둬서는 안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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