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료 대부분 아베 내각 대물림...자민당 파벌의 '아바타'
반 세기 넘게 사실상 일당독재...세습·파벌 정치 고착

스가 요시히데(71,菅義偉) 일본 신임 총리(자민당 총재)가 지난 16일 출범한 새 내각에서 포스트 아베라고 불린 총리 후보로 이름이 거론되는 정치가들을 대거 기용했다.

후보로 오른 정치가들끼리 대결 구도를 펼치게 해 총리 후보들의 경쟁을 부축이고 거기에서 오는 구심력으로 스가 내각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지만 필자는 믿을 수 없다.

일본은 자민당 총재 선거가 있는 내년 9월까지가 체제 변화 시기로, 스가 총리는 아베 체제의 인맥을 상당수 이어 받았다는 점에서 ‘제3기 아베 내각’으로 불릴뿐이다.

파벌의 ‘오야붕(보스)’도 아니었고  주요 파벌에 속해 있는 영향력있는 인물도 아닌 스가가 70%의 표를 얻어 총리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자민당 내의 각 파벌간 오야붕들이 밀실 담합을 통해, 자민당의 이후의 일정상 당분간 끈(?)없는 ‘아바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파벌의 오야붕들은 누구나 차기 총리를 노리고 있는 후보들이나 다름없다. 결국 내년 자민당 당대표 선거 이후, 총리 선거가 있기 때문에 그 때까지 오야붕들의 말을 잘 듣고 시키는 일만 잘 할수 있는 ‘시한부총리’가 필요 했다라는 얘기다.

ⓒ고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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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치의 DNA는 세습정치

일본 정치는 중세 봉건 세습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정치인은 아들과 손자에게 세습되는 것이 상식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전 총리인 아베 신조 외에 아소 다로, 후쿠다 야스오, 고이즈미 준이치로, 오부치 게이오 등 아베 정권당시 장관 8명중 9명이 세습 했다고 하니 비율이 무려 50%나 된다.

스가 총리는 비(非)세습 정치인으로 주목받았으나 스가내각에 들어온 정치인들을 보면 세습 의원들을 여럿 기용했다. 혹자는 자민당 내에 세습정치인이 많다보니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지만, 좀 더 살펴보면 스가가 여러 파벌의 힘을 빌려서 당선되다 보니 그에 대한 보은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스가가 정치에 입문한 직후부터 11년 동안 비서로 일하며 모셨던 오코노기 히코사부로(小此木彦三郞·1928∼1991) 전 통산상의 셋째 아들인 오코노기 하치로(小此木八郎) 중의원이 국가 공안위원장으로 기용됐고,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1926∼2000) 전 관방장관의 장남인 가지야마 히로시(梶山弘志)도 아베 내각에 이어 이번 스가 내각에서 경제산업상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스가는 심지어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岸信夫)를 중의원을 신임 관방장관으로 앉혔다. 기시 노부오는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초대 총리 집안으로 어렸을적 입양되어 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정권의  2인자로 불렸던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이 이번 내각에서도 재무상으로 남았다.  증조부는 조선인 강제징용으로 악명 높은 후쿠오카지역의 아소탄광의 창업주였다. 부친은 중의원 의원, 여동생은 아키히토 전 일왕의 사촌동생인 도모히토 친왕의 아내 노부코 비(妃)로 알려져 있다.

아소 부총리는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다”같은 역사왜곡발언은 물론이고 올해 6월에는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언급하면서 "우리와 한국을 같이 취급하지 말라"라고 주장해 무리를 일으켰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소 부총리는 이날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의에서 "정부가 외출 자제를 요청한 것만으로 (일본)국민이 모두 열심히 동참했다. (일본)국민의 퀄리티가 높지 않으냐"라며 이같이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소 부총리는 아직도 일본은 선진국이고 한국은 후진국이며, 식민지배 를 받은 2등 국민으로 인식하는 편협함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다 보니 ‘망언제조기’라는 별명이 따라 다닌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도 세습 정치인이자 각료다. 관방장관 후보에 올랐던 고노 다로 방위상은 행정개혁·규제개혁 담당상으로, 다케다 료타 국가공안위원장은 총무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외에도 아베 정권에서 이전에 각료를 지냈던 다무라 노리히사 후생상, 오코노기 하치로 국가공안위원장, 가미카와 요코 법무상은 다시 똑같은 직책을 맡았다. 

히라이 다쿠야 과학기술상 역시 디지털상으로 재입각했다. 이에 따라 스가 내각에서 임명장을 받은 ‘아베 각료’는 15명에 이른다. 각료의 평균 연령은 60.4세고 여성은 가미카와 요코 법무상과 하시모토 세이코 올림픽상 두 명이다보니 각료 교체율이 50%도 되지 않아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지적을 듣고 있다.

한국의 정치에 대해서는 조선왕조 5백년을 이씨 조선이라고 멸시하고, 식민지배를 받은 정치후진국이라고 폄하하면서도 일본은 단 한번도 조선의 과거제도 같은 흙수저들의 입신양명을 위한 ‘사다리’는 없었다. 어쩌면 막부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일본은 변함없는 귀족제 사회를 유지해 오고 있는지고 모른다.

정치인 가문의 아들이나 손주들은 언제든지 집안의 정치인이 죽으면 그 자리에 대신 출마해 당선을 거머쥔다. 우리나라에서 일본처럼 2·3세 세습정치인을 만들어 낸다면 누가 정치권력에 대해 희망을 갖고 다음 세대에게 꿈을 심어 줄수 있을 것인가?

일본정치의 모델은 파벌정치

이번 총리 선거에서도 변함없이 ‘그들만의 잔치’라는 비난을 듣고있다. 21세기에 총리를 뽑는 선거는 정권을 가진 자민당 내에서 투표권을 가진 의원들이 선정했고 그 과정에서 다른 파벌의 후보들과의 경쟁은 정책이나 자신의 소견을 가지고 토론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자민당내에서 파벌에 속하지 않는 스가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게 없이 자민당내의 5개 파벌이 치열하게 물밑 작업과 의원 꿔주기 같은 밀실 협약으로 탄생했다. 일본내에서 조차 ‘파벌 정치 타파’라는 구호가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는 마당에 스가정권이 과거의 악습을 답습해, 일부 매스컴으로 부터 ‘파벌정치의 복권’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2천년대 초반에 총리였던 고이즈미 조차도 일본 정치계의 파벌 싸움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면서 타파하자고 주장했지만,이번 총리의 탄생으로 아직도 야쿠자 조직같은 오야붕과 꼬붕의 주종관계로 엮이는 파벌정치는 아직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어떻게 이런 정치문화가 21세기 문명국에서 가능할까? 그것은 자민당이 2차대전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사실상 1당 독재를 해왔기 때문이다.

누려온 시간만큼이나 비대해진 자민당 내에는 학연, 지연, 혈연으로 얽혀 파벌을 만들었고 그 파벌들이 밀실 협상을 통해 권력을 나눠먹기를 이어 온 것이다. 이 파벌 정치를 유지해온 근간에는 오야붕의 정치자금이 있다. 꼬붕들을 돈으로 지원하고 그 댓가로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야욕을 실현시키는데 막강한 재력을 동원하는 ‘금권정치’가 횡행해온 탓이다.

흙수저의 전형이니, 농부의 아들이니 하면서 요란하게 스가 총리에 대한 서민이미지를 확대 재생산 하고 있지만, 지금 보여지고 있는 내각의 구성이나 정책에 대한 내용을 들여다 보면 파벌과 이해타산의 굴레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아바타’에 불가하다는 생각이다.

70%의 표를 몰아준 각 파벌에게 돌려 줘야할 부채를 갚는 것이 우선인 스가 총리에게 흙수저를 위한 ‘사다리’정책이나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가교’역할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아베는 스가를 앉혀 놓고 자신이 재임기간 터져나온 각종비리를 덮어 갈 것이 뻔하다.

1955년 자민당이 창당된 이래 정권을 놓친 적이 단 두 번 있었다. 햇수로는 5년 8개월 뿐이다. 무려 58년 이상을 일당이 독재를 해온 셈이다. 일본의 집권세력은 ‘평화헌법’을 거쳐 전쟁이 가능한 신군국주의 시대를 열고 싶어 한다. 지금도 내심은 다르지 않다.

일본의 역대 총리를 살펴 보면 일본의 오늘과 내일이 보인다. 1885년 초대 ‘총리’로 뽑혀 일본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히토히로부미로 부터 아베를 거쳐 이번에 뽑힌 스가 총리에 이르기 까지 69명의 총리 가운데 일본의 집권세력에 반대 의견을 내고 독자적인 혁신을 추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스가 총리는 아베 전 총리보다는 우파성향이 강하지 않다거나, 귀족 출신이 아닌 흙수저 출신이라거나 실용주의적, 현실적 면모가 강하다거나 하는 평가는 현실정치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일본 집권 세력의 아바타가 우파 각료들 사이에서 중심추를 잡아,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스가 노선'을 만들어간다는 기대는 망상일 뿐이다.

 

고경일

 

풍자만화가
현 상명대학교 디지털 만화영상학과 교수
전 교토세이카대학 만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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