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 대한, 누구를 위한 반란 이어야 하나

얼마 전 안철수 의원이 자신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버니 샌더스와 비교하는 발언을 함에 따라 여러 비판의 목소리와 더불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말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두 인물의 비교를 통해 현실 정치를 조명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지난 2일 대전에서 국민의당이 창당대회를 가졌다. 안철수 의원은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천정배 공동대표, 김한길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을 중심으로 제3정당의 기치를 내걸고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를 시작했다. 안철수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지 51일 만에 이번 총선에 모든 것을 걸고 책임지겠다고 선언하면서 국민의당의 선장으로서 키를 잡았다.

같은 날 미국에서는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의원이 유력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위협하면서 선거 돌풍을 일으켰다. 민주당의 첫 경선지인 코커스에서 버니 샌더스는 49.6%를 득표함으로써 49.8%를 득표한 힐러리 클린턴과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동시간대에 정치에 충격을 주고 있는 이 두 인물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정치적 이단아들의 반란

무엇보다 이들은 기존 정치권에서 볼 때 아웃사이더들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구축된 두 나라의 양당 정치체제에서 만들어진 정치 문법구조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안의원은 독재, 권위주의, 보수 기득권 세력 중심의 여당(새누리당)과 반독재, 민주화, 진보 저항 세력 중심의 야당(현재로는 더민주당)이라는 양당체제 속에서 이방인이다. 야당의 역사성과 정통성과는 매우 이질적 이력을 가진 안의원은 시민의 요구에 의해 혜성같이 나타난 인물이다. 정치권 밖에서 소위 안철수 현상이라는 돌풍을 일으키며 새로운 정치에 대한 시민적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정치권으로 진입하였다. 그러나 기존의 야당의 정치 문화와 정치 구조에 융화되지 못하고 급기야는 탈당하고 국민의당을 창당하기에 이르렀다.

샌더스는 미국의 보수적 정치 풍토에서 스스로 ‘사회민주주의자(민주 사회주의자: democratic socialist)’로 부르는 이단아다. 미국 상원의 유일한 사회주의자다. 그는 무소속으로 있다가 진보진영의 권유로 2015년 4월에 민주당에 입당해서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다. 그를 통해서 보수 양당이 지배하는 미국 제도권 정치에도 사회주의자가 있다 것에 놀라움을 줄 정도로 그의 정치색은 희귀하고 독특하다.

다음으로 이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자산의 빈약함이다. 이들의 조직, 정치적 정통성과 상징성은 기존의 주류 정치 세력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준이다. 안의원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오는 정치적 정통성, 상징성 그리고 기득권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권으로 진입했다. 반면에 안의원은 이미 성공한 벤처 사업가, 자산가, 대학교수라고 하는 모두가 부러워 할 사회적 성공 모델로서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상징적 자산과 현실의 경제적 부가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를 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안의원은 시민사회 영역에서 축적한 자산을 기반으로 정치권에 들어와 정치적 자산을 축적하고 있는 상황이다.

샌더스는 시카고 대학에 재학할 때부터 청년사회주의자연맹(Young People's Socialist League), 미국 사회당(Socialist Party of America), 시민권리행동(Civil Rights Movement) 등 미국사회의 주류 보다는 주로 소수 진보진영에서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고 정치 활동을 했다. 그리고 1971년 자유연합당(Liberty Union Party)에서 정치를 시작하여 제3정당 운동 지속적으로 했다. 1980년 버링턴에서 최초의 사회주의자 시장이 되었으며, 1990년 최초의 사회주의자로서 그리고 프레지어 렘스(Frazier Reams) 이후 40년 만의 무소속 출신으로 하원의원 당선자가 되었다. 그리고 2007년에 사회민주주의자로서 최초로 상원에 입성했다. 그리고 2015년 민주당에 입당하여 대선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경쟁을 하고 있다.

그는 오랜 정치 경력에도 불구하고 항상 권력 밖의 비주류로 활동함으로써 정치적 자산은 초라한 수준이었다. 샌더스는 자신의 선거 홈페이지에 “9개월 전 우리는 어떤 정치적 조직도, 정치자금도, 지명도도 없었지만, 지금은 이 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 조직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안의원과 샌더스는 주류 정치에서 볼 때 이단아이자 소수파다. 그럼에도 현재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기존 정치 구조를 흔들면서 주류 정치를 재편하고자 하고 있다. 이들의 반란이 수십 년간 이어왔던 정치체제를 재편하는 데 성공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면 이들의 차이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현 상황에서 눈에 띄는 차이는 정치의 내용과 형식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용의 정치와 형식의 정치

샌더스의 삶은 정치적 내용으로 충만해있다. 그는 1964년 이후 시카고 대학 재학 시절부터 대선 예비후보가 된 오늘날 까지 일관성 있게 사회주의 진보 운동과 정치 활동에 투신 했다. 그는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권력 보다는 사회주의적 가치를 추구했으며, 정치가 아니라 사회정의를 외쳤다. 월가의 돈으로 세워진 정치구조의 모순을 개혁하고자 했으며, 1:99의 불평등한 승자독식 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의 메시지를 던졌다.

그의 이러한 일관성이 ‘정치적 신뢰’를 쌓는 기반이 되었다. 그는 대선 캠페인에서 미국을 사회민주주의 국가로 만들 것을 명확히 선언하면서 미국의 부자들을 떨게 하고 있다. 그는 정치 개혁 뿐 만 아니라 미국 사회의 개조를 약속하고 있다.

샌더스에 비해 안의원은 정치권에 들어오면서 점점 더 정치형식에 속박되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가 시민사회에 속해 있을 때는 성공한 이상적 시민으로써 시민 개개인의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정치사회에 진입하면서 모델이 되는 한 시민이 아니라 대표성을 가진 선출된 정치인으로서 국가적 비전과 어젠더를 제시해야하는 입장에 섰다. 그러나 그가 탈당과 창당을 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것은 정치 세력을 규합하고, 정당을 만들고, 사람을 영입하는 것과 같은 정치형식에 몰입된 모습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강철수라 칭하면서 기존의 정치 구조에 맞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국민의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누구도 가보지 못한 정치혁명의 길을 시작 하겠다” “오만한 여당과 무능한 야당은 이제 그만 됐다고 명령해 달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하여 한국 정치를 바꾸는 정치혁명의 대장정에 함께 해달라"와 같이 정치에 대한 선언이 주를 이루었다. 그가 국민들에게 선포하고 약속한 주 내용들은 기존의 정치형식에 대한 도전과 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안의원은 강철수가 되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시민사회적 자산을 많이 잃어버렸다. 그가 시민들과 토크 콘서트를 하면서 이야기 했던 많은 문제의식과 내용들을 기억하는 시민들에게 정치형식에 치우쳐 있는 강철수는 낯선 모습일 수 있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이유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반면에, 샌더스의 반란은 이미 결실을 맺고 있다. 2015년 4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어느 누구도 힐러리 클린턴을 위협하리라 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코커스 경선에서 힐러리의 심장을 내려안게 했고, 2월 9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그의 선거 캠페인은 권력에 대한 욕망의 표출이나 정치 구호 보다 미국사회의 불의와 모순구조를 바꾸고,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사회주의자를 빨갱이로 취급하던 미국인의 마음에 감동을 주면서 젊은 유권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끌어내고 있다. 미국 전역 220개 대학에서 지지자 모임이 결성되었으며, 소액후원자들로 모금된 선거자금이 힐러리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가 일관되게 보여준 내용과 비전 있는 정치에 미국 국민들이 응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의원 역시 우리 사회의 불의와 모순구조에 대한 대안과 자신의 정치가 추구하는 비전이 무엇인지를 국민들에게 보다 명료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제3당 출현 자체에 별 관심이 없다. 캐스팅 보트 역할이 머물게 될 제3당이 국민들의 실제적인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박태순
파리1대학 정치학 박사
성균관대학 초빙교수
미디어로드 연구소장

 

<돌직구뉴스>후원회원으로 동참해 주십시오. 눈치보지 않고 할 말 하는 대안언론!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당당한 언론! 바른 말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 서겠습니다.


 

샌더스의 반란은 누구에 대한, 누구를 위한 반란인지가 명확하다. 그러나 안의원의 정치적 반란이 누구에 대한, 누구를 위한 반란인지가 아직도 불분명하다. 샌더스로부터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는 국민에게 시원한 청량제가 될 수 있을지 정치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Tags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