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남주는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라'고 했다. 처연한 슬픔이나 낭만적 서정으로만 5월 광주를 묘사하지 말라는 뜻이다. 누구에게는 지나간 역사가 느린 화면의 몽타주로 기억되겠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의 반복이다.

욕 먹으면 오래산다고 한다. 전두환의 후안무치를 보면 이 말은 숫제 속담이 아니라 진리처럼 느껴진다. 골프를 치는 노익장을 봐도 그렇고 광주 재판장을 나선 득의양양한 얼굴을 봐도 그렇다.

하지만 전두환이 오늘 당장 세상을 떠나기라도 한다면 그것도 큰 일이다. 아직 우리에겐 전두환에게 받지못한 추징금 1005억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현재 법 상 추징 대상이 사망하면 추징 시효는 소멸되고 빼돌린 재산은 고스란히 그의 가족 몫이 된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이른바 '전두환 특별법'으로 요약되는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정식 법안명은 '5·18민주화운동 전후 헌정질서파괴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안'. 주요 골자는 전두환이 죽더라도 그 재산을 후손들이 상속하지 않고 국고에 귀속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법안의 발의자는 천정배 대안신당 의원(대표발의), 강창일(더불어민주당), 김동철·장정숙(바른미래당), 박지원·김종회·장병완·천정배·최경환(대안신당), 정동영·황주홍(민주평화당), 여영국(정의당) 의원 등 총 11명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상임위 소위원회에서 논의도 제대로 되지 못한 채 여론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고, 총선을 의식한 호남권 일부의원들의 안스러운 제스처로 치부되고 말았다.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파헤친 바에 의하면 '전두환과 그의 일당'이 숨겨놓은 차명재산과 전국에 걸친 부동산이 10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즉, 정부와 정치권의 의지에 따라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 추징금 집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일 일당들이 뻔뻔한 얼굴로 이중처벌이나 위법 논란을 들이민다면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환수에 관한 특별법(친일파 재산 환수법)'을 근거로 들자. 나치 부역자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집요하고 단호한 집행을 예로 들자. 대한민국 헌정 70년사를 유린한 범죄집단에 시효라는 탈출구를 마련해준다는 것은 지나친 관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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