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영 장례위원장, "민주주의 지켜온 무한 열정과 헌신 기억하고 존경합니다“
윤이상 평화재단 신계륜 이사장 ‘김선택, 어머니 대지의 품에 안기는 날’이란 제목의 회한의 글 게재

(사진= 서강대민주동문회 제공)
(사진= 서강대민주동문회 제공)

[스트레이트뉴스=이제항 선임기자] 지난 18일 오전 한국 사회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며 커다란 족적을 남긴 김선택 선생은 향년 66로 별세했다. 지난 4년 가까이 와병으로 투병중 돌연한 심정지로 황망히 세상을 떠난 것이다.

고인은 1970년대 유신독재정권에 저항하며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이른바 ‘긴급조치 9호’세대, 충남 논산 출신으로 1974년 서강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이래 박정희 정권과 긴급조치에 반대해서 대학간 연합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됐고, 이후 민주화운동의 한 길을 걸어왔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의 정책위원이자 ‘민주화의 길’ 편집위원, ‘민족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정책실 차장,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집행위원장 등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책임자로 활동했다.

또한, 문익환 목사 및 김근태 의장과 민주화 투쟁 현장에서 동고동락했고, 고인은 한국 사회의 성격과 문제점을 늘 연구하면서 민주화운동의 방향을 모색하고 실천했다.

서강대 민주화운동의 ‘좌장’으로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 집행위원장을 맡아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사건'의 재심청구 투쟁에 앞장서 끝내 무죄를 이끌어 냈고, 특히, 서강대민주동문회를 조직하고 회장으로서 후배들을 위해 큰 관심과 열정을 쏟았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목격하고, 그 진상을 가장 먼저 서울에 알리고자 온몸을 던진 김의기 열사를 알리고 기리는 일에도 헌신했으며, 전국민주동문회연합 공동대표도 맡아 민주주의와 통일을 향한 무한한 열정을 가지고 후배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며 격의없이 어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 김선택 선생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위원장 장준영 한국환경공단 이사장)는 지난 20일 오전 서울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을 가진 뒤 민주화운동 열사들의 안식처인 경기도 성남 모란공원에서 안장식을 마쳤다.

이 땅에 민주화와 통일을 몸소 실천해 온 영원한 동지인 윤이상 평화재단 신계륜 이사장은 자신의 SNS에 ‘김선택, 어머니 대지의 품에 안기는 날’ 이란 제목의 다음과 같이 동지를 보내는 회한의 글을 SNS에 올렸다.


장준영 장례위원장의 발음이 흔들린다. 김선택이라 하는지 김근태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대가 술을 많이 먹어서인지, 내가 술을 많이 먹어서인지도 알 수 없다.

권미혁 전의원이 지상에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남편에게 보낸다.

언젠가 낙산사에서 남편의 쾌유를 비는 혼자만의 기도를 떠올린다.

가수 이병휘의 "가네~ 가네~" 추도노래와 기타소리가 늙은 활동가들의 흰 머리와 주름 속으로 스며든다.

김재승이 소리없이 운다. 이인영장관이 사회자 정범진의 추도사 권유를 극구 사양한다.

나는 "님의 침묵" 시 한구절을 떠올려 보려하지만 머리속이 하얗다.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 집행위원장 김선택은 쾌유되지도 못하고 강기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아직 "김기춘 청문회"도 "강기훈법" 제정도 하지 못했다.

강기훈의 눈물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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