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경제차관 "이미 한국에 EPN 동참 제의"
SK하이닉스 메모리칩 질문에는 "규제 대상 아냐"
재계 "미중 무역전쟁 확대시 규제 강화될 가능성 높아"

미국 정부가 중국과 대치되는 경제블록을 구축하려는 계획을 세우며 우리나라에도 동참하라는 뜻을 전했다. 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중국과 대치되는 경제블록을 구축하려는 계획을 세우며 우리나라에도 동참하라는 뜻을 전했다. 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중국과 대치되는 경제블록을 구축하려는 계획을 세우며 우리나라에도 동참하라는 뜻을 전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는 가운데, 우리나라에도 일종의 ‘줄세우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아직 우리 정부의 공식 답변은 없으나 ‘반중 경제블록’이 현실화될 경우, 우리 기업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키스 크라크 미 국무부 경제차관은 21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아시아태평양 미디어 허브가 연 전화 브리핑에서 경제 번영 네트워크(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에 한국이 동참할 것을 이미 제안했다고 밝혔다. EPN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자 미국과 친밀도가 높은 국가들이 뭉쳐 중국과 맞서는 경제블록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키스 미 경제차관은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에서 한국 관계자와 (EPN 구상을) 논의했다”면서 “두 국가가 깊고 포괄적인 관계를 갖고 있으며 신뢰할만한 파트너십을 위한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EPN의 핵심 가치는 자유 진영 내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공급망을 확대하고 다각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한국에도 훌륭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PN의 사례를 비롯해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 갈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앞서 미국은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시스템 반도체 공급을 차단하는 강도 높은 제재에 나섰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지난 15일 화웨이 등 중국 통신장비업체와 미국 기업 간 거래를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2021년 5월까지로 1년 추가 연장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120일 간의 유예기간이 지나면 미국의 반도체 설계 기술을 사용하는 외국기업들도 화웨이에 제품을 팔 수 없게 된다.

이에 중국 상무부는 지난 17일 "중국은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해 중국 기업의 합법적인 권익을 단호하게 수호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중국의 반격 조치로 애플, 퀄컴, 시스코 등 미국 기업의 중국 활동이 어려워질 수 있다.

문제는 이번 미국과 중국간 무역전쟁으로 국내 기업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 생산품이 국가안보상 위협이 된다는 명분을 들며 화웨이가 미국 이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회사에 반도체 제작을 의뢰할 수 없도록 했다. 여기에 화웨이가 미국의 특정 소프트웨어와 기술도 취득할 수 없도록 막으면서 중국 내수 시장에서 화웨이의 입지가 크게 위축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5월에도 화웨이와 화웨이 계열사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바 있다. 이에 화웨이는 하드웨어 공급에 차질을 빚자 대만의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TSMC에 위탁 생산을 맡기는 방식으로 미국의 반도체를 공급받아 왔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번 미국의 조치는 지난해보다 더욱 강화돼 TSMC를 비롯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화웨이에 더 이상 반도체 공급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보고 있다. 미국 정부가 우리나라 공장에서도 미국 기술을 활용해 생산한 반도체 칩과 소프트웨어 판매를 허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사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낸드플래시(전원이 꺼져도 저장한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 메모리 반도체)를 탑재해 왔다. 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 26조9900억원 가운데 12조5700억원(약 50%)이 중국에서 나오기도 했다.

삼성전자도 화웨이가 주요 고객사중 한 곳인만큼 매출의 여파가 클 것이란 예상도 있다.

다만 미 국무부는 SK하이닉스처럼 메모리 메모리 반도체를 파는 경우는 규제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키스 크라크 국무부 경제차관은 앞선 기자회견에서 ‘SK하이닉스 같은 회사가 메모리칩을 화웨이에 판매하는 것도 규정에 따라 금지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이 규정은 화웨이가 설계한 칩이 화웨이로 들어가는 것에만 적용된다”고 답했다.

해당 설명대로라면 삼성전자처럼 메모리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는 일로는 규제를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미 국무부의 말만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미국이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노골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화웨이를 시작으로 중국 기업 무역 제재가 더욱 확대될 수 있어 앞으로 미국의 움직임에 따라 국내 기업들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를 인식한 우리 정부도 미국과 중국의 갈등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앞으로의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21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것과 관련해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 대변인은 "지난해 외교전략조정회의를 출범시켜 4~5개월 단위로 두 차례 개최했다. (미중 갈등도) 외교전략조정회의에서 논의하고, 검토하는 사항으로 조정회의를 가동하기 위한 여러 가지 준비 작업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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