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칼럼] 국민 등을 친 '등' 법사위
[통일로 칼럼] 국민 등을 친 '등' 법사위
  • 이호연 선임기자 (leehoyon84@daum.net)
  • 승인 2020.0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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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연 스트레이트뉴스 선임기자
이호연 스트레이트뉴스 선임기자

21대 국회가 5일 첫 개원 이후 일주일 내내 으르릉이다. 여야는 원구성에 머리를 맞댔으나 법제사법위원장 쟁탈전에 한치 양보가 없다. 18개 상임위원장의 배분 협상을 위한 험악한 전초전에 이들 300인을 여의도에 보낸 유권자가 불호령치기 일보직전이다.

반쪽국회라는 욕을 얻어먹고, 나아가 20대 식물국회와 동물국회로 회귀하는 구태재연이라는 질타에도 '합의 실패'의 뉴스만이 타전되는 현실이다. 여야의 상임위원장 확보를 위한 기싸움은 11 대 7로 가닥을 잡아가고 법사위원장은 집권 여당이 가져가는 대신 야당인 통합당이 예결위원장을 맡도록 하는 협상이 진행 중이나 법제사법위원장을 양보해서는 안된다는 야당 내 강성기류로 답보상태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15일 본회의에서 상임위원장 선출 건을 처리하겠다고 여야에 시한 통보하기에 이르렀다.

여야의 쟁점인 법사위원장은 국회의 상원의장으로 불린다. 위원장은 모두가 입법기관인 여야 의원들의 상왕이라는 말이 생긴 지 오래다. 법사위원장 선임 건은 여대야소든 여소야대든 역대 개원 협상에서 늘 단골 메뉴였고 핵심 쟁점이었다.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민주통합당은 김태년 원내대표를 비롯해 소속 의원들이 모든 위원회의 위원장 자리를 가져와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 원구성에 기선을 잡아간다.

김 원내대표는 이제는 법사위가 게이트키퍼 수단으로 악용되는 구태를 끊을 때라고 하면서 21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 자리를 반드시 가져오겠다고 강조했다.

미래통합당은 법사위원장직은 야당 몫이었던 것이 관례이고, 17대 국회서부터 야당은 법사위원장직을, 여당은 국회의장직을 관례처럼 맡아왔다는 주장으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여야가 기를 쓰고 차지하려고 하는 법사위원장의 법사위에는 모든 의원과 상임위 입법안의 제어가 가능한 고유의 기능이 있다. 다른 상임위에 없는 '체계·자구 심사권'이다. 여당이 국민의 선택인 여대야소의 21대 국회에서 법사위원장 몫을 야당에 넘겨줄 여지가 없음을 간파한 미래통합당은 법사위의 권한을 법제와 사법의 두 개의 위원회로 나누자고 여당에게 제안했다. 법제위가 제반 법률안을 심사토록 하고 사법위는 행정부와 사법부를 감사토록 하자는 게 골자다. 이 제안에서는 법제위만은 종전처럼 야당의 몫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여당은 이에 맞서 법사위의 법제기능을 각 상임위가 가져갈 수 있도록 국회법을 개정하자고 역제안했다.

'상왕' 법사위원장, 법제의 체계·자구 심사권

국회법 제37조에 규정된 법사위의 소관업무에는 ‘법률안ㆍ국회규칙안의 체계ㆍ형식과 자구의 심사에 관한 사항’이 포함돼 있다.

국회의 각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은 법사위에서 '2차 심사'(체계·자구심사)를 통과해야만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다. 체계·자구 심사란 법안의 위헌 여부, 타 법률과의 충돌 또는 용어의 적절성 등을 검토하는 과정이다.

야당은 법사위의 순기능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상하원제를 채택하고 있지 않아 법사위가 상원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국회의 법안 처리와 관련해 각 상임위 소속 전문위원들은 법안을 상정하기 이전에 검토보고와 심사보고기능을 수행하고 있고, 또한, 입법 과정에서 국회 입법조사처의 입법 전문가들도 위헌 여부 등에 대해 전문적인 의견을 개진, 복잡한 사안의 경우 헌법 학자들의 자문을 듣기도 하기 때문에, 법사위가 상원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여야 정쟁에 국민 위한 법제는 뒷전

민주통합당은 과거 야당 법사위원장이 심사권을 남용, 쟁점 법안의 길목을 막아버리는 사례를 들어 법사위의 역기능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일지라도 법사위원장이 꼬투리를 잡아 상정을 기피하면 법안 처리가 지연되거나 불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원구성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김태년 원내대표와 주호영 원내대표를 만나, 협치와 타협의 21대 국회 원구성에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연합뉴스)
박병석 국회의장이 원구성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김태년 원내대표와 주호영 원내대표를 만나, 협치와 타협의 21대 국회 원구성에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연합뉴스)

실제로, 20대 국회 회기 중인 작년 6월 여상규 당시 법사위원장은 야당과 합의 없이 처리된 법안은 법사위에서 처리하지 않고 돌려보내겠다는 발언을 했고, 돌려보내지 못한 법안은 법사위에서라도 여야 합의 처리를 하도록 운영하겠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이런 발언이 체계·자구심사의 범위를 넘어, 의원들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위헌·위법적 행위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하지만, 반대적 현상도 있다. 19대 국회에선 민주당 소속 박영선 법사위원장이 외국인투자촉진법 상정을 거부해 예산안이 해를 넘겨 통과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야 원내대표가 일괄타결을 합의한 쟁점법안이었지만 박 위원장의 반대를 막아내지 못했었다.

법사위, 재벌의 로비의 핵심 창구

18대 국회 회기 말 2012년 2월 8일 소프트웨어산업 진흥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 지식경제위원회 법안 소위가 열렸다.

법률 개정안 요지는 대기업이 불공정한 로비를 통해 공공 소프트웨어 수주를 독식하면서 하청 중소 IT 기업들로부터 부당한 착취를 하고 있어, 중소 IT 기업들의 경쟁력을 갉아 먹는 현상을 원천봉쇄 하자는 것이었다.

법안 쟁점의 요지는 대기업 참여를 허용하는 예외 조항에 ‘등’자를 포함시킬 것인지의 여부이었다. ‘국방ㆍ외교ㆍ치안ㆍ전력(電力), 그 밖에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업’에 ‘등’자를 포함시키자는 주장과 삭제하자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 것이다. 정부는 ‘등’자를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고, 이에 대해 산자위 법안 소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모두 ‘등’자를 삭제하자는 주장을 제기했다.

산자위 법안소위는 장시간의 논의를 거친 후에 ‘등’자를 삭제하기로 결의했고, 해당 법안은 산자위 전체회의를 거쳐 법사위에 상정됐다.

국민의 등을 친 법제위의 '등' 사고

그런데, 2012년 3월 2일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는 웃지도 못할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우윤근 법사위원장이 상정된 22개 법안에 대한 의견을 묻자, 당시 한나라당 비례대표 이두아 의원이 ‘등’자를 포함시키자는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당시 홍석우 지식경제부장관은 ‘등’을 집어넣는 것은 큰 문제가 없겠다는 답변을 했다.

이에 우윤근 위원장은 ‘크게 정책이 훼손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라는 발언을 하면서, 이두아 의원이 제안한 ‘등’자를 포함시키기로 법안을 수정 결의를 했다. 이후 수정된 법안은 본회의를 통과했다.

산자위 법안소위에서 여야 의원 모두가 참여해 무려 2시간이 넘는 열띤 토론을 거쳐 ‘등’자를 빼자고 결의한 내용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돼 버린 것이다.

당시 구로동 IT 단지 내 호프집에서는 IT 종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맥주잔을 기울이면서, 국회를 향한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법사위의 초법적인 입법 농단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중소 IT기업들의 경쟁력을 짓밟아 버린 사건이라며 여야 국회의원들을 싸잡아 혹독한 비난을 했다.

이후 산자부는 ‘등’자의 의미를 확대해석하기 위해 국책연구원에 용역을 발주했고, 산자부는 해당 용역보고서를 근간으로 행정입법을 대기업 편향적으로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중소 IT기업들의 권익이 철저하게 유린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것은 명백한 법사위의 월권행위이다. 법사위가 대한민국과 국회법을 무시하고, 상임위의 결의내용을 정면으로 뒤집어 버린 것이다. 이런 현상이 옳다고 본다면 국회법에 규정된 상임위의 권능은 아무런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이다.

21대 국회는 법사위원장 자리를 가져가기 위한 정쟁에 몰두하기 이전에 과거 잘못된 관행의 반성을 토대로 법사위의 존재와 가치의 재정립에 나서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이런 역기능을 기대하고 법사위원장 자리를 탐하는 것이라면, 표심의 응징은 필연적이며 훗날 혹독한 역사의 심판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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