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유입자금의 WMD 개발 전용은 사실?」
「통일부장관은 거짓을 전달한 자, 즉각 해임되어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고향은 ‘대북정책 부재’」
「대통령의 국회연설, 언어도단이 아닌 진솔함과 성찰로 채워져야」

홍용표 통일부장관의 영혼이 오락가락한 나흘이다. 그리고 그에게 ‘발설하지 말아야 할 정보’를 흘리도록 지시한 윗선들은 물론, 국민과 정치권 역시 당황과 황당 사이를 헤맨 참담한 나흘이기도 하다.

▲ 정신없는 공식화 ⓒkim-jongun.blogspot.kr

70%, 39호실, 서기실의 공식화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과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의 뒤통수를 때리며 ‘느닷없는 전면 중단’을 지시한 후, 홍용표 통일부장관은 12일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다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는 외화가 북한 노동당으로 전달된) 여러 관련 자료가 있다.”

개성공단에 지불되는 노동자들의 임금 중 일부가 노동당으로 흘러들어갔음을 ‘공식화’하는 발언이었다.

그의 주장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14일 KBS에 출연한 그는 ‘정보 자료를 공개하기는 어려운 일’임을 전제하며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임금 중 70%가 노동당 39호실 및 서기실로 들어가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쓰였다”고도 했다. 12일에 언급했던 ‘여러 관련 자료’를 ‘임금 중 70%’와 ‘39호실’, 그리고 ‘서기실’로 구체화시켰던 것이다.

책임자인가, 전달자인가?

그랬던 그의 발언은 15일에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완전히 뒤집혔다.

“증거자료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우려와 의혹이 존재하고, 그 의혹을 강조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와전된 부분이 있다.”

‘있다’가 ‘없다’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여당 관계자들은 사실을 와전으로, 있던 것을 없는 것으로 되돌리기 위해 이런 변명 저런 꼼수를 동원하고 있다.

정치인은 현상과 실재를 다투는 철학자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사실관계를 명확히 제시해야 하는 공복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변명을 나열하는 행태는 “동굴이 존재하려면 동굴 내부에 ‘없음’이 존재해야 한다”며 있음有과 없음無을 쓰임새用로 연결시킨 노자老子를 방불케 한다. 무슨 정치를 사실관계가 아니라 현학적 수사로 하려는가.

▲ 꼼수 동원자들의 수사적 변명 ⓒdianliwenmi.com

이쯤에서 장관과 꼼수 동원자들에게 국어 과외라도 시켜야겠다. 와전訛傳이란 사실과 다르게 잘못 전달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실이 잘못 전달되어 책임소재를 따져야 할 경우, 책임을 져야 할 주체는 둘, 즉 ‘말한’ 사람과 ‘전달한’ 사람 중 하나다.

어머니가 딸에게 “얘야, 오빠한테 가서 미사일 하나 사오라 그러렴.” 하고 시켰는데, 아들이 덜렁 인공위성을 사왔다고 가정하자. 어머니의 질책에 아들은 분명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인공위성 사오라며?” 이럴 경우 책임은 미사일을 인공위성으로 잘못 전달한 딸에게 있다. 이럴 때 ‘와전’은 성립된다.

그러나 아들이 미사일을 사왔는데, 어머니가 “왜 인공위성 안 사오고 미사일 사왔어?” 하고 물을 경우, 책임은 인공위성을 미사일로 잘못 말한 어머니가 져야 한다. 이럴 때 와전은 성립되지 않으며, 어머니가 응당 해야 하는 말은 “내가 잘못 말했네. 미안해.” 하는 인정과 사과다.

홍용표 통일부장관은 자신의 입으로 분명히 있다고 했던 ‘증거’를 180도 뒤집으면서 ‘와전’이라고 둘러댔다. 이번 경우, 와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체는 언론이지만, 언론은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전달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장관은 “내가 잘못했네.” 하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대신, 잘못의 주체가 자신 외에는 있지도 않은 ‘와전’을 들먹이며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 와전의 전제는 전달자 ⓒpicphotos.net

왜 그랬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그가 이중인격자Jekyll and Hyde일 가능성이다. 자신 내부에 ‘말하는’ 사람과 ‘전달하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고는 염치없이, 그토록 뻔뻔하게 반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남는 것은 스스로를 ‘전달하는’ 사람으로 생각했을 가능성뿐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와전’은 성립된다. 미사일을 사오라는 윗선 -그게 대통령이건 누구건- 의 지시를 자신이 잘못 받아들여 인공위성을 사왔다는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저러나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 관장할 부처가 없었던 과거의 무임소장관도 아니고, 미래의 통일을 꿈꾸며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을 가다듬어 제시한 후 올곧게 추진해나가야 할 책임 장관이, 국내외 정세분석은커녕 UN 대북제재안의 내용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정신없이 윗선의 지시나 전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윗선만 바라보는 그런 장관이야말로 무임소여야 하지 않겠는가.

실수의 발견

6자회담 파트너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개성공단에 지불되는 임금이 전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을 개연성이 크다. 그들뿐 아니라 대북정책에 관심이 있는 일반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여권의 대다수 정치인들과 보수단체들이 “햇볕정책이 북한에 무기 준비하라고 퍼준 것 말고 통일에 도움 된 게 없다”며 틈만 나면 외쳐대는 것이 단적인 증거다.

그럼에도 국제사회는 한반도의 특수성 및 개성공단이 한반도 평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했고, 어느 국가도 임금 전용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다. 특히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금융거래 금지를 골자로 대북제재안 2094호를 결의한 UN 역시 마찬가지였다.

▲ 대북제재안 2094호를 승인 중인 UN 안보리 회의 ⓒsipri.org

그런데 홍용표 통일부장관의 입은 수면 아래에 잠들어 있던 국제사회의 ‘암묵적 동의’, 즉 ‘묵인’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말았다. 대한민국이 그동안 ‘회원국에 핵이나 미사일 개발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는 다액의 현금을 포함한 금융자산의 이동이나 금융서비스 제공 금지를 의무화한다’는 대북제재안 2094호 조항을 정면으로 어겨왔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한 꼴이기 때문이다.

그의 정신없는 말실수로 개성공단 재개는 이제 불가능해졌고, 새로운 남북경협사업은 시작단계부터 UN 및 국제사회의 엄격한 감시 눈초리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참사라는 말 이외에 달리 쓸 말이 없을 정도로 끔찍하다.

사태를 이 지경까지 몰아간 장본인, 즉 홍용표 통일부장관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이 전달자에 불과함을 인정하고 윗선의 지시사항을 가감 없이 까발리거나, 아니면 조용히 자진사퇴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 자충수 ⓒpicphotos.net

실수의 연결고리

그의 발언으로 국제사회의 암묵적 동의는 죽어버렸다. 국제사회는 이제 묵인으로 작동하던 동의를 제 손으로 거세시켜버린 한국을 대체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영혼도 치밀한 계산도 없이 터뜨리는 분통과 강공 드라이브에 눈이 먼 정부 탓에, 개성에서 엮어가던 업체 가족들 및 협력업체 가족들의 미래는 산산이 부서졌고, 대북협상에서 그나마 들고 있던 쥐꼬리 같은 카드마저 날려버리게 생겼으며, 새로운 남북경협사업은 꿈도 꾸기 어려운 지경으로 몰리고 말았다. 그렇게 통일은 우리로부터 몇 걸음 더 멀어졌다. 여야를 불문한 반발과 안타까움이 쏟아진 것은 당연한 이치.

▲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의 절망 ⓒhankyung.com

제 손가락을 제 손으로 부러뜨리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의 연원은 무엇일까?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으로까지 이어졌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종말 선언, 곧 ‘개성공단 전면중단’이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이 알맹이 없는 ‘비핵ㆍ개방3000’으로 좌충우돌하다 결국 천안함과 함께 침몰하고 말았던 것처럼, 박근혜 정권 역시 신뢰에 기초하지 않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로 전 국민적 통일 염원을 ‘프로세스 없는 폐쇄’로 내몰아버렸다. 조만간 북한의 또 다른 도발이 감행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며, 그때야말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침몰이 공식화되는 날일 것이다.

개성공단 전면중단의 배경은 무엇일까? 제 궤도에 진입한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가 있으며, 그 배후에는 이 모든 사태의 진앙인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즉 싸드(THAAD)가 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태어난 고향은 어디일까? 핵개발이 이미 완성단계에 이르렀음에도 ‘핵을 포기하면’이라는 대책 없는 전제로부터 출발했던 이명박 정권의 ‘비핵ㆍ개방3000’과 동향이다. 따라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고향은 ‘대책 없음’, 즉 ‘대북정책의 부재’다.

한번 따져보자. ‘핵을 포기하면’이라는 대책 없는 대북정책이 북한의 핵개발을 단 한 순간이라도 저지했던가? 저지는커녕 오히려 중국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만 심화시켰고, 그 결과 중국과 북한은 과거 어느 때보다 긴밀한 경제ㆍ군사적 밀착관계를 발전시켜왔으며, 우리와 미국은 북한과 중국의 그런 행보를 국내외 정치 현실에 이용해왔을 뿐이다.

▲ 비핵ㆍ개방3000 =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pressian.com/korea.net

한반도 ‘긴장’ 프로세스의 발진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핵무장론을 또 꺼내들었다. 이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종언을 고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한반도만의 신냉전체제로 기꺼이, 자진해서 들어가겠다는 굴욕적이고도 정신없는 선포였다.

왜 그럴까? 미국과 UN은 물론, 한반도 주변국 중 우리의 핵무기 개발을 선선히 용인해 줄 국가는 단 한 곳도 없다. 뿐만 아니라, 핵개발은 출발부터 NPT, 즉 핵확산금지조약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이라는 엄청난 난관을 뚫어야 한다.

ⓒiranreview.org

NPT를 탈퇴하지 않는 한, 핵무기 개발은 꿈도 꿀 수 없을뿐더러, 핵보유국인 미국으로부터 핵을 제공받는 것도 불가능하다. 미국이 우리에게 핵을 제공하려면 미국 역시 NPT를 탈퇴하거나 NPT의 조항을 변경해야 하는 초강경 무리수를 둬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가능한 소린가?

만에 하나, 우리와 미국이 무슨 수를 쓰든 핵무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동의를 끌어낸다 치자. 그 핵은 누가 제공하며, 그 핵에 바칠 경제적 대가 및 중국과의 관계에서 오는 경제적 충격은 또 얼마나 엄청날 것인가?

이런 이유들로 보건대, 원유철 원내대표의 현실성 없는 핵무장 발언은 시아파와 수니파로 갈라져 싸우는 중동 및 그런 중동과 수천 년 동안 살인적인 대치를 이어오고 있는 이스라엘 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다름없는 증오주의이며, 국민적 분통을 촉발시켜 이리저리 꼬여 있는 대북정책 국면을 우회해 나가려는 ‘대국민용 꼼수’이자 ‘대국민 간보기’일 뿐이다. 김무성 대표가 그의 발언을 ‘개인의 생각’일 뿐이라 일축하며 진화에 나선 것이 가장 강력한 증거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핵무장 발언을 두고 ‘북풍을 염두에 둔 선거용일 수도 있다’는 세간의 평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참에 김무성 대표의 언어능력도 한번 꼬집어보자. 그의 국어 실력 또한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157명의 의원을 보유한 제1당의 원내대표가 대표연설을, 그것도 국회에서 했고, 그 연설에서 가뜩이나 첨예한 북한 핵문제를 다루면서 핵무장론을 꺼내들었는데, 그 발언을 두고 개인 생각일 뿐이라니!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을 때, 그때도 “그것은 대통령 개인의 생각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국회가 새누리당의 의원총회가 아닐진대, 이 무슨 망발인가? 간교하게 디자인된 ‘대국민 간보기용’임을 실토한 꼴이 아닌가 말이다.

▲ 국회 대표연설 중 사견(?)을 말하는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

대통령의 국회연설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 국회연설 중 북한 문제에 대에서는 ‘신뢰’에 대한 언급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리라 본다. 햇볕정책에 종말을 고하면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무의미성을 부각시켜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 싸드를 배치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설명이 등장할 테고, 개성공단 전면중단에 따른 국민의 이해, 특히 입주업체들의 ‘뼈를 깎는’ 고통에 대한 이해가 요청될 것이며, 조금 더 나아간다면 신뢰를 긴장으로 바꿔야 하는 시대적 당위까지도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

통일부장관과 원내대표의 설화를 마땅히 책임져야 할 대통령에게 바란다. 일단 국민에게 솔직하시라. 거짓은 변명과 또 다른 거짓을 부르고, 진솔함은 수긍을 부르며, 어떤 정책도 국민의 수긍 없이는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무성 대표로부터 “그것은 대통령 개인의 생각이다”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거든, 대북정책에 관해 대통령 개인의 생각을 말하지 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라디오에 출연해 비핵ㆍ개방3000의 실패를 인정했듯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애초부터 알맹이 없는 선거용 정책이었음을, 그래서 실패했음을 국민 앞에 선포하시라.

개성공단 전면중단으로 인해 햇볕정책은 물론 가까운 미래의 경협사업까지 자동으로 폐기된 마당이니, 그런 성찰 하에 반성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 통일대계 수립에 이로울 테니 말이다.

또한 정신없는 발언에 변명으로 급급하느라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린 통일부장관, 그리고 원내대표의 국회 발언을 개인 생각이라며 진화하느라 진땀을 흘리는 김무성 대표보다 조금이라도 국어 실력이 더 나아보이는 길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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