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입에 들어서면서 거짓말처럼 더워지는 날씨,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마스크가 더욱 답답하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정부가 권장했던 'KF-80'보다 기왕이면 얇은 '비말 마스크'나 '덴탈 마스크'를 찾는 국민들이 많아졌다. 이레저레 바이러스라는 존재는 지독히도 성가시고 두려운 존재다.

미세먼지나 감염병에 대한 우려가 없던 시절에도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던 시절이 있었다. 거리에 자욱하게 깔린 최루탄 가스에 얼굴을 찌뿌리고 너도나도 입을 틀어막기에 바빴던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이다.

1987년 1월 어느날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서울대학교 학생이 물고문을 받다 '질식'해 숨진다. 그리고 그해 6월, 그 서울대생의 죽음을 은폐하는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에서 또 한 명의 대학생이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다.

억압과 탄압에 질식할 직전인 국민들의 분노는 들끓어 올랐고 거대한 인파가 되어 거리를 가득 메웠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그렇게 박종철과 이한혈 두 명의 희생은 '6·10민주항쟁'을 낳았고, '6·29 선언'이라는 미완의 승리를 쟁취했다.

그후 33년, 우리는 태평양을 건너온 또 다른 '질식 사망사고' 뉴스를 듣는다. 미국 텍사스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시에서 백인 경찰이 비무장한 흑인 용의자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를 체포하다 질식사시켰다는 소식이다.

경찰이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짓누른 시간은 무려 8분 46초. 분노한 미국 시민들이 각지에서 거리로 뛰쳐나와 플로이드가 호소했던 말은 외쳤다. "숨을 쉴 수가 없다(I can't breathe)". 전 세계를 호령하는 지구촌 경찰국가이자 '자유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미국 사회의 민낯은 그리 아름답지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 천안의 어느 아파트에서는 9살짜리 아이가 계모에 의해 여행용 가방 안에 갇혀 있다 숨졌다. 아이가 숨지고 난 후에야 그 전에도 지속적으로 학대를 받았다는 정황이 나왔다.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라는 것이다.

최근 5년간 우리나라에서 학대로 사망하는 아동의 수가 132명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아동학대의 80%는 부모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도 안타깝다.

 K-팝, K-무비, K-방역에 공연히 우쭐하고 뿌듯해 하면서 거대 강대국의 인종차별을 비웃는 국민소득 3만달러의 자칭 준(準)선진국 한국의 민낯도 그리 깨끗하지는 않았다. 

가방 속에 갇힌 아이가 느꼈을 공포, 욕조에 머리가 잠긴 박종철이 느꼈을 공포, 여차하면 끌려가서 고문을 받아야 했던 억압통치 시절의 '질식의 공포'를 생각하면 더운날 마스크 타령은 차라리 사치처럼 느껴지는 6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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