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입법조사처, 복수국적자의 국적포기에 관한 국제법적 쟁점과 입법과제 제시

[스트레이트뉴스=이제항 선임기자] 개인의 국적포기권을 규율하는 국제규범과 국적포기에 관한 해외의 입법 관행,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결정례를 분석해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후속 입법방향에 대한 제언이 나왔다.

국회입법조사처(처장 김하중)는 12일, ‘복수국적자의 국적포기에 관한 국제법적 쟁점과 입법과제’를 다룬 보고서를 발간했다.

국적포기에 관한 논의는 고대 그리스.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국적포기권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보편적 다자조약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 국적의 취득과 상실은 한 국가의 국내법에 따라 결정되는 사항이며, 기본적으로 한 개인이 국민이 될지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과 재량은 당해 국가에 있다.

하지만 지역적 차원의 협약으로는 1997년 유럽평의회가 채택한 ‘국적에 관한 유럽협약’(이하 유럽국적협약)이 국적의 취득과 상실의 문제에 대해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유럽국적협약 제8조 제1항에 따르면 국가에게는복수 국적을 가진 자국민이 국적포기를 원하면 이를 반드시 허용해야 할 의무가 있고, 제2항에서는 여전히 당사국들에게 해외에 상주하는 개인에게만 국적포기권을 인정할 수 있는 입법 재량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해외에 상주하는 자국민 가운데 국가에 대해 부담하는 병역 의무 등을 이행하지 않는 개인에게 국적포기를 허용하지 않는 경우 이는 해당 규정 위반을 구성하게 된다.

제21조 제1항에 따르면, 복수국적자는 어느 한 국가에서만 병역의무를 이행하면 된다. 제3항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복수국적자는 거주하고 있는 국적국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래도 개인이 거주국이 아닌 다른 국적국에서 자발적으로 병역을 하겠다고 하면 그 의사는 존중된다. 그리고 한 국적국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하면 다른 국적국에 대해서도 병역의무의 이행을 완료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국적포기에 관한 국가의 입법 관행을 살펴보면, 150여 개가 넘는 국가들 가운데 단일국적자가 국적을 포기하는 것을 허용하는 국가는 찾아보기 힘들고, 복수국적자가 국적을 포기하는 것을 법률로 금지하는 국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복수국적자에 한하여 국적포기를 인정하되, 이를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대신 해외 상주, 병역의무 이행 등을 조건으로 하여 개인의 국적포기를 인정하고 있다. 국적포기에 요구되는 가장 대표적이고 일반적인 요건은 해외 상주이다. 한 예로, 스위스는 18세 이상 복수국적자의 해외상주를 국적포기의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에서 국적포기의 문제는 복수국적자 남성의 병역의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지난 2015년 헌법재판소는 복수국적자가 병역의무를 해소한 후에야 국적포기가 가능하도록 한 ‘국적법’ 제12조 제2항 등이 합헌이라고 결정했지만, 재판관 9인 가운데 반대한 4인은 과잉금지원칙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이는 국제법의 최근 동향과 인권적 접근방식을 반영한 것이며, 향후 우리 법원의 후속 판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복수국적자 가운데 일부는 다른 국적을 보유한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병역의 의무는 회피하면서도 대한민국 국적에서 파생되는 권리는 누리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에 대해 우리 ‘국적법’은 병역의무를 해소한 후에만 국적을 이탈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문제는 이를 적용한 구체적 사건에서 수범자인 복수국적자와 대한민국 간에 진정한 유대관계가 없고, 국적에 따른 권리를 향유한 적이 없는데도 병역의무의 이행을 강제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이에 국회는 복수국적자에게 대한민국 국적은 단지 혈통주의에 따라 부여된 형식에 불과하고, 애초 병역면탈의 의도는 물론 병역의무 이행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어 적절한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우리나라도 독일 입법례를 참고하여 10년 이상의 해외 거주 또는 다른 국적국에서 병역의무 이행 기록이 있는 경우 병역 미이행자도 국적을 포기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신중히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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