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재판을 통해 정당방위 요건을 재판에 반영할 수 있을 것

▲ Social Justice

최모씨는 2014년 3월 8일 오전 3시 15분께 원주시 남원로 자신의 집에 침입한 도둑 김모(당시 55세)씨를 주먹과 발 등으로 수차례 때려 뇌사 상태에 빠진 김씨가 그해 12월 사망하여 피고인 최모씨는 상해치사죄로 재판을 받았다.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춘천 제1형사부는 최근 최씨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피고인은 정당방위 또는 정당방위이지만 그 정도가 지나친 과잉방위(형을 감경 또는 면제까지 가능함)를 주장했는데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를 완전히 제압한 1차 폭행에 이어 빨래건조대 등으로 추가 폭행이 있었다"며 "이는 방어 의사를 초월해 공격 의사가 압도적이었고, 사회통념상 상당성을 갖췄다고 볼 수 없는 만큼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피고인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했기 때문에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정당방위 해당 여부 등에 대한 최종 판단을 받게 되었으나 정당방위 인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양모씨의 집에 침입한 휴가 장병 장 상병이 먼저 양씨의 동거녀이자 예비신부인 박 모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다시 장 상병과 양씨는 몸싸움을 벌이다 양씨가 칼을 빼앗아 장 상병의 목과 옆구리를 찔러 살해하였다. 이 사건에 대하여 경찰은 흉기를 빼앗긴 뒤에도 장 상병이 계속 달려들어 상황이 위급했다고 정당방위를 인정하여 무혐의로 검찰에 송치하였다. 만약 검찰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1990년 경북 지역에서 애인을 추행한 사람을 격투 끝에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남성이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이후 25년 만에 살인사건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셈이다.

그런데 미국 법정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배심재판에서 살인사건에서도 정당방위를 인정받아 무죄를 선고받는 장면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물론 미국의 경우 개인의 총기소지가 허용되고 있어 중대한 침해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이를 방어하기 위한 행위에 대하여 정당방위를 인정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정당방위로 인정받기는 매우 어렵다. 왜 그럴까? 먼저 우리 형법의 정당방위의 요건을 검토해 보자.

우리 형법상 정당방위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형법 제21조 제1항)를 말한다. 정당방위는 위법한 침해에 대한 방위라는 점에서 흔히 부정(不正) 대 정(正)의 관계에 있고, 정은 부정에 길을 비켜줄 필요가 없다는 원리에 따라 정당방위가 인정되면 위법한 행위가 아니므로 무죄이다.

정당방위 요건 중 상대방의 침해가 ‘부당한 침해’인지와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가 가장 문제된다. 특히 대법원은 싸움은 서로가 서로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하고 있는 것이므로 일방의 행위만을 부당한 침해라고 볼 수 없어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대법원도 싸움이 중지된 후 다시 상대방이 새로이 도발한 별개의 가해행위를 방위하기 위하여 단도로 상대방의 복부에 자상을 입힌 경우 정당방위에 해당된다고 하고 있다. 또 격투 중 상대방이 일반이 예상할 수 있는 정도를 초과하여 흉기 등을 사용하여 공격하여 온 경우에 이는 부당한 침해가 된다고 하고 있고, 겉으로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공격을 가하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소극적으로 저항수단으로 폭력을 행사한 경우에는 정당방위가 인정된다고 하고 있다.

정당방위 요건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것이 후자, 즉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인지 여부이다. ‘상당한 이유’란 ‘그럴만한 이유’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용어로 ‘상당성’이라고도 한다. 이론상으로는 정당방위는 부정 대 정의 관계를 전제로 하므로 ‘상당한 이유’를 폭넓게 인정하여야 한다는 데에 이론이 없다.

대법원도 긴급피난과 달리 ‘달리 방위행위 수단 외 다른 방법이 없었다’(보충성 이라고 한다.)는 요건은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대법원은 상당한 이유가 인정되려면 ‘방위에 필요한 한도 내의 행위’ ‘사회통념상 허용될만한 정도의 상당성’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상당성을 판단할 때 ‘침해행위에 의하여 침해되는 법익의 종류, 정도, 침해의 방법, 침해행위의 완급과 방위행위에 의하여 침해될 법익의 종류, 정도 등 일체의 구체적 사정들’을 참작하여야 한다고 한다.(대법원 2005도3940)

이와 같이 정당방위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상당성을 갖추어야 인정되기 때문에 먼저 상대방이 도발한 경우, 상대방의 경미한 침해에 대한 방어행위를 한 경우, 공격당하는 법익과 상대방이 침해당하는 법익 사이에 현저히 불균형이 있는 경우, 예컨대 과수원 주인이 절도범을 엽총으로 살해하는 경우에는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없다.

대법원이 정당방위를 부정한 사례를 보면, 칼을 들고 피고인을 찌르자 그 칼을 뺏어 그 칼로 반격을 가한 결과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 싸움이 끝난 후 분을 풀려는 목적으로 공격한 행위, 자신을 구타하자 26cm의 과도로 복부 부분을 3,4회 찔러 상해한 경우, 자신의 밤나무 단지에서 상대방이 밤을 부대에 담는 것을 보고 부대를 뺏으려다가 상대방이 반항하자 상대방의 뺨, 팔목을 때려 상처를 입힌 경우, 전투경찰대원이 상관의 심한 기합에 격분하여 총을 발사하여 사살한 경우 등이 있다.

인정된 경우는 상대방이 칼을 들고 피고인을 찌르자, 피고인이 몽둥이를 들고 대항하여 싸운 경우, 심야에 억지로 입을 맞추려는 상대방의 혀를 깨물어 절단하여 상해를 입힌 경우, 술에 취하여 시비를 거는 상대방을 경찰관이 도착할 때까지 3분 가량 누른 경우, 방안에서 상대방으로부터 깨진 병으로 찔리고 이유 없이 폭행당하자 멱살을 잡아 흔든 경우 등이 있다.

그러나 정당방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구체적 사실관계를 검토하여 양 법익의 불균형 여부를 따져 보아야 하기 때문에 실제 사건에서 상당성 판단이 매우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와 같이 매우 유동적인 ‘사회통념상 허용될만한 정도의 상당성’의 판단을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사건에서 일반 국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법관이 한다는 점도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요소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국민의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가 완전히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배심원에 의한 재판이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배심재판은 국민주권주의 원리에 따라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재판에 반영하기 위한 제도이다. 즉 사회통념을 재판에 반영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적합한 제도이고, 한 사건에서 모인 배심원들의 결정이 그 사건에서 사회통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법관들은 사회통념을 지식화하고 재해석하여 재판에 반영 할 수밖에 없다. 또 변호사나 검사가 배심원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서면을 읽어주어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개 법정에서 증언이나 생생한 화면 등을 통하여 사건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법관재판은 그렇지 않다.

우리 법관 재판이 서면 위주의 재판과 결합되면 법관들은 판사실에서 수사기관이 각색한 죽은 서면에 의존하여 사건 상황을 이해하고 기존 판례에 있는 죽은 사회통념을 간접적으로 재판에 반영할 소지가 높은 것이다. 즉 법관이 판사실에서 문자로 만난 사회통념과 실생활에서 만나는 사회통념은 다를 수가 있고, 법관은 급박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방어행위의 상당성을 매우 좁게 해석할 여지가 많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배심재판을 통해서만 정당방위의 요건인 사회적 상당성을 올바르게 재판에 반영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리에서 형사 배심재판이 전면적으로 도입된다면 가장 훌륭한 법률가는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은 이들이 아니라 배심원에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될 것이다. 따라서 법률가는 법률문장을 잘 쓰고, 질문하고 설득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일반인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즉 일반인의 생각과 경험, 그들이 바라는 바를 이해하여야 한다. 우리 헌법의 국민주권주의에 충실한 재판 뿐 아니라 위와 같은 훌륭한 법률가를 양성하기 위해서도 우리나라도 배심재판을 전면적으로 도입하여야 한다.

 

정 한 중(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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