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희상 국회의장, 21일 국회 사랑재에서 기자간담회 개최
- "김대중 부름받아 정치 시작, 놀라운 행운"
- "나를 일으켜준 원동력은 의정부 시민의 손"

문희상 국회의장이 21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스트레이트뉴스=이제항 선임기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서있는 지금, 나는 몹시 떨린다. 국회의장직 뿐만 아니라 나의 인생 자체였던 국회와 정치를 떠난다는 두려움일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늘 그렇듯이 다가올 낯선 미래에 대한 동경과 새로운 길을 가고 싶다는 설레임일 것이다.”

퇴임을 앞둔 문희상 국회의장은 21일 국회 사랑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밝히며, “오늘 기자간담회를 앞두고 무엇이 나를 정치로 이끌었나, 그리고 문희상의 정치는 무엇이었나 곱씹고 곱씹게 됐다”며 말문을 열었다.

▲ 아쉬움 남아도 후회 없는 삶, 행복한 정치인의 길 걸어와

문 의장은 “생각해보니 평생을 정치의 길을 걸어왔으며, 65년 혈기 넘치던 법대 시절, 한일회담 반대 투쟁에 나섰던 시기를 떠올리면 55년의 세월이고, 80년 서울의 봄을 기점으로 40년, 87년 제2의 서울의 봄, 처음으로 정당에 참여한 시절을 기준으로 해도 33년의 긴 여정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문 의장은 “평생의 업이자 신념이었던 정치를 떠난다니 사실 심정이 복잡했고. 김종필 전 총리의‘정치는 허업(虛業)’이라는 말이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나날이었으며, 깊은 회한이 밀려들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아쉬움은 남아도 나의 정치 인생은 후회 없는 삶이었고, 하루하루 쌓아올린 보람이 가득했던, 행복한 정치인의 길이었다“고 토로했다.

▲ 79년 김대중 대통령과의 첫 만남이 나를 정치로 이끌어

79년 김대중 대통령과의 첫 만남이 정치와 인연이 됐다는 문 의장은 “저의 결정적인 첫 걸음은 1979년 동교동 지하서재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처음 만난 날, 그 모습이 지금도 강렬하고 또렷하게 남아있다”면서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며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통일에의 꿈이 무지개처럼 솟아오르는 세상, 그 말씀이 저를 정치로 이끌었으며. 그날 모든 것을 걸고 이뤄야할 인생의 목표가 분명해졌다"고 회고했다.

이어 "1997년 12월 19일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돼 수평적이고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현실이 됐으며, 이로써 저의 목표는 모두 다 이뤄진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문 의장은 “덤치고는 너무 후한 정치인생을 걸어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부름을 받았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회의장을 하며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할 기회를 얻었으며. 야당이었던 두 정부에서도 야당을 대표하여 한국사회에 미력하나마 기여할 수 있었으며, 무려 다섯 정부에서 제게 역할이 주어졌고,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할 수 있는 것은 놀라운 행운이었다”고 회고했다.

▲ 문희상 정치의 출발은 ‘팍스코리아나’, 그 기회가 오고 있어

문 의장은 과거 청년기에서부터 ‘팍스 코리아나’를 꿈꿔왔다며 우리나라에게 그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 의장은 “1980년 봄,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은 무참히 사라졌지만, 젊은 문희상이 품었던 꿈은‘팍스 코리아나’로부터 출발했고, 대한민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팍스 코리아나의 시대를 만들고 싶은 당찬 포부였다”면서 “ 80년대 당시에는 그저 정치 초년생의 꿈이었을 뿐 누구도 실현 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우리 대한민국에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이어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남긴 '역사는 서진(西進)한다'는 말을 인용해 "로마에 의한 평화 팍스 로마나에서 대영제국 팍스 브리태니카로, 미국이 주도하는 팍스 아메리카나에서 팍스 아시아나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며 “팍스 아시아나의 시대에는 한국·중국·일본 3국 서로 양보하며 협력속의 경쟁이 필연이고 그 안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팍스 코리아나의 꿈을 실현하고 우뚝 서기를 저는 염원한다”고 말을 이었다.

▲ 문희상 일으켜 세운 원동력은 변함없던 의정부시민의 사랑

문 의장은 의정부 시민에 대한 감사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문 의장은 “두 번의 낙선을 포함해 수많은 위기의 순간과 시련의 시간도 보냈지만, 그때마다 실의에 빠져있던 저를 일으켜 세운 원동력은 바로 고향인 의정부 시민의 손”이었다면서 “그 분들의 변함없는 사랑 덕분에 6선의 국회의원과 국회의장을 할 수 있었고, 오늘 이렇게 명예퇴직하게 됐으며 이 은혜와 고마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문 의장은 “이제 제가 나고 자라서 뼈를 묻을 고향 의정부로 돌아갈 시간”이라면서“고단했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문희상 국회의장의 퇴임기자간담회 발언 전문이다.

[문희상 국회의장, 퇴임기자간담회 모두발언 전문]


참으로 오랜만에 언론인 여러분과 함께 하는 것 같습니다.

반갑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장 문희상입니다.

오늘 기자간담회 제목 앞에는 퇴임이라는 말이 더 붙어있습니다. 기어이 이날이 오고야 마는군요. 임기가 꼭 8일 남았습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언론인 여러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서있는 지금, 나는 몹시 떨립니다. 국회의장직 뿐만 아니라 나의 인생 자체였던 국회와 정치를 떠난다는 두려움일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늘 그렇듯이 다가올 낯선 미래에 대한 동경과 새로운 길을 가고 싶다는 설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기자간담회를 앞두고 지난날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무엇이 나를 정치로 이끌었나, 그리고 문희상의 정치는 무엇이었나 곱씹고 곱씹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평생을 정치의 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65년 혈기 넘치던 법대 시절, 한일회담 반대 투쟁에 나섰던 시기를 떠올리면 55년의 세월입니다. 80년 서울의 봄을 기점으로 하면 40년입니다. 87년 제2의 서울의 봄, 처음으로 정당에 참여한 시절을 기준으로 해도 33년이 됩니다.

평생의 업이자 신념이었던 정치를 떠난다니 사실 심정이 복잡했습니다. 김종필 전 총리께서 말씀하셨던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는 말이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나날이었습니다. 흔히 쓰는 말로 ‘말짱 도루묵’ 인생이 아니었나 하는 깊은 회한이 밀려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쉬움은 남아도 나의 정치 인생은 후회 없는 삶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쌓아올린 보람이 가득했던, 행복한 정치인의 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희상의 결정적인 첫 걸음은 1979년 시작됐습니다. 동교동 지하서재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을 처음 만난 날, 그 모습이 지금도 강렬하고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며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통일에의 꿈이 무지개처럼 솟아오르는 세상” 그 말씀이 저를 정치로 이끌었습니다. 그날 모든 것을 걸고 이뤄야할 인생의 목표가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1997년 12월 19일 김대중 대통령님이 당선되었습니다. 수평적이고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현실이 되었고, 이로써 저의 목표는 모두 다 이뤄진 것입니다.

여러분, 그날이후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이제부터 내 인생은 덤이요’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덤치고는 너무 후한 정치인생을 걸어왔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부름을 받았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회의장을 하며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야당이었던 두 정부에서는 야당을 대표하여 한국사회에 미력하나마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무려 다섯 정부에서 제게 역할이 주어졌고,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언론인 여러분!

1980년 봄,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은 무참히 사라졌지만, 젊은 문희상이 품었던 꿈은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저의 정치는 ‘팍스 코리아나’로부터 출발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팍스 코리아나’의 시대를 만들고 싶은 당찬 포부였습니다. 80년대 당시에는 그저 정치 초년생의 꿈이었을 뿐 누구도 실현 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우리 대한민국에 기회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있습니다. 국민의 힘과 한국사회의 역량은 강화되어 어떠한 국난도 능히 극복해내는 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으며 팝과 영화, 스포츠와 방역에 이르기까지 K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서진(西進)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로마에 의한 평화 팍스 로마나에서 대영제국 팍스 브리태니카로, 미국이 주도하는 팍스 아메리카나에서 팍스 아시아나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팍스 아시아나의 시대에는 한국·중국·일본 3국 서로 양보하며 협력속의 경쟁이 필연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팍스 코리아나의 꿈을 실현하고 우뚝 서기를 저는 염원합니다. 대한민국 정치 지도자라면 누구나 꿈꾸고 추구해야할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몸은 떠나도 문희상의 꿈, 팍스 코리아나의 시대가 열리기를 간절히 바라고 응원할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6선의 국회의원이지만, 두 번의 낙선도 경험했습니다. 낙선을 포함해 수많은 위기의 순간과 시련의 시간도 보냈습니다. 그때마다 실의에 빠져있던 저를 일으켜 세운 원동력은 고향 의정부 시민의 손이었습니다. 그 분들의 변함없는 사랑 덕분에 6선의 국회의원과 국회의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명예퇴직하게 되었습니다. 이 은혜와 고마움을 어찌 잊겠습니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제가 나고 자라서 뼈를 묻을 고향 의정부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고단했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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