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구 전 흥사단 사무총장
홍승구 전 흥사단 사무총장

6.15선언 20주년을 맞아 국회의원 173명이 ‘한반도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을 발의한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이 대표 발의하는 이 결의안은 정의당과 무소속 의원도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9년 11월에도 국회의원 71명이 같은 결의안을 발의했으나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1953년 7월 27일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이 체결한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은 올해로 68년째다. 막대한 사상자와 엄청난 파괴를 낳은 군사 충돌 후에 전쟁을 끝내지 않고 전쟁을 멈춘 이 협정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다. 

 정전협정문에는 쌍방에 막대한 고통과 유혈을 초래한 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하여 서로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적대행위와 무력행위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기 위해 협정을 체결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협정에는 평화적 해결을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제4조 60항이 바로 그것이다. 내용은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하여 쌍방 군사령관은 쌍방의 관계 각국 정부에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효력을 발생한 후 삼 개월 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 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및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군대의 철수와 ‘한 급 높은 정치회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13항에 명시한 ‘한국 경외로부터 증원하는 작전비행기 장갑차량 무기 및 탄약을 들여오는 것을 정지한다’라는 내용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협정 당사자는 정전협정 체결 후 전쟁상태를 중지하는 것 외에 주요 내용을 지키지 않고 있다. 

 협정 당사자가 정전협정 자체도 지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적대적이고 군사적 긴장 상태를 유지함에 따라 우리 민족은 수시로 일어나는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 민족구성원들은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 민족이 서로에 대한 적대감과 증오심을 키우고 이를 받아들이도록 강제당하고 있어 사상과 언론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받고 정상적인 가치관을 형성하기 어렵다. 더구나 미군 주둔과 전시작전권 이양, 미국 무기 구입, 방위비 분담금 증액 강요와 남북대화 간섭 등으로 우리가 받는 고통은 적지 않다.      
 
 따라서 정전협정 당사자들은 하루빨리 정전협정을 끝내고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첫걸음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1989년 12월 고르바초프와 부시가 몰타회담에서 동서 냉전의 종식을 선언하고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열었으나 한반도 냉전 상태는 아직까지 지속하고 있다. 

 한반도 냉전 종식과 평화를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1972년 ‘7.4 공동선언’에서 조국 통일 3원칙으로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라고 선언한 것이 시작이었다.

유엔군과 중국·북한군의 수석대표들은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상에 체결했다.
유엔군과 중국·북한군의 수석대표들은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상에 체결했다.

 이어서 남북은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여 ‘7.4 공동선언’의 조국 통일 3원칙을 재확인하고 남북화해와 남북불가침, 교류와 협력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을 합의했다. 1994년 10월 북미가 체결한 ‘북미 제네바 합의’ 제12항에 ‘미국은 북한에 대한 공식적인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위협이나 핵무기를 통한 공격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약속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6자회담 결과물인 2005년 ‘9.19공동선언’에도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를 합의했고, 2000년 ‘6.15선언’, 2007년 ‘10.4선언’,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 2018년 6월 ‘북미정상회담 합의문’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남북과 북미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북미 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정상 관계를 구축한다고 합의했다. 

 냉전 기간인 1972년의 ‘7.4 공동선언’을 제외하더라도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부터 2018년 ‘평양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합의에도 불구하고 평화 정착을 위한 실질적인 진전이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

 다양한 의견이 있겠으나 세 가지를 성찰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7.4 공동선언’에서 채택한 후 조국 통일 대원칙으로 정착한 ‘외세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는가? 한반도 냉전은 남북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우리 문제이므로 우리가 과감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주도해야 한다. 우리는 당사자이지 중재자가 아니다. 둘째 압박과 제재, 적대관계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적대관계 해소는 적대적 방법이 아니라 더 과감하게 평화적 방법으로 접근할 때 진전이 있었음을 우리는 경험했다. 이 글을 마무리할 즈음에 북측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으로 보인다는 속보가 들어왔다. 대결을 주장하는 자들은 도발을 들먹이며 또 난리를 피울 것이다. 호들갑을 떨어서 해결된 적이 있는가?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해 대결을 선동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셋째 미국은 한반도 평화 의지가 있는가? 모든 국가가 행동하는 기본 원칙은 자국의 이익이다. 국제관계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북측이 핵무기로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한 미국은 군산복합체의 이익과 중국 봉쇄를 선호할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 평화가 우리 민족의 과제이지 미국이나 중국의 과제가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종전선언에 그칠 것이 아니라 평화협정 체결을 당사자로서 주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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